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올해 치른 20대 총선에서 녹색당 비례후보로 출마했다. 그동안 고민해온 기본소득을 한국 사회의 화두로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다. ‘모두에게 매월 40만원의 기본소득을 보장하자’는 정책은, 어떤 보수 언론이 “황당 공약”으로 주목했던 정도를 빼면 기대만큼 화제를 끌지 못했다. 오히려 총선 이후 스위스의 기본소득 국민투표 소식이 전해지면서 녹색당의 공약이 뒤늦게 알려졌다.

진보적인 정책들이 선거 공간에 등장해 대중적인 지지를 얻으려면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하다. 누군가는 지금부터라도 용기를 내서 말해야 한다. 그래야 5~10년 후라도 더욱 진전된 수준의 논의를 발전시켜나갈 수 있다. 아마 내년 대선에서는 기본소득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될 것이다. 지속적인 논의를 기대하며, 이 글을 통해 기본소득에 대한 비판 가운데 대표적인 세 가지 질문에 답변해본다.

북유럽의 복지국가 모델을 먼저 도입해야 하는 것 아닌가?

기본소득은 교육이나 의료 등 현물 복지와 대체 관계에 있지 않다. 재원 마련이 어려운 탓에 종종 우선순위 문제처럼 얘기되지만 기본소득은 사회의 공공성을 강화하는 다른 복지 안전망과 함께할 때 적절하게 기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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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당 제공2월15일 녹색당 기본소득선거운동본부 출범 기자회견에서 당원들이 ‘기본소득으로 빈곤 문제와 가속화되는 경제 불평등을 해결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또한 북유럽 복지국가들이 기본소득 논의에 적극적인 상황이 말해주듯, 정규직 일자리가 줄어드는 시대가 되면서 정규직 노동자의 조세를 기반으로 한 복지국가 모델은 한계에 부딪혔다. 기본소득은 이런 상황에서 남성 정규직 노동자 중심 시스템을 넘어 다양한 주체들과 함께할 수 있는 시스템을 제안한다.

한국은 유럽의 복지국가와 상이한 역사적 맥락을 지니고 있다. IMF 구제금융 직후 한국에는 신자유주의와 복지 시스템이 동시에 밀려들어 왔다. 복지 시스템에서는, 개인이 자기 자산은 얼마인지, 일자리를 구하려 노력하고 있는지, 부양가족이 있는지 등을 낱낱이 밝혀서 자신이 복지 수혜자가 될 자격이 있는지 증명해야 했다. 복지와 사회적 연대를 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복지 수혜자 선별 작업을 통해 가난한 자와 그렇지 않은 자를 구분해왔다. 결국 임금노동을 하는 사람들에게만 가치가 부여되었다. 이제 복지의 패러다임이 달라져야 한다. 조건을 따지지 않고(무조건성), 모든 구성원에게(보편성), 개별적으로 제공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는 기본소득은 새로운 변화를 견인할 수 있다.

한편 기본소득은 복지국가 시스템을 뛰어넘는다. 인간의 자유와 평등을 적극 실현하기 위해 기본소득을 제안해온 오랜 흐름이 있다. 많은 이들이 19세기 노예해방, 20세기 보편 참정권 쟁취에 버금가는 21세기의 세계사적 과제로 기본소득을 말한다. 인간을 억압으로부터 해방하기 위한 역사적인 기획이다. 노예해방이나 보편적 참정권처럼 기본소득도 좀 더 적극적인 차원에서 논의될 수 있을 것이다. 예컨대 기본소득은 여성과 같은 사회적 약자에게 경제적 기반을 제공함으로써 실질적 성 평등을 지향한다. 기본소득은 여성 빈곤 완화를 위한 수단이자, 고용·결혼제도·시민권 같은 영역에서 여성의 자유를 증진할 잠재력을 갖고 있다. 여성을 무임승차자(‘김치녀’)나 소비자(‘된장녀’)로만 재현하는 시도에서 벗어나 자기실현의 욕심에 가득 찬 여성을 발굴하고 드러내는 데 기여할 것이다.

일도 안 하는 사람한테 무슨 근거로 돈을 주나?

