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책을 좋아한다. 어린 시절부터 보기 시작해서 마흔이 된 지금까지도 만화책을 수집하고 있으니, 이 정도면 병이라고 해도 좋지 않을까 싶다. 글쎄, 여전히 만화책을 폄훼하는 시선이 있다는 걸 알고 있지만, 적어도 내게 만화책은 영감의 원천으로서 소중하다. 이번 글을 통해서는 ‘음악 관련 만화책’을 좀 소개해볼까 한다. 무엇보다 재미는 물론이요, 충실한 콘텐츠 역시 돋보이는 작품임을 밝힌다. 〈블루 자이언트〉라는 만화책이다.

이 만화 속 주인공인 소년은 강둑에 나가 매일 색소폰을 분다. “오늘도 불었다”라는 보람을 느끼며 학창 시절을 보내지만, 이게 맞는 건가 싶기도 하다. 소년은 설명할 수 없는 불안감에 악기상에게 직접 찾아가 질문을 던진다. “어떻게 하면 재즈 연주자가 될 수 있나요?”

만화 〈블루 자이언트〉는 재즈를 사랑하게 된 한 소년이 이야기다. 최근 쳇 베이커와 마일스 데이비스에 대한 전기 영화 〈본 투 비 블루〉와 〈마일스〉를 보면서 이 만화가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블루 자이언트〉는 전형적인 음악 만화의 틀에서 벗어나지 않는 작품이다. 록 밴드를 그린 또 다른 음악 만화 〈벡〉이 그러했듯, 종국에는 세계적인 재즈 연주자로 인정받게 되는 한 소년의 성장기를 그려낸다. 스케일이 복잡한 재즈 음악 만화이다 보니, 소리를 그림으로 보여준다는 게 상상 이상으로 어려운 작업이었을 것이다. 이 지점에서 작가 이시즈카 신이치의 역량이 빛을 발한다. 전작 〈산〉에서 이미 증명했듯이 그는 인물의 표정 묘사에 특히 능한 작가다. 각종 재즈 악기를 부는 캐릭터들의 얼굴에 활력을 불어넣고, 여기에 의성어를 굵은 글씨로 빼곡하게 박아넣는 방식을 통해 그는 마치 만화책에서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은 효과를 완성해냈다.


장담컨대 당신도 이 책을 보면, 이 책에서 소개하는 재즈 명곡 하나쯤은 곧바로 찾아 듣고 싶어질 것이다. 나도 이 작품을 보면서 마일스 데이비스의 〈카인드 오브 블루(Kind of Blue)〉와 존 콜트레인의 〈자이언트 스텝스(Giant Steps)〉를 오랜만에 꺼내서 감상했다. 그러면서 머릿속에 떠올려보는 것이다. 과연 이 주인공은 책의 제목에 영감을 준 이 걸작들을 어떻게 해석하고 있는 것인지. 이렇듯 〈블루 자이언트〉는 독자들에게 제공하는 상상의 여백이 참으로 즐거운 작품이다. 이 외에도 〈벡〉 〈나와 악마의 블루스〉 〈노다메 칸타빌레〉 등 훌륭한 음악 만화가 대개 이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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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 자이언트〉는 재즈 소년의 성장 스토리다.

만화 얘기를 한 김에 고민거리 하나 고백해본다. 얼마 전 브라질 리우 올림픽 폐막식을 혹시 봤는가. 다음 개최지인 도쿄 올림픽 소개 영상을 보면서 나는 감탄을 금할 수가 없었다. 콘텐츠의 강국답게 각종 캐릭터를 소환해 완성한 영상이 그야말로 ‘끝내줬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를 고뇌에 빠트린 건 이게 아니었다. 한국인이라면 도저히 좋아할 수 없을 아베 총리가 이 영상의 대미를 장식하고 있었다. 그것도 스스로를 슈퍼마리오라고 주장하면서.

마일스 데이비스와 존 콜트레인 곡에서 영감

나는 우리 삶이라는 게 이런 식의 충돌이 끊임없이 발생하는 어떤 장(場)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정치(와 역사)와 예술이 서로 충돌할 때 벌어지는 논쟁들은 지금도 우리를 괴롭히는 주요한 난제다. 그렇다면 나치와 클래식 작곡가 바그너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일까. 바그너는 실제로 유태인 관련 글에서 “그들과의 접촉은 항상 불쾌하다”라고 적은 바 있다. 마찬가지로 아베가 한없이 가증스럽지만 저 영상과 슈퍼마리오 모자를 쓴 아베가 환상적이라는 걸 부인할 순 없다.

확정된 정답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다만 한 가지 조심스럽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이러한 논쟁이 격렬하게 벌어지는 사회가 그렇지 않은 사회보다는 더 ‘건강하다’는 점 아닐까. 정치와 예술이 서로 모순될 때, 오로지 양립 불가능만을 외치는 사회를 민주적이라고 볼 수는 없다.

기자명 배순탁 (음악평론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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