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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둘러싼 조건 대부분은 늘 부족하다. 저자에게 돌아가는 인세, 출판사의 수익과 편집자의 급여, 인쇄소와 제본소의 작업 비용, 책을 읽는 독자의 숫자, 그들이 책을 구매하는 횟수와 지출까지, 매년 반복되는 통계에 한숨과 하소연과 넋두리가 이어진다. 그럼에도 책을 소개하는 신문이나 잡지 지면만은 부족하다는 이야기를 거의 듣지 못했다. 책을 읽는 이를 감안하면 책을 다루는 지면은 넘치는 편이다. 약방에 감초처럼 책을 다루는 지면이 있다. 손에 꼽을 정도의 서평가와 책 이야기를 즐겨 하는 작가, 번역가, 연구자 그리고 나처럼 서점에서 책을 다루는 이들이 그 지면을 돌아가며 채운다. 이 ‘책세상’ 지면도 마찬가지다.

그래서일까. 이번이 마지막인데도 아쉬움보다는 후련함이 크다(아마 이 글을 읽는 독자도 마지막이란 단어에 잠시 놀랐겠지만, 이내 무심하게 다음 단락으로 눈길을 옮기지 않을까 싶다).

아쉬움이 크지 않은 데에는 다른 까닭도 있다. 마지막에 어울리는 책이 마침 당도했기 때문이다. 〈책을 읽을 때 우리가 보는 것들〉. ‘이 책세상 지면을 볼 때 독자가 보는 것들’로 생각이 이어지자 그간 미뤄두고 해결하지 못한 고민들이 속속 드러나기 시작했다.

책을 소개하거나 책을 이야기하는 지면에서 독자들은 정말 무엇을 보는 걸까. 이 지면에서 소개한 책을 찾아서 읽는 이는 얼마나 될까. 혹시라도 나중에 그 책을 우연히 만났을 때 이 글을 떠올린다면 그것으로 충분히 즐겁고 기쁜 일 아닐까 등등. 늘 그렇듯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성찰이 시작되는 법이니, 이 책은 정말 맞춤한 때에 내 손에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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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IN 이명익책은 늘 충분하고 책 이야기는 언제든 풍성하다.
저자 피터 멘델선드는 크노프 출판사에서 아트디렉터로 일하며 카프카와 도스토옙스키의 전집, 톰 매카시와 요 네스뵈의 표지를 작업한 디자이너다. 저자는 ‘책을 읽을 때 우리가 보는 것들’이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읽다’와 ‘보다’를 구분해 살핀다. 저자가 머릿속에 떠올린 그림을 글로 옮기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일이, 그 글을 읽으며 다시 머릿속에 그림을 그리는 독자로 옮겨가며 무엇이 생겨나고 무엇이 사라지는지 치밀하게 분석하고 엉뚱하게 상상한다. 이를 글과 이미지를 교차 편집하여 구현하는 독특한 책이다.

이 책은 건성으로, 때로는 너무 깊이 빠져, 읽으면서도 보지 못했던 독서의 풍경을 전한다. “우리를 상상의 세계로 초대하는 건 글에서 설명하지 않는 부분”이고, “책을 끝까지 읽어나가면 이야기를 점점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결과를 놓고 보면 책 말미에 이를수록 상상력은 힘이 빠진다”.

함께 나눠 행복했던 ‘독서의 풍경’

“내 상상 속에서 소름끼치도록 끔찍한 메아리가 저 바깥의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지옥에서 울려나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심연을 가로질러 퍼져나갔다”라는 문장을 보면 작가 역시 상상조차 할 수 없다고 고백한 무언가를 상상하는 독자의 고통과 재미를 떠올리게 된다. 반대로 “작가가 인물이나 장소에 대해 그 모습을 빈틈없이 시시콜콜하게 묘사하면 독자가 마음속으로 그리는 그림은 풍성해지지 않을 것이다. 또렷해지지도 않을 것이다”라는 문장을 읽으면서, 책 이야기를 전할 때 어디까지 내용을 소개하는 게 나을지 갈팡질팡하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책을 둘러싼 조건은 늘 부족하다 말했지만, 그럼에도 책은 늘 충분하고 책을 둘러싼 이야기는 언제든 풍성할 수 있다. “독서는 우리 스스로 세상을 알아가는 과정을 거울처럼 비춰준다”지만, 그렇다고 “세상에 대한 참모습을 반드시 알려주는 것은 아니다”. “결함투성이에다 조각조각 흩어져 있고 애매모호하면서도 서로 힘을 합쳐 새로운 지평을 모색”하는 과정은 책을 읽을 때 우리가 볼 수 있는 최대치 아닐까. 그간 이 풍경을 함께 나눠 행복하고 감사했다.

※ 이번 호로 ‘책세상’ 연재를 마칩니다. 수고해주신 필자께 감사드립니다.

기자명 박태근 (‘편집자를 위한 실험실’ 연구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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