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받을 수 있다. 자격이 따로 없다. 가난을 입증하지 않아도 되고 구직 활동 서류를 낼 필요도 없다. 정부가 그냥 공짜 돈을 준다. 아무 데나 써도 된다. 책을 사도 되고, 커피를 마셔도 되며, 게임을 해도 된다. 그런 나라가 어디 있느냐며, 말도 안 된다고 손사래를 칠 것이다. 당신이 있는 곳이 ‘헬조선(요즘 이 말을 쓰면 국기 문란범이 될지도 모른다)’이 아니라 네덜란드나 핀란드라면 곧 현실이 된다.

기본소득 이야기다. 기본소득은 그저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선지자형 리더’ 김종인 더민주 전 비대위 대표도 기본소득 필요성에 공감한다(그가 왜 선지자형 리더냐고? 〈시사IN〉 제466호 ‘별에서 온 대표의 독단 혹은 결단’ 기사를 참고하시라). 김 전 대표는 여러 강연에서 “기본소득이 황당한 얘기일지 모르지만 개념을 파악하지 않으면 미래를 끌고 가기 어렵다”라고 말했다. 그동안 야당에서는 보지도 못한 리더십과 메시지 능력을 보여준 김 전 대표의 관심은 예사롭지 않다. 그는 대표에서 물러난 뒤 독일로 떠난다는데, 독일에서도 기본소득 바람이 불고 있다. 내년 대선 정국에서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경제민주화 2.0’의 고리가 기본소득이 될지도 모른다.

국장.jpg

공짜라면 양잿물도 좋아하는 심리 때문에 나라가 거덜 날 것이라고 염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또 기본소득이라면 으레 진보 진영의 헛소리라며 경기를 일으키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놀라지 마시라. 자본주의 ‘본토’ 미국은 진보뿐 아니라 보수 쪽에서도 기본소득을 그리 반대하지 않는다. 복지가 필요하다면 정부 개입이 가장 적은 기본소득이 재정 낭비를 줄여 차라리 낫다는 것이다. 4차 산업혁명 물결도 기본소득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로봇이 일자리를 대체하는 시대, 인공지능 시대에는 기본소득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변형된 기본소득은 이미 우리 앞에 와 있다. 기초연금, 성남시의 청년수당, 무상보육 역시 기본소득의 한 종류라 할 수 있다. 물론 한국에서 기본소득이 현실화되기 위해서는 증세가 필요하다. 유력 정치인들도 증세를 고심하다 폐기했다. 지갑 열기를 꺼리는 유권자 때문이다.

그럼에도 정치적 상상력이 현실을 바꾼다. 구도니, 인물이니, 진영에 갇히면 정치는 바뀌지 않는다. 기본소득 역시, 소득은 노동의 결과라는 고정관념을 뛰어넘을지 모른다. 경제전문가 이종태 기자에게 반대 의견까지 포함해 기본소득의 모든 것을 책을 쓰듯 심층적으로 다뤄달라고 했다. 앞으로도 내년 대선과 관련한 어젠다를 두툼한 ‘매거진 북’ 형태로 점검하려고 한다. 이번 기본소득 커버스토리는 일종의 파일럿이다.

내게 당장 매달 40만원이 주어진다면? 모두 〈시사IN〉을 정기구독해 주변에 나눠주겠다. 이유는 다 아실 것이다. 지난 한 주 한숨만 늘었다.

기자명 고제규 편집국장 다른기사 보기 unjusa@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