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 김천시 농소면 노곡리는 사드 배치 후보지로 거론되고 있는 롯데스카이힐 성주CC 골프장 바로 아랫마을이다. 롯데골프장이 있는 성주군 초전면과 경계를 맞대고 있다. 913번 지방도로를 타고 성주에서 김천으로 가는 길목에는 ‘사드 배치 반대’ 플래카드가 곳곳에 걸려 있었다.

김천시 농소면 노곡리 주민 임 아무개씨는 “땅은 성주라도 피해 입는 곳은 김천입니더. 피해가 없다 카는데 믿을 수가 없어예. 그러면 왜 거기서 반대를 했겠어예”라고 말했다. 임씨는 김천 특산물인 자두·포도 농사를 30년째 짓고 있다. 그는 “성주 참외더러 사드 참외라 카더만 이제 사드 자두, 사드 포도 되게 생겼어예. 여기 사람들 다 ‘1번 찍어서 내 발등 내가 찍었다’ 카고 있어예”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3000명가량인 농소면 주민은 대부분 과수 농사를 짓는다. 박태정 노곡리 이장은 “사드 배치는 한국 방어랑은 관계없고 미국·일본 방어용이라 카더만”이라며 혀를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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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IN 조남진8월25일 김천혁신도시에서 진행된 촛불집회에 참석한 시민들이 ‘한반도 사드 배치 철회’를 촉구하고 있다.
사드 제3후보지 선정이 현실화되면서 성주에서 시작된 사드 배치 반대 불씨가 김천으로 옮아붙었다. 롯데 골프장이 행정구역상으로는 성주에 속하지만 사드 기지가 배치될 경우 레이더의 영향권에 들어가는 건 북쪽에 위치한 김천 지역이기 때문이다. 8월24일 김천 종합운동장에서 열린 사드배치반대 궐기대회에는 시민 1만여 명이 참석했다. 김천시 인구는 14만2000여 명으로 4만5000여 명인 성주군에 비해 세 배나 많다. 당연히 집회 규모도 커졌다.

롯데 골프장에서 7㎞ 떨어진 김천혁신도시의 반대 열기가 뜨겁다. 농소면과 혁신도시는 롯데 골프장에 들어오는 사드 레이더의 정면에 놓이게 된다. 김천시 농소면 북쪽에 서면 거대한 아파트 단지가 눈에 들어온다. 야트막한 농지 한가운데 최신식 고층 아파트들이 성채처럼 솟아 있다. 이곳이 주민 1만4000여 명이 사는 김천혁신도시다. 혁신도시 주민들을 중심으로 대책위원회(이하 혁신도시 대책위)도 꾸려졌다. 박우도 혁신도시 대책위원장은 사드배치반대 김천투쟁위원회 공동위원장 5명 중 한 명이다.

혁신도시의 행정구역인 율곡동에 들어서자 신도시 특유의 어수선한 분위기가 풍겨왔다. 혁신도시는 이제 자리를 잡아가는 단계다. 올해 4월 한국건설관리공사 입주를 끝으로 한국전력기술·한국도로공사를 비롯한 12개 공기업 이전이 완료됐다. 전체 아파트 약 1만 세대 중 60~70%가 입주를 마쳤다. 혁신도시 인구 구성은 김천시 평균과는 차이가 있다. 공기업 이전으로 경기도에서 유입된 인구가 50%에 달한다. 김천은 새누리당 이철우 의원이 3선을 내리 할 정도로 여당세가 강한 지역이지만 혁신도시에서는 지난 총선 때 여당과 야당의 득표율이 비등했다.

막 개업한 듯 보이는 커피숍 앞에는 ‘24일 사드 반대 집회 참석으로 오후 5시 영업 마감합니다’라는 안내문이 놓여 있었다. 들어가 보니 여성 20여 명이 ‘사드 반대’를 뜻하는 파란 리본 만들기에 한창이었다. 이들은 온라인 커뮤니티인 ‘김천혁신맘 카페’ 회원들이다. 2013년 개설된 혁신맘 카페는 본래 엄마들끼리 육아·교육 등 정보를 주고받던 커뮤니티였다. 사드가 서로 얼굴도 모르던 엄마들을 한데로 불러 모았다. 임신 9개월이라는 한 여성은 “혁신도시 평균연령이 30대일 정도로 대부분 젊은 부부들이 살아요. 집이 여러 채 되는 것도 아니고 이제 막 자리 잡고 살림 꾸려나가는데 사드가 들어온다니 잠이 안 옵니다”라고 말했다. 혁신맘 카페 운영자는 “(정부가) 폭탄 돌리기를 하고 있어요. 우리는 김천이 아니라 한반도 사드 배치에 반대합니다. 전자파도 걱정되지만 (사드 배치로) 총알받이가 되는 게 무엇보다도 두려워요”라고 말했다. 혁신맘 카페 이외에도 ‘김천수다맘’ ‘김천 혁신 마녀들의 수다방’ 등 온라인 커뮤니티와 엄마 부대가 반대 운동의 주축이 되고 있다.

