2013년 4월15일 우병우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은 사의를 표명했다. 검사장 승진에서 탈락한 뒤였다. 언론은 그의 사직을 두고 ‘노무현 주임검사의 검사장 승진 탈락’이라 보도했다. “채동욱 신임 검찰총장의 정치검찰 시대 종언 노력”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특수통 엘리트’였던 우 검사 인생에서 그만큼 ‘노무현’은 지울 수 없는 꼬리표였다. 그는 2009년 대검 중수1과장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의 주임검사였다. 당시 언론은 이렇게 전했다.

“주임검사인 우병우 수사1과장과 노무현 전 대통령의 힘겨루기는 두 사람이 이날(4월30일) 오후 1시33분 대검 11층 1120호 특별조사실에서 직사각형 탁자가 사이에 놓인 소파에 마주 앉는 것으로 시작됐다. 의례적인 인사말을 주고받은 뒤인 오후 1시45분, 노 전 대통령과 우 과장이 모두 양복저고리를 벗고 조사 테이블에 착석하면서 양측의 본격적인 공방이 시작됐다. 우 과장이 먼저 “대통령께서는 2007년 박연차 회장이 경남은행을 인수할 때 도와주셨습니까?”라며 공격에 시동을 걸었다(2009년 5월1일 〈조선일보〉 이명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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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주 후, 노무현 전 대통령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검찰의 잇따른 피의사실 공표 등이 문제로 떠올랐다. 수사팀 총책임자였던 임채진 검찰총장과 이인규 대검 중수부장은 검찰을 떠났다. 우 과장은 살아남았다. 김준규 신임 검찰총장이 그를 요직에 뒀다. 이후 그는 대검 범죄정보기획관, 수사기획관으로 영전했다. 2011년 9월 인천지방검찰청 부천지청장으로 갔지만 2012년 7월 검사장 승진에서 고배를 마셨다. 노무현 수사팀 경력이 그의 발목을 잡았다는 말이 서초동 주변에서 돌았다. 2013년 연이어 검사장 승진에서 탈락한 우 검사는 박근혜 정부 초기 옷을 벗었다.

그런 그가 박근혜 정부 4년차의 핵심 인물로 떠올랐다. 이제 우병우 이름 옆에는 노무현보다는 박근혜를 떠올릴 사람이 더 많아졌다. 2014년 5월 청와대 민정수석실 민정비서관으로 공직에 복귀했다. 이전까지 박근혜 대통령과의 특별한 인연이 알려지지 않은 탓에, 검찰 선배인 김기춘 대통령비서실장이 추천했다는 말이 돌았다. 우병우 변호사는 박근혜의 청와대에서 빠르게 자리 잡았다.

그는 2014년 11월 불거진 ‘정윤회 문건’ 사건을 처리하며 박근혜 대통령의 신임을 받았다. 검찰은 당시 정윤회씨 국정개입 의혹을 담은 문서 등 청와대 내부 문건 17건을 박지만 EG 회장 쪽에 건넨 혐의(대통령기록물관리법 위반)로 조응천 전 민정수석실 공직기강비서관 등을 기소했다. 검찰은 문건 내용의 진위보다는 문건 유출에 초점을 맞췄다. 청와대 가이드라인을 따른 수사였다. 당시 이 가이드라인이 ‘우병우 작품’이라는 말이 돌았다(조응천 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1심, 2심에서 모두 무죄를 선고받았다). 그 뒤 우병우 민정비서관은 2015년 1월 민정수석에 올랐다. 현재 1년9개월째 민정수석을 맡고 있다. 박근혜 정부 곽상도(5개월)·홍경식(10개월)·김영한(7개월) 등 역대 민정수석과 비교해보면 최장수 민정수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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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2014년 4월 신문의 날 기념 축하연에서 박근혜 대통령과 함께 축하 시루떡을 자르고 있는 송희영 전 〈조선일보〉 주필(오른쪽).

