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소득’이란, 국가가 조건 없이 모든 사회 구성원들에게 정기적으로 제공하는 현금 급여다. 더군다나 쥐꼬리만 한 기초연금이나 아동수당과 달리, 기본적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수준의 현금 급여를 제공하는 것이 원칙이다. 이런 사회의 시민들은 기본 급여를 사회적으로 보장받을 수 있기 때문에 자신이 원하지 않는 노동을 하면서 생계를 유지해야 하는 ‘임금 노예’ 생활을 하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이 글에서 나는 자본주의 체제에서 기본소득이 갖는 경제적 함의를 비판적으로 살필 것이다.
기본소득론자들은 당초 ‘개인의 독립된 삶을 보장하는 수준의 충분한 급여’를 주장했다. 직업을 갖지 않더라도 기본적인 삶을 유지할 수 있는 수준의 현금이어야 기본소득으로 불릴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어떤 규모의 돈이면 기본적 삶을 유지할 수 있을까. 1인당 월 50만원은 결코 충분한 금액은 아니지만, 한국 인구를 5100만명으로 볼 때 기본소득에만 연간 300조원의 예산이 편성되어야 한다. 지난해 보건·복지·고용 관련 예산이 120조원 수준이었다. 물론 기본소득이 제공되면, 기초생활급여·아동수당·기초연금 등 현재의 복지급여 가운데 일부를 폐지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새롭게 필요한 예산 규모가 지나치게 높다. 북유럽 국가들처럼 국민부담률(시민들이 내는 세금과 사회보험료를 GDP로 나눈 것)이 50%에 가깝고 GDP 대비 공공사회지출 비율도 20~30%라면 기본소득 역시 불가능한 제도는 아닐 것이다. 다만 이 경우에도, 어느 계급이 기본소득 재원을 부담할 것인가에 대한 쟁점은 여전히 남는다. 북유럽의 경우, 자본가 계급보다 노동자 계급이 훨씬 더 많이 분담한다.
또한 기본소득이 노동 공급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좀 더 진지하게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기본소득과 임금의 가장 큰 차이점은 노동력의 판매 유무다. 한국에서 대다수 개인과 가구소득의 대부분은 노동을 통해 번 돈으로 이루어진다. 자산소득이 노동소득을 초과하는 인구는 상위 1% 가구에 한정되어 있다. 만약 개인이 노동을 하든 하지 않든 기본소득으로 기초적인 삶을 유지할 수 있다면, 노동소득에 대한 의존도가 상당히 낮아질 가능성이 크다. 최저임금만 주는 직장에 다녀도 기본소득이 받쳐주는 만큼 그럭저럭 생계를 꾸려갈 수 있을 것이다. 파트타임으로 취업해서 짧은 시간만 일하고 남는 시간을 자율적으로 활용할 수도 있다.
흔히 노동을 자아실현의 수단이라고 하지만, 한국인 대다수는 고된 노동을 통해 생계를 꾸려간다. 현존하는 노동시장에서 양질의 일자리는 노동인구의 일부에게만 제공된다. 공무원, 공기업, 대기업, 안정된 중소기업 등의 일자리가 모든 구직자가 선호하는 대상이다. 심지어 이런 일자리에서조차 노동자들의 주체성 및 자아실현을 보장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중소기업이나 저숙련 서비스업에서 제공하는 저임금 일자리는 넘쳐난다. 그럼에도 노동자들은 고된 노동과 인격적 상처, 미래에 대한 불안 속에서 삶을 꾸려나가며 심지어 자긍심과 자기 존재의 정당성을 만들어내고 만다. 이것이 중요하다.
자본가와 전문직은 일하고 노동자는 놀고먹는다?
