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소 냉전이 막바지로 치닫던 1985년, 한 소녀의 사진이 〈내셔널 지오그래픽〉 표지에 실렸다.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략으로 부모를 잃고 난민촌에서 사는 소녀였다. 소녀의 남루한 차림과 적대적인 표정, 아름다운 녹색 눈동자는 많은 이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아프간 소녀’로 널리 알려진 이 사진은 고통받는 난민을 대표하는 이미지가 되었고 ‘제3세계의 모나리자’라고까지 불렸다.
2002년 〈내셔널 지오그래픽〉과 이 사진을 찍은 스티브 매커리는 이 소녀를 다시 찾아 나섰다. 20년 가까이 지난 터라 이름도 모르는 소녀를 찾기는 쉽지 않았다. 몇 명이 자신이 아프간 소녀라고 밝혔으나 사실이 아니었다. 사진작가는 아프가니스탄 산악지대에서 찾은 한 성인 여성이 진짜 아프간 소녀라고 확신했다. 이제 이를 증명할 방법을 찾아야 했다. 그녀가 남긴 것은 사진 한 장뿐. 다행히 사진에 홍채가 선명하게 드러나 있었다. ‘홍채 인식의 창시자’로 평가받는 케임브리지 대학의 존 도그먼 교수는 그녀가 아프간 소녀라고 확인해줬다.
1990년대 초 도그먼 교수가 최초로 홍채로 사람을 구분해내는 컴퓨터 프로그램을 만든 후, 홍채 인식의 오인식률(다른 사람으로 잘못 인식할 확률: False Match Rate)이 매우 낮다는 것이 밝혀졌다. 홍채 인식의 오인식률은 연구마다 차이가 있지만 보통 수백만 분의 1 수준으로 본다. 우리가 이미 자주 사용하는 지문 인식의 오인식률이 수천 분의 1이다.
사람을 정확히 가려내는 이 홍채 인식은 정부 등 권력기관에 ‘꿈의 기술’일 수 있다. 한번 등록하면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에서처럼 안구를 남과 바꿔치기하지 않고는 신원을 속일 수 없기 때문이다. 미국 정부 기관들이 홍채 인식 연구를 오랫동안 지원해왔고 인도 정부는 실제로 이를 사용하고 있다. 인구가 12억명이나 되는데 신원확인 제도가 미비해 골치를 앓던 인도 정부는 우리나라의 주민등록 제도와 비슷한 ‘아다르’를 만들었다. 아다르 카드를 만들기 위해서는 지문과 얼굴 사진에 더해 홍채를 기록해야 한다. 논란도 있었지만 지난 4월까지 10억명이 등록했다.
홍채 인식 기술은 금융 서비스에 더 적합
갤럭시 노트7으로 홍채 인식을 할 때 빨간색으로 깜빡이는 부분이 바로 적외선 조명이다. 홍채 인식이 눈 건강에 나쁜 영향을 끼치지 않을까 걱정하는 사람도 있다. 삼성전자가 광생물학적 안정성을 평가하는 국제 기준(IEC 62471)을 만족시켜 인증을 받은 것이니 크게 우려할 수준은 아니다.
이런 우려보다는 사용해보고 불편함을 지적하는 사용자들이 적지 않다. 이미 상용화된 스마트폰 ‘지문 인식’ 잠금 해제는 버튼을 눌러 기기를 켜면서 동시에 인식까지 할 수 있다. 홍채 인식은 기기를 켜고 화면을 밀어낸 이후에야 홍채 인식을 시작할 수 있다. 안경·렌즈를 착용하고 있을 때 인식률이 떨어지고 직사광선 아래나 너무 어두운 곳에서는 인식이 실패한다. ‘가까이 오세요’ ‘디바이스를 위로 살짝 올리세요’ ‘멀어지세요’ ‘눈을 크게 뜨세요’라는 안내를 받아야 한다. 이렇게 눈의 위치를 맞추기 위해 꽤 신경을 써야 하는 점 때문에, 홍채 인식은 스마트폰 잠금 해제보다는 좀 더 안전할 필요가 있는 금융 서비스에 적합하다. 갤럭시 노트7에서는 아이디·패스워드 입력을 대체해주는 ‘삼성 패스’와 특정 데이터를 숨겨주는 ‘보안 폴더’에 홍채 인식을 사용할 수 있다. 홍채를 이용한 공인인증서 발급도 가능하다.
홍채 이외에도 여러 생체 인식 기술도 한창 개발 중이다. 얼굴 모양을 인식하는 ‘안면 인식’도 꽤 정확도가 높아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이나 윈도 PC 로그인에 쓸 수 있다. 강한 빛으로 손가락·손바닥의 혈관 모양을 인식하는 ‘정맥 인식’도 높은 보안성으로 일본의 현금입출금기(ATM)에 사용되고 있다. ‘음성 인식’은 해외 금융권에서 시범 서비스를 통해 출시를 앞두고 있다. 스페인에서는 겨드랑이 냄새로 사람을 구분하는 센서를 만들어 85% 정확도를 보였다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 이 밖에 걸음걸이 모양이나 손동작, 휴대전화 사용 패턴처럼 사람마다 다른 행동을 인식해 개인 인증을 하려는 연구도 활발하다.생체 정보를 인터넷 어딘가에 모아서 저장한다면 편의성은 훨씬 높아진다. 스마트폰이나 PC가 바뀌어도 걱정 없이 평생 모든 서비스를 그대로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생체 인식 중앙집중화는 공공 영역에서부터 점점 확대되고 있다. 미국은 9·11 이후 테러범을 잡기 위해 국내에 입국하는 모든 사람의 지문을 수집하고 있다. 반대도 많았으나 지금은 여러 나라가 뒤따르고 있다.
생체 정보 수집에서 우리나라는 이와 비교할 수 없이 앞서 있다. 1968년 북한 무장공비들의 청와대 기습사건(이른바 김신조 사건) 직후, 정부는 모든 국민의 지문 수집을 시작했다. 그 덕에 우리는 손가락만 있으면 언제든지 무인 민원발급기에서 주민등록등본을 발급받을 수 있다. 경찰은 테이블에 묻은 손가락 지문으로 용의자를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이 생체 정보가 유출된다면? 생체 정보와 함께 ‘생체(生體)’ 자체가 위험해진다면? 실제 말레이시아에서 지문 인식 차를 훔치려고 차주의 손가락을 자른 강도가 있었다. 홍채 인식 기술도 마찬가지다. 이제 기술은 준비되었다. 무엇을 위해 어디까지 쓸지, 어떻게 보호할지 결정하는 것이 남은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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