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로 손가락 2개가 잘린 남자. 가운뎃손가락을 붙이는 데는 6만 달러, 네 번째 손가락을 붙이는 데는 1만2000달러. 결국 더 값이 싼 약지를 선택한 뒤 잘린 중지는 새에게 먹이로 던져주는 장면. 다큐멘터리 〈식코〉 (2007)의 실로 충격적인 오프닝.

다른 나라 의료 시스템을 견학하려고 캐나다·프랑스·영국·쿠바를 차례로 돌아본 마이클 무어 감독은 〈식코〉의 마지막 장면에 이르러 관객을 향해 말한다. “해결책은 간단합니다. 누군가 더 좋은 차를 만들면 그 차를 타고, 누군가 더 좋은 와인을 만들면 그 와인을 마시듯이, 누군가 더 좋은 제도를 갖고 있다면 우린 그 제도를 따라 하면 됩니다.” 그리고 덧붙인 한마디. “‘나’가 아니라 ‘우리’라는 생각을 갖지 않는 한 아무것도 바꾸지 못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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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9년이 흘렀다. 그사이 미국 의료보험 개혁은 오바마 대통령의 핵심 공약이 되었고 미흡하나마 변화를 이뤄냈다. 〈식코〉의 힘이 컸다. 〈트랜스포머〉 〈다이하드4.0〉 같은 대작들이 내걸린 그해 여름 미국 극장가에서 무려 한 달 가까이 박스오피스 10위권에 머물며 여론을 움직인 덕분이었다. ‘따라 하고 싶은 더 좋은 제도’를 직접 눈으로 확인한 관객들이 분노하고 소리 높여 얻은 성과였다.

마이클 무어의 신작 다큐멘터리 〈다음 침공은 어디?〉를 〈식코〉의 속편이라 불러도 좋을 것이다. 이번엔 판을 더 키웠다. ‘따라 하고 싶은 더 좋은 제도’가 9개나 된다. 미국인이 꿈만 꾸던 정책을 실제로 운용하고 있는 나라 9곳을 직접 찾아다닌다.

매년 유급휴가 8주와 월급 열세 번(열두 번이 아니라)을 누리는 이탈리아 노동자, 셰프가 세심하게 짠 식단에 따라 매일 코스 요리가 학교 급식으로 나오는 프랑스 초등학생, 숙제와 일제고사를 없애고도 세계 최고 수준의 교육을 실현한 핀란드 청소년, ‘학자금 대출’이라는 단어를 들어본 적 없는 무상교육의 나라 슬로베니아에서 만난 대학생…. 감독은 그들을 붙잡고 끈질기게 묻는다. 이게 가능해? 어떻게? 그 돈이 다 어디서 나오는데? 세금은 우리도 낸다고! 그런데 너희 나라는 하고 우리나라는 못하는 이유가 뭐야? 미국도 못하는 걸 니들이 무슨 수로 하는 거야?

마이클 무어 감독은 제작진이 사전에 취재해놓은 자료를 일부러 보지 않고 촬영에 임했다. 최대한 관객과 같은 눈높이에서 그들을 바라보기 위해서다. 그래서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진심으로 놀라고 시종일관 부러워하는 감독 표정이 생생하게 카메라에 담긴다. 그 표정은 곧 이 다큐멘터리를 보고 있는 관객의 표정, 바로 나의 표정이기도 하다. 정말? 다른 나라는 저래? 그런데 우리나라는 왜 이래?

만약 당신의 정부가 미국을 닮고자 한다면

각 제도의 장점을 부각하려는 의도 때문에 해당 국가의 현실을 지나치게 미화하고 과장했다는 일각의 비판을 감독은 이렇게 눙친다. “내 임무는 잡초가 아니라 꽃을 따가는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라는 토양에서 ‘꽃’처럼 피어난 9가지 미래를 생생하게 체험하는 2시간. 시종일관 유쾌하고 낙관적인 태도로 관객을 기분 좋게 자극하는 다큐멘터리. ‘누군가 더 좋은 차를 만들면 그 차를 타고, 누군가 더 좋은 와인을 만들면 그 와인을 마시듯이’ 지금 당장 따라 해야 마땅한 ‘더 좋은 제도’ 목록을 기쁘게 다 훑고 나면 〈식코〉 개봉 당시 마이클 무어가 어느 인터뷰에서 했던 말이 새삼스럽다.

“만약 당신의 정부가 미국을 닮고자 한다면, 이 영화를 보고 미국 사회와 비슷한 사회를 형성했을 때 당신에게 미치는 영향이 무엇인지를 직접 확인해보십시오.” 불행히도 우리의 정부는 아직도 미국을 닮으려 애쓰고 있다. 그게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 〈다음 침공은 어디?〉를 보면 알 수 있다. 참 재미있고 퍽 유익하다.

기자명 김세윤 (영화 칼럼니스트)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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