“성주도, 김천도, 대한민국 어디에도 안 된다”

8월25일 혁신도시 내 안산공원에서 열린 촛불집회에도 주요 참석자들은 아이를 데리고 나온 젊은 부부였다. 촛불 모양 손전등을 손에 쥔 꼬마가 동요를 부르듯 “사~드 배치, 결~사 반대”를 흥얼거렸다. 시민 1500여 명이 잔디밭에 돗자리를 깔고 앉았다. 혁신도시 주민 민창기씨도 아내와 함께 세 아이를 데리고 집회에 참석했다. 열한 살 첫째부터 네 살 막내까지 가족들은 나란히 ‘사드 반대’ 머리띠를 두르고 있었다. 민씨는 대구에서 김천으로 이전한 직장을 따라 지난 5월 이곳으로 이사를 왔다. 민씨의 아내는 “하루아침에 날벼락을 맞은 기분”이라고 말했다. “신랑이 대구에서 통근해도 되는데 김천혁신도시가 아이 키우기 좋은 환경이라고 해서 일부러 이사 왔거든예. 인구 유입이 많아서 초등학교도 증축하고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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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IN 조남진김천혁신도시 도심 곳곳에 사드 배치를 반대하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이날 국방부는 혁신도시에 위치한 공기업을 찾았다. 오전 9시30분에는 한국도로공사에서, 오후 4시30분에는 한국전력기술에서 각각 안보교육을 실시했다. 명목은 ‘안보’였지만 내용은 ‘사드 홍보’로 채워졌다(국방부, 공기업에서 ‘사드 홍보’ 기사 참조). 참석자 대다수는 당일 국방부가 방문할 때까지 이 사실을 몰랐다. 한전기술 노조 관계자는 “아침 8시50분쯤에 갑자기 안보교육이 잡혔다. 사실상 롯데 골프장을 사드 후보지로 내정해놓고 주민설명회라는 요식행위를 하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박우도 혁신도시 대책위원장과 김서업 사무국장은 국방부에 항의하는 뜻에서 아침 8시20분부터 한국도로공사 앞에서 1인 시위를 했다. 박우도 위원장은 “(국방부가) 이렇게 얍삽하게 하면 안 됩니더. 김천 시민과 성주 군민을 님비로 몰고 갈라치기하려고 하는데 속지 말아야 됩니더. 대다수 성주 군민들도 아직 반대하고 있잖아예”라고 말했다. 김서업 사무국장은 얼마 전 성주 촛불집회를 찾았다가 많이 놀랐다고 했다. “언론에서는 이제 강경파만 남았다고 나오잖아요. 그런데 가보니까 촛불집회 나오는 분들이, 아이 엄마, 할머니 이런 보통 주민들인 거예요. 거기서 ‘성주가 싫은데 어떻게 김천에 가라고 하겠느냐’라는 발언이 나와서 정말 감동받았어요. 그러니 우리가 어떻게 딴 데 놓으라고 하겠어요.”

김 사무국장의 말처럼 성주도 사드 반대 촛불을 계속해서 이어가고 있다. 8월24일 오전 롯데 골프장이 있는 성주군 초전면 소성리 마을회관에 들렀다. 할머니 10명이 한글 초급 교재를 펴놓고 10시30분에 시작하는 수업을 기다리고 있었다. 파란 리본을 단 장 아무개 할머니는 사드 때문에 “눈물이 날라 칸다”라고 말했다. “우리가 못 배우고 바보라서 여기다가 가져다놓나 싶니더. 평생 배곯고 살다가 이제 공부 좀 할라 카니까 사드를 갖다 놓나 말이다.”

8월22일 김항곤 성주군수가 국방부에 제3후보지 검토를 공식 요청했다. 이후 한창때 참석 인원인 1000여 명보다는 다소 줄었지만 여전히 800여 명이 매일 밤 군청 앞에 모인다. 8월24일 찾은 성주군청 앞 촛불집회에서는 젊은 층뿐만 아니라 고령의 주민도 다수 눈에 띄었다. 성주읍에 사는 박 아무개씨(63)는 “초전면 참외는 성주 참외 아이가. 외지 사람들한테는 죄다 성주지 누가 그걸 구분하노. 사드가 그렇게 중요하면 군수 집 뒤에 놔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초전면에서 참외 농사를 짓는다는 한 40대 주민은 “성산포대에 배치된다고 할 때부터 촛불집회에 나와서 반대했어요. 제3후보지는 주민들을 분열시키려고 나온 얘기라고 생각합니다. 이러다가 결국 ‘성산포대가 최적지다’라고 나오면 그때 가서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어요. 계속 반대해야지”라고 말했다.

기자명 김연희 기자 다른기사 보기 un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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