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26일자 주요 일간지 1면에는 같은 사진이 실렸다. 이철성 신임 경찰청장이 우병우 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에게 허리 숙여 악수를 하는 장면이었다. ‘인사 검증 민정수석에게 깍듯이 인사하는 경찰청장’과 같은 사진 설명이 덧붙었다.

이 청장은 23년 전 음주운전 사고를 내고도 경찰 신분을 밝히지 않아 징계를 피했다. 그는 국회 인사청문회에 나와 청와대 인사 검증 때 이를 알렸다고 밝혔다. 부실 검증 논란이 불거졌다. 인사 검증 업무를 총괄한 우 수석에 대한 책임론도 일었다. 8월24일 박근혜 대통령은 이 청장 임명을 강행하며 우병우 책임론을 일축했다.

우병우 수석이 버티기에 들어가면서 대통령의 지지율도 곤두박질치기 시작했다. 한국갤럽의 8월 넷째 주 여론조사에서 30%를 기록했다(±3.1%포인트, 95% 신뢰수준). 부정 평가 이유로 ‘인사 잘못함·검증되지 않은 인사 등용’이 4%포인트 상승해 8%였다. 부정 평가 이유의 4위를 차지했다. 인사 검증 실패 여론은 한동안 계속되리라 보인다. 우 수석이 검증한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후보자는 ‘반값 전세’ 의혹 등에 휩싸였다. 그는 경기도 용인 수지의 307㎡(93평) 아파트를 7년여 동안 전세 1억9000만원에 살았다는 점이 드러나 논란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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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8월25일 이철성 신임 경찰청장(오른쪽)이 우병우 민정수석에게 고개 숙여 인사를 하고 있다.
여론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면서 여당에서도 우병우 사퇴론이 퍼지고 있다.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를 비롯해 김무성·오세훈 등 여권의 대선 주자들도 ‘사퇴’를 언급한다. 청와대는 꿈쩍도 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공세에 나섰다. 정치권에서는 8월21일 〈연합뉴스〉에 나온 청와대 한 관계자 멘트를 ‘박심’으로 해석한다. “우병우 죽이기의 본질은 임기 후반기 식물 정부를 만들겠다는 의도다. 우 수석에 대한 첫 의혹 보도 후 일부 언론 등 부패 기득권 세력과 좌파 세력이 우병우 죽이기에 나섰지만, 현재까지 의혹이 입증된 것이 없다.” 이 같은 공식 멘트를 두고 우 수석의 파워가 막강하다는 해석도 나왔다.

참여정부 때에 끊어졌다가 이명박 정부부터 다시 민정수석은 검찰 출신 인사들이 차지했다. 민정수석을 통한 검찰권 통제를 위해서다. 민정수석은 인사 검증이라는 명분으로 검찰 인사에도 개입한다. 검찰 내 주요 보직에 우병우 사단이 배치되었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인사뿐 아니라 주요 수사 대상에 대한 압수 수색·계좌 추적과 핵심 정보도 민정수석실로 들어간다. 사정기관의 한 관계자는 “우 수석은 정보를 모으고 만질 줄 안다. 검찰만이 아니라 국정원·경찰 등 각종 정보가 나오는 라인에 자기 사람이 있다. 우 수석 관련해 차적 조회를 한 경찰과 기자가 입건되었는데, 경찰 내 우병우 라인의 작품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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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과 이석수 특별감찰관 수사를 동시에 지휘할 윤갑근 특별수사팀장.
8월18일 서울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혐의로 서울의 한 경찰서 소속 경위와 일간지 기자를 불구속 입건했다고 밝혔다. 기자의 부탁으로 차량 3~4대 차적을 조회해줬는데, 해당 차가 우병우 수석의 가족 차량으로 알려졌다. 경찰청이 첩보를 입수해 조사하다 서울청 지능범죄수사대에 수사를 넘겼다.

정권 부담 덜어준 검사들은 줄줄이 승진

우병우 수석에 대한 수사는 검찰 특별수사팀이 맡았다. 팀장은 윤갑근 대구고검장이다. 특별수사팀이라는 독립적인 모양새를 갖춘 듯 보이지만, 내용을 뜯어보면 사정은 다르다. 팀을 지휘하는 윤 고검장도 우 수석과 청와대 입김에서 자유롭지 않다. 그는 우 수석과 사법연수원 제19기 동기다. 2014년 11월 ‘정윤회 문건 사건’ 당시 대검 강력부장 겸 반부패부장 직무대리로 수사를 이끌며, 당시 민정비서관이던 우 수석과 함께 사건을 ‘잘 처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 사건 처리로 우병우 민정비서관에 대해 박 대통령의 신임이 두터워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우병우 비서관은 민정수석으로 영전했고, 윤갑근 대검 강력부장도 직무대리를 떼고 반부패부장이 되었다. 윤 고검장은 같은 해 3월 서울시 간첩조작 사건 때도 국가정보원 직원과 민간인 협조자를 봐주기 처리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국가보안법상 무고·날조죄 대신 형이 좀 더 가볍게 적용되는 형법상 모해증거위조죄로 기소했다(〈시사IN〉 제341호 ‘황교안 장관 책에 밑줄 쫙 하셔야죠’ 기사 참조). 당시 그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게 날조고, 형체가 있는 걸 만들어내는 게 위조다”라는 해석을 내놓기도 했다. 국정원 윗선뿐 아니라 서울시 간첩조작 사건을 수사한 검사들이 국정원이 내놓은 증거가 조작된 사실을 몰랐던 것으로 보고 전원 무혐의 처분해주었다.

지난해 12월 그는 고검장으로 영전했다. 검사 출신 더불어민주당 조응천 의원은 윤 고검장을 ‘정권의 소방수’라 규정했다. 정권에 부담이 된 사건을 잘 진화했다고 꼬집은 것이다. 이런 비판을 의식한 듯 윤 고검장은 “살아 있는 권력이 됐든 누가 됐든 정도를 따라가겠다”라고 말했다. 서울중앙지검장 후보군에 올라가 있는 윤 고검장으로서는, 내년에 있을 인사를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는 처지다. 검찰 인사는 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이 관여한다.

우병우·이석수 두 사건을 모두 맡은 특별수사팀은 8월25일 이석수 특별감찰관의 고발인 조사부터 들어갔다. 첫 조사 대상을 두고, 벌써부터 우병우 수석은 봐주고 이석수 감찰관만 세게 수사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기자명 김은지 기자 다른기사 보기 smil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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