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는 국내총생산(GDP) 가운데 일정 부분을 세금과 사회보험료로 걷는다. 이를 총조세 혹은 국민부담금(세금+사회보험료)이라고 부른다. 정부는 국민부담금을 일반 사업(행정·국방·인프라·연구개발 등)과 공공사회지출(실업급여·보육지원·건강보험 등 각종 복지 서비스)로 사용한다. 여기서 공공사회지출로 사용되는 각종 복지비용을 합친 뒤 시민들에게 동일한 액수로 나누면 기본소득을 산출할 수 있다. 단, 〈이코노미스트〉는 이 계산에서 건강보험에 대한 정부지출은 제외했다.
지금까지 설명한 방법으로, OECD에서 한국 등 10개국(2014년 현재)을 골라 지급 가능한 기본소득 급여를 계산해보았다(오른쪽 표 참조). 모든 복지급여를 합친 뒤 각 시민들에게 동일한 금액으로 배분하는 경우를 가정했다. 단, 이 기사에서 사용한 각종 통계수치는 ‘OECD 통계 창고(OECD.Stat)’에서 인용한 것으로, 1인당 GDP가 ‘구매력 기준(해당국의 물가를 ‘세계 평균 물가’로 치환한 다음 그 나라 소득으로 구매 가능한 재화의 가치를 계산)’으로 표현되어 있다. 그래서 국제통화기금(IMF) 통계에서 2만8700달러에 불과한 한국의 1인당 GDP(2014년)가 OECD.Stat에서는 3만3400달러로 평가된다.
이 〈표〉에 따르면, OECD 국가들이 지급할 수 있는 기본소득은 1인당 연간 900달러(멕시코)에서 9800달러(덴마크)에 이르기까지 차이가 매우 크다. 덴마크(9800달러), 핀란드(9000달러) 등 북유럽 국가들의 예상 기본소득 액수가 많은 이유는, GDP가 높을 뿐 아니라 국민부담률 및 공공사회지출률 역시 OECD 최고 수준이기 때문이다. 즉, 세금을 많이 걷어서 복지 부문에 높은 비율로 투입하고 있다. 핀란드의 경우, 당초 계획대로 각종 복지 프로그램을 월 800유로(연간 9600유로=약 1만700달러=약 1200만원)의 기본소득으로 일원화하는 경우, 국민부담률을 현행 43.9%에서 48%로 4.1%포인트 높여야 한다. 미국은 구매력 기준 1인당 GDP가 5만4300달러로 덴마크·핀란드보다 높지만, 국민부담률(26%)과 공공사회지출률(19.2%)이 낮은 편이어서, 지급 가능한 1인당 기본소득은 6000달러 정도에 머물고 있다.
지급 가능한 기본소득은 연간 232만원
한국이 2014년 기준 지급 가능한 1인당 기본소득은 연간 2100달러(약 232만원)로 OECD에서 가장 낮은 편이다(멕시코 제외). 국민부담률이 24.6%에 불과한 데다 공공사회지출률 역시 10.4%에 머무르기 때문이다. 1인당 GDP로 한국(3만3400달러)과 비슷한 이탈리아(3만5400달러)의 경우, 기본소득으로 지급 가능한 금액이 한국의 3배가 넘는 7700달러에 이른다.
한국의 기본소득 가능성을 실제로 타진해보려는 연구도 이루어지고 있다. 강남훈 한신대 교수는 최근 발표한 논문 〈한국에서 단계적 기본소득 도입을 위한 재정모형〉에서 2018년의 추정 GDP(1905조원)를 기준으로 ‘낮은 기본소득(1인당 매월 30만원)’ 방안을 검토했다. 현존 복지 제도 대다수를 유지하면서 추가로 30만원의 기본소득을 지급하는 방식이다.
강남훈 교수에 따르면, 2018년 추정 한국 인구(5100만여 명)에게 1인당 30만원씩 지급하는 기본소득 프로그램의 비용은 모두 184조원 정도다. 그런데 한국의 국민부담률과 공공사회지출률을 OECD 평균(각각 34%, 21%) 수준으로 높이면 같은 해에 189조원 정도의 예산을 추가로 조달할 수 있다. 일단 논리적으로만 보면, ‘낮은 기본소득’ 제도는 재정적으로 가능한 수준이다. 한편 기본소득 관련 징세 규모를 줄일 수도 있다. 65세 이상 노인 가운데 상당수와 빈곤층(2018년 150만명 추정)은 기본소득과 비슷한 기초연금(노인) 및 기초생활급여(빈곤층)를 이미 받고 있다. 공무원과 군인 등은 연금 혜택이 일반 국민에 비해 매우 큰 편이다. 이런 측면을 감안해서 지급 규모를 조정하면 15조원 정도의 기본소득 관련 세금을 절감할 수 있다. 강남훈 교수는 “기본소득은 우리 경제의 능력으로 보아 얼마든지 실현 가능하다. 문제는 정치적 능력이다”라고 말했다.
한편 복지국가소사이어티 등 복지국가 운동 단체들은 복지의 보편성을 높이는 기본소득의 기본 취지에 동감하면서도 그 방법론과 실현 가능성에는 회의적인 편이다. 한국은 수조원 증세에도 심각한 조세저항이 불거진다. 이토록 복지 재정 조달이 어렵다면, 사회적 시민권이라는 기본소득 특유의 철학에 근거해서 모든 시민에게 균일한 급여를 제공하기보다는 복지 공급이 절박한 영역(청년·노인 등)에 재원을 우선 투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이상구 공동대표는 “복지는 단지 시민에게 돈을 주는 것이 아니라 신규 고용창출, 사회적 투명성 강화 등 부수적이지만 중요한 효과를 낸다. 그러나 기본소득에서는 이런 측면을 찾아볼 수 없다. 새롭고 혁신적인 제도를 앞세우기보다 현 복지 시스템을 더욱 효율화하고 포괄하는 대상을 넓히며 급여 수준도 차근차근 정상화해나가다 보면 기본소득 개념까지 구현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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