우병우 민정수석을 부르는 별칭 가운데 하나가 ‘리틀 김기춘’이다. 대리 통치 논란을 부를 만큼의 왕실장 김기춘 비서실장에 비교해, 우 수석 역시 왕수석 노릇을 한다는 의미다. 곳곳에 자기 사람을 심으면서 ‘우병우 라인’ ‘우병우 사단’이 생겼다는 말까지 돌았다. 박근혜 청와대에서 근무했던 한 인사는 “민정수석실은 국세청과 법무부, 그러니까 검찰을 관할한다. 어차피 경찰은 검찰의 수사 지휘를 받으니 손아귀에 들어오고, 국정원처럼 시스템상 쥘 수 없는 곳은 우 수석과 가까운 최윤수 검사장을 국정원 2차장으로 보내 사정기관을 장악하고 정보를 쥐었다”라고 말했다.

잘나가던 그는 진경준 검사장의 주식 대박 사건이 알려지면서 위기를 맞았다. 진 검사장이 넥슨의 비상장 주식을 팔아 재산 126억원이 늘어난 점이 뒤늦게 드러나면서, 인사 검증의 문제점이 불거졌다. 인사 검증이 민정수석실의 주요 업무이기 때문이다. 거액의 주식 거래를 어떻게 민정수석실에서 놓칠 수 있느냐는 의문이 일었다. 봐주기 논란까지 불거졌고, 결국 의혹은 진경준에서 우병우로 옮아붙었다.

방아쇠는 〈조선일보〉가 당겼다. 우 수석 처가 소유 빌딩을 넥슨이 매입했다는 사실을 보도했다. 넥슨이 시세보다 더 웃돈을 주고 매매했으며, 부동산 거래 자리에 우 수석 또한 함께 있었다는 내용이었다. ‘진경준-넥슨-우병우’ 삼각 커넥션이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이었다. 뒤이어 여러 언론에서 우 수석의 아들 병역 ‘꽃보직’ 특혜 논란, 가족회사 설립 후 횡령 논란 등이 계속해서 터져 나왔다(22쪽 표 참조). 연이은 의혹이 불거지면 사퇴를 했던 전례와 달리, 우병우 수석은 자리를 지켰다. 그는 기자들을 상대로 의혹을 적극 해명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임명한 특별감찰관이 감찰에 들어갔다. 감찰 소식이 처음 알려질 때만 해도 우 수석이 낙마 수순을 밟을 것이라는 예상이 적지 않았다. 예상은 어긋났다. 반전도 일었다. MBC는 지난 8월16일 “이 특별감찰관이 한 언론사 기자에게 감찰 상황을 누설해온 정황을 담은 SNS를 입수했다”라고 보도했다. 이 특별감찰관이 〈조선일보〉 이명진 기자와 통화한 내용 대부분은 감찰이 쉽지 않다는 하소연이었지만, 감찰 내용 유출 프레임이 씌워졌다. 이석수 특별감찰관이 우 수석을 수사의뢰한 다음 날인 8월19일, 김성우 청와대 홍보수석은 이 특별감찰관이 ‘국기 문란’을 저질렀다고 브리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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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8월29일 검찰 특별수사팀이 우병우 수석의 가족회사 ‘정강’을 압수수색하고 압수물을 종이봉투에 넣어 들고 나왔다.

“우병우 수석 버티기는 일종의 권력 착시효과”

특별수사팀을 꾸린 검찰은 8월29일 ‘동시 압수수색’을 펼쳤다. 우 수석 혐의와 관련해 5곳, 이 특별감찰관 혐의와 관련해 3곳 등 모두 8곳을 압수수색했다. 검찰이 양쪽을 모두 치는 양태였지만, 내용을 뜯어보면 다르다. 이 특별감찰관 건에 대해서는, 피의자 이석수 특별감찰관의 휴대전화뿐만 아니라 참고인에 불과한 〈조선일보〉 이명진 기자의 휴대전화까지 압수했다. 이 기자는 우 수석의 처가 부동산 의혹을 처음으로 보도했다.

