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은 친구 따라 갔다. 정신 차려보니 공대 전자제어계측공학과였다. 거의 모든 과목에서 낙제 점수를 받았다. 한 학기 만에 휴학한 채 입대했다. 제대를 앞두고 막막함이 엄습했다. ‘사회에 나가 뭐 하지?’ 권용득씨(39)의 선택은 ‘어쨌거나 내 이야기를 하면서 산다’였다. 자퇴서를 썼다. 학과장은 흔쾌히 “적성에 안 맞는 거 하면 안 된다”라며 사인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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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IN 신선영
권씨는 어떻게 이야기를 풀어낼지 고심했다. 그림을 ‘좀’ 그리고 글을 ‘좀’ 쓸 줄 알았다. 미술학원 한번 다닌 적 없는 권씨는 뒤늦게 한 대학의 만화학과에 진학했다. 그곳에서는 무엇을, 왜 그리는지 묻지도 알려 하지도 않았다. 구도나 칸을 채우는 기법만 가르쳤다. 결국 두 번째 자퇴를 했다. 권씨는 “기술적으로 잘하려고 애쓰지 않았다. 하고 싶은 대로 했는데 알아봐주는 사람이 생기면 만화가가 될 기회가 생긴다고 생각했다”라고 말했다.

지질하고 나약하고 볼품없는 만화 속 주인공들

권씨의 작품을 알아봐주는 사람들이 생겼다. 만화가가 된 것이다. 그의 만화에는 멋있는 캐릭터가 등장하지 않는다. 보여주고 싶은 모습 대신, ‘지질하고 나약하고 볼품없는’ 내가 나온다. 그의 만화책 〈영순이 내 사랑〉(새만화책 펴냄)과 〈예쁜 여자〉(미메시스 펴냄) 주인공들은 너무 솔직해서 짠하기까지 하다. 원고료 5만원만 올려달라며 출판사에 전화를 거는가 하면, 술집에서 만난 여자가 같은 고향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며칠 밤을 뒤척이는 식이다. “흥미롭게도 먼저 한 꺼풀 벗기고 맨얼굴로 이야기하다 보면 다른 이들도 가면을 슬슬 벗기 시작하더라.” 이 때문에 권씨의 만화는 눈으로 쓱 훑기보다 차분히 읽는 게 어울린다. 작품을 음미하면서 독자는 감정이 변화하는 상태를 느낄 수 있다. 창작자 권씨와 독자가 동등해지는 순간이다.

〈하나같이 다들 제멋대로〉(동아시아 펴냄)는 권씨가 낸 첫 번째 에세이집이다. 수년간 페이스북에 기록한 일상을 담았다. 집안일을 하고 아들 지홍군과 논, 소소한 이야기를 주야장천 썼다. 권씨는 “‘아무것도 안 남기고 죽을 거야’라고 말하면서도 하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 많아서 제때 죽지 못할 것 같았다”라고 말했다. 재능이나 능력이 아니라 몸으로 때우면서 어떻게든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전했다.

권씨가 만화를 그리고 글을 쓰는 이유는 단 하나다. “마음속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이왕이면 있는 그대로 나누고 싶다. 그거보다 재밌는 일이 세상에 또 있나요?”

기자명 송지혜 기자 다른기사 보기 song@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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