기본소득을 주면, 일하지 않는 사람이 너무 많이 생겨서 경제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뿐더러 심각한 사회 갈등이 유발될 거라는 우려가 가장 먼저 제기된다. 그런데 지금 상황은 대체 어떤가? 일을 하고 싶어도 일자리가 없다. 설사 일자리가 있다 해도 최소한의 생계 보장이 안 되어 포기할 수밖에 없다. 일자리를 구한 사람이라면, 과로가 기본이다. 쉬지 못하고,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시간을 보낼 수도 없으며, 병에 걸려 건강을 잃기 일쑤다. 정규직 취업이 최종 목표인 우리 사회에는 소박하게라도 다른 이들과 함께 살고 싶은 사람들, 이전 세대와 다른 삶을 추구하는 이들은 설 자리가 없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선택해 적당히 일하며 살 수 있는 사람들이 늘어야 더 행복한 사회가 되지 않을까?

생각을 전환해보면 우리 모두는 ‘일’을 하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 사회적으로 필요한 가치 있는 일인 경우에도 임금을 받지 못할 뿐이다. 예컨대 무임금 가사노동이나 돌봄노동, 예술가의 작업 활동, 시민들의 정치참여 등은 왜 일에서 제외되어야 한단 말인가? 현재 한국의 저출산 문제나 육아 문제를 둘러싼 갈등을 풀기 위한 실마리도 여기에 있다고 본다. 지금껏 노동으로 인정하지 않았던 가사나 육아 등 비임금 노동을 적극적으로 인정하고 이에 대한 보상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또 기본소득은 고용보조금이나 실업보험과 다르다. 누가 일을 하는지 안 하는지, 앞으로 할 것인지 안 할 것인지를 애초에 묻지 않는다. 시민으로서의 권리를 실질적으로 보장하려는 제도이기 때문이다. 기본소득의 다른 말인 ‘시민배당’은 토지·공기·물 그리고 인류가 함께 쌓아온 지식까지 포함하는 다양한 공유재에 대한 모두의 권리를 내포한다.

물고기를 줄 게 아니라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줘야지!

기본소득이 사회에 대한 개인의 의존성을 심화시키며 자립을 저해한다는 비판이다. 그러나 우리가 살아가는 데에는 가족·친구·이웃과 같이 서로에게 의존하는 관계가 필요하다. 가난한 이들에게는 그러한 기본적인 관계를 만들고 유지하는 비용도 부담스럽다. 경조사비 외에도 누군가와 시간을 보낼 때 드는 교통비나 커피값, 밥값이 없어서 고립되는 경우도 빈번하다. 기본소득은 관계를 회복하고 공동체를 형성할 수단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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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예술가의 작업 활동 등 생각을 전환해보면 우리 모두는 일을 하고 있다.

인류학자 제임스 퍼거슨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현금 부조 사례를 분석하며 의존성 그 자체를 병적인 것으로 취급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빈민들은 항상 의존적이었으며, 가난할수록 더욱 의존하게 된다. 현금 지급은 이들의 사회적 세계에 의존성을 새로 도입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가난한 사람들이 덜 해롭고 더 평등한 상호 의존의 관계로 나아갈 수 있게 돕는다는 것이다.

현금을 개인에게 지급하는 기본소득은 처분에 대한 자유를 통해 자율성과 책임성을 기를 수 있는 적절한 동기와 기회를 만들어낼 것이다. 인간으로서의 권리, 개인으로서 자립에 대한 감각을 키워줄 것이다.

저성장 시대에는 이미 바다에 물고기가 없다. 얼마 안 되는 물고기마저 극히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포획된다. 물고기 잡는 방법에 대한 강의는 지금도 넘치게 나오고 있다. 얼마 남지 않은 물고기를 잡는 방법을 배우는 동안에 굶어죽는 사람이 속출한다.


지금까지 봤듯이, 기본소득은 단순한 분배 정책 이상의 것이다. 대한민국 헌법 제34조 1항은 “모든 국민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가진다”라고 되어 있다. 기본소득은, 사회가 구성원에게 최소한의 안전망을 제공해야 한다는 헌법 정신을 정책으로 표현한 것이기도 하다. 기본소득은 불안정한 개인들의 삶의 조건을 재구성하고, 주체적으로 미래를 기획할 수 있게 하는 사회적 소득이다. 권력으로부터 배제된 이들에게 참여의 기회를 줄 것이다.

기자명 김주온 (전 녹색당 20대 총선 비례대표 후보·기본소득청‘소&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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