반면 우 수석 집이나 집무실은 압수수색을 당하지 않았고 휴대전화도 압수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횡령 의혹의 핵심인 우 수석 가족회사 ‘정강’을 압수수색했지만, 이미 금고와 서류가 치워진 상태였다. 검찰 수사관들은 정강에서 종이 가방 하나만 가지고 나와야 했다. 이석수 특별감찰관실의 각종 서류 등을 압수수색하느라 파란 플라스틱 상자를 몇 차례 자동차로 실어 나르는 장면과는 대비되었다. 우 수석 아들의 ‘꽃보직’ 특혜 의혹과 관련해서도 이상철 서울경찰청 차장의 휴대전화만 압수해갔다.

압수수색이 시작된 날 이석수 특별감찰관은 사의를 표명했다. “의혹만으로 사퇴하지 않는 게 이번 정부 방침 아니냐”라고 말한 그였지만, 본격 수사가 시작되자 “일반 시민의 입장에서 수사를 받겠다”라며 사퇴했다. 그의 사퇴를 두고 현직 민정수석 자리에서 검찰 조사를 받는 우 수석을 향한 압박수라는 해석이 따랐다. 하지만 이튿날 청와대 정연국 대변인은 우 수석의 거취와 관련해서 “달라진 게 전혀 없다”라고 밝혔다.

우병우 수석 의혹을 처음 보도하며 청와대와 각을 세웠던 〈조선일보〉도 반전을 거듭했다. 청와대의 〈조선일보〉에 대한 반격은 익명의 관계자로부터 시작되었다. 8월21일 청와대 관계자는 〈연합뉴스〉에 “우병우 죽이기의 본질은 임기 후반기 식물 정부를 만들겠다는 의도다. 우 수석에 대한 첫 의혹 보도가 나온 뒤로 일부 언론 등 부패 기득권 세력과 좌파 세력이 우병우 죽이기에 나섰다”라고 말했고, 그대로 기사화되었다.

강성 친박으로 분류되는 새누리당 김진태 의원이 8월26일 “2011년 당시 워크아웃 상태의 대우해양조선이 8900만원짜리 전세기를 이용했는데 당시 민간인은 박수환 뉴스커뮤니케이션 대표와 유력 언론사 논설주간뿐이었다. 극단적 모럴해저드의 전형이자 부패 세력의 부도덕한 행태다”라고 밝혔다. 김 의원은 첫 폭로 사흘 후 해당 논설주간이 송희영 〈조선일보〉 주필이라고 실명을 공개했다(26쪽 상자 기사 참조). 이를 두고 2013년 9월 채동욱 검찰총장을 물러나게 한 ‘조·청 합작’에 균열이 났다는 말이 돌았다.

송희영 주필은 실명이 공개된 당일 보직에서 사임하고, 다음 날은 사표를 냈다. 8월30일 또다시 익명의 청와대 관계자가 〈연합뉴스〉에 “송희영 주필이 지난해 청와대 고위 관계자에게 대우조선해양 고위층의 연임을 부탁하는 로비를 해왔다. 청와대가 관여할 수 없다는 입장을 전달했고, 결국 송 주필의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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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같은 날 검찰 특별수사팀은 이석수 특별감찰관 사무실을 압수수색하고 압수물을 여러 개의 박스에 담아 나왔다(아래).