이런 현실에서 모든 개인에게 인간적 존엄을 유지할 만큼 충분한 현금 급여를 주면 노동 동기가 감소할 가능성이 크다. 현재 당신이 직장에서 쥐꼬리만 한 월급을 대가로 인간적 수모를 겪고 있다면, 기본소득이 보장되는 경우, 당장 그 일을 때려치울 수 있다. 소비에 대한 욕망이 크지 않다면 말이다. 결국 노동 과정에 대한 자본 측의 지배력이 약화되고, 노동조합의 협상력은 크게 강화될 수 있다. 노동자들이 다른 생계수단(기본소득)을 보장받으면, 일을 해야 할 필요성이 낮아지기 때문이다. 자본 측이 인력을 구하려면 더 높은 임금을 제공하고 작업 과정에서 노동자들을 존중하겠다고 약속할 수밖에 없다.
이후에는 어떻게 될까? 두 시나리오를 제시할 수 있다. 첫 번째 시나리오는, 자본 측이 실질임금 상승과 노동 측 협상력 강화에 설비투자 증가(기계를 도입해서 노동자를 대체)로 대응하는 경우다. 인공지능을 지닌 스마트한 기계들이 떠오르는 상황에서 제조업뿐 아니라 서비스업에서도 기계가 인간을 대체하는 과정이 급속히 진행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경제학자들은 이를 ‘노동절약적 기술 진보’라고 부른다. 이렇게 되면 자본 측은 노동생산성(노동자 1인당 생산하는 제품이나 서비스의 가치)의 상승 덕분에 단기적으로는 쾌재를 부르게 될 것이다. 그러나 사회 전체적으로는 노동 수요의 감소에 따라 실업자가 증가한다.
기본소득이 없는 현재 상황에서 기계가 인간의 일자리를 빼앗으면, 노동자들의 실질소득이 감소할 수밖에 없다. 국민소득에서 차지하는 노동 측의 몫이 줄어들면서 불평등은 심해질 것이다. 그러나 기본소득이 보장된다면, 실업인구들이 기본소득을 통해 생계를 유지할 수 있다. 가계의 총소득 감소로 인해 유발될 수 있는 총수요 하락도 기본소득을 통한 가계지출로 어느 정도 완화될 것이다. 이 경우 노동소득이 있는 가구는 오히려 늘어난 임금과 기본소득으로 과잉 소비주의를 향유하면 되고, 실업자 가구는 기본소득으로 먹고살 수 있다. 결국 자본가와 중간계급, 전문직 종사자들은 일하고, 노동자들은 ‘놀고먹는 세상’이 된다. 이런 상황을 유토피아라고 할 수 있을까?
두 번째 시나리오는, 시민들의 노동 동기가 대폭 추락하면서 경제 시스템의 붕괴를 초래하는 경우다. 일하려는 사람이 줄어들면 실질임금이 올라간다. 이에 더해 기본소득의 재원을 마련하기 위한 법인세율 상승으로 자본 측의 이윤율이 크게 떨어질 수 있다. 이런 상황에 대해 자본 측이 투자 회피로 대응한다면, 기업 경쟁력이 장기적으로 하락할 수밖에 없다. 자본 측의 경쟁력 약화는 노동생산성 하락을 초래하고 이는 다시 한국 자본주의의 대외 경쟁력을 약하게 만들 것이다.
당장 기본소득을 통해 생계를 보장받을 수 있는 개인들은 행복하겠지만 경쟁력의 약화, 노동생산성 하락 등은 경제성장을 정체시키고 조세 기반을 약화시키며, 기본소득 자체의 지속 가능성까지 위협하게 된다. 현금이든 현물이든 경제의 지속 가능성을 해치면서 도입된 복지제도는 자본뿐 아니라 노동의 위기로도 치달을 수 있다. 마르크스주의 용어로 표현하자면, ‘두 계급의 공멸’을 초래할 수 있다. 정치적으로 올바른 것이 경제적으로 언제나 옳은 것은 아니다. 어느 시나리오가 더 현실적일까? 필자는 두 번째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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