이와 같은 이례적인 청와대 관계자 멘트는 ‘우병우 의혹 정국’에서 ‘부패 기득권 언론의 정권 흔들기’로 프레임 전환하려는 노림수가 아니냐는 비판이 나왔다. 일견 성공한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더 중요한 시그널이 숨어 있다. 우병우 수석의 힘이다. 정보 업무를 맡고 있는 사정기관의 한 관계자는 “이번 우병우와 〈조선일보〉 싸움의 결과를 보면서 어떻게 〈조선일보〉를 저렇게까지 꺾어놓나, 좀 놀랐다. 지금 상황에서 차라리 정보를 모르는 게 낫지, 무언가를 알아서 발설하는 순간 나도 다치겠다 싶다”라고 말했다. 검찰의 한 관계자도 “지금은 알아도 모르고, 몰라도 모른다. 내가 올린 정보가 〈조선일보〉에라도 나면 괜히 찍힐 수 있어서 최대한 조심하려 한다”라고 말했다.

우병우 수석이 버티는 힘은 박근혜 대통령의 신임에서 나온다. 여기에 이견은 없다. 새누리당의 한 관계자는 우 수석의 버티기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우 수석은 행정부 단속이 되는 ‘그립(grip:통제력)’이 좋은 상황을 만들고 있다. 우 수석은 업무능력과 로열티가 둘 다 뛰어난데, 기업과 공무원을 잘 단속하고 있다. 그런데 우병우가 없다면? 곧 입에 붙이고 있던 반창고가 떨어진다. 행정부 내부에서도 정권 말로 갈수록 야권 쪽에 메시지를 보내고 싶은데 참는 사람이 많다. 결국 내부 고발과 야권을 향한 제보를 막는 가장 중요한 기제다.” ‘우병우 지키기’가 ‘정권 지키기’가 된 셈이다.

그렇다면 우 수석은 계속 버틸 수 있을까? 이명박 정부 시절 청와대에 근무했던 관계자는 “레임덕은 온다. 정권 말이 될수록 힘이 빠지는 건 어쩔 수 없다. 일종의 권력 착시효과가 지금 나타나는 걸 수도 있다. 우 수석이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보면 된다”라고 말했다. 우병우 수석은 어느새 박근혜 정부 레임덕의 척도가 되었다는 뜻이다.

 

 

ⓒ연합뉴스8월29일 새누리당 김진태 의원은 대우조선해양이 초호화 전세기를 이용해 접대한 유력 언론인이 〈조선일보〉 송희영 주필이라고 밝히고 관련 자료를 공개했다.

 

 

 

〈조선일보〉는 2013년 9월 국정원 댓글사건 수사팀을 지휘 하던 채동욱 당시 검찰총장의 혼외자 의혹을 보도했다. 이 보도 를 두고 모처로부터 관련 파일을 받은 게 아니냐는 말이 돌았다. 재판부가 밝힌 ‘큰 그림’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3년 만에 비슷한 논란이 다시 벌어지고 있다. 이번에는 〈조선 일보〉가 당했다. 8월29일 김진태 새누리당 의원은 기자회견을 열어 〈조선일보〉 송희영 주필이 막대한 공적자금이 투입된 대우 조선해양으로부터 2억원대 해외여행 특혜를 받았다고 주장했 다. 김 의원은 비행기, 요트 등 증거 사진까지 제시했다. 

김 의원 발표 이후 송희영 위원은 보직을 사임하고, 끝내 사표까지 냈다. 김진태 의원의 ‘소스’를 두고 정치권에서는 여러 가지 말이 돌고 있다. 대우조선해양을 압수수색한 검찰이나 청와대, 국정원 등 정보 출처를 두고 의혹이 계속 이어졌다. 

김 의원은 8월30일 새 누리당 의원총회에서 “청와대와 검찰, 경찰, 국가정보원은 아니 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도 김 의원은 “출처는 밝히지 않겠 다”라고 말했다. 김 의원의 폭로 다음 날인 8월30일, 박범계 더불어민주 당 의원은 CBS 라디오와 인터뷰에서 “제보자가 누구냐, 제보기관이 누 구냐에 따라서 고도의 기획에 해당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3년 전 채동 욱 전 검찰총장 사건과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큰 그림’은 밝혀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

 

 

 

 

기자명 김은지·김동인 기자 다른기사 보기 astori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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