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도 시나브로 16년째야. 그 16년 동안 세상은 어떻게 변했을까? 내가 지녔던 피처폰이 스마트폰으로 바뀌었고, 그와 함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매우 활발하게 되었어. 그래서 지하철에서 종이신문이나 책을 보는 사람은 거의 사라지고 IT 기기를 들여다보고 있는 사람이 굉장히 늘어났어. 국제 정세를 보면 중국이 전문가들의 예측보다 훨씬 일찍 세계 제2의 경제대국이 되었고, 서방국가들과 나머지 나라들 사이에 냉전이 재현될 조짐이 보이고, 중동 지역에서만 목격되던 극단주의 이슬람 테러가 전 세계로 번지고 있어.

과거를 되돌아보는 건 그리 어렵지 않지만, 미래를 헤아려보는 건 힘든 일이야. 꾀바른 사람이라면 미래를 예측할 때 되도록 먼 미래를, 되도록 추상적으로 할 거야. 가까운 미래에 대한 예측은 우려먹을 수 있는 시간이 너무 짧아서 ‘예언자’에게 불리하지. 그래서 그는 일러도 자기 생애가 끝난 뒤의 시점에 대한 예측을 할 거야. 죽은 다음에 조롱당하는 건 살아 있을 때 조롱당하는 것보다 견딜 만할 테니까. 또 너무 구체적인 예측은 엇비슷하게 맞혔다고 하더라도 꼬투리를 잡히기 쉽지.

세기말이 가까워오면 다음 세기에 대한 ‘예언자들’이 생기기 마련이야. 그런 사람들을 흔히 ‘미래학자’라고 부르지. 20세기 말에도 마찬가지였어. 21세기의 상황을 예측하는 책이 여럿 나왔지. 그 가운데 제법 널리 읽힌 책이 자크 아탈리라는 프랑스 사람이 쓴 〈21세기 사전〉이야. 이 책은 프랑스에서 1998년에 나왔고, 바로 그해에 중앙M&B에서 한국어판이 나왔어. 자크 아탈리는 이런 예언서를 쓰기에 적합한 경력을 지닌 사람이야. 자크 쥘리아르와 미셸 위노크가 책임 편집한 〈프랑스 지식인 사전:인물, 장소, 사건〉(1996)에 따르면, 아탈리는 1943년 알제리의 알제에서 태어났어. 역시 그 ‘사전’에 따르면 아탈리가 받은 교육과 학위들은 프랑스 지식인 사회에서도 우뚝하게 뛰어나. 프랑수아 미테랑 프랑스 대통령의 보좌관을 오래 한 바 있는 그는 토목공학에서 정치경제학을 거쳐 행정학에 이르기까지 최고 수준의 교육을 받았고, 소르본 대학 교수, 유럽부흥개발은행 초대 총재를 비롯해 실무 경험도 풍부한 사람이거든. 미래학자로 행세하기에 좋은 스펙을 가졌다는 뜻이야. 말하자면 아탈리는 서재에 갇혀 있는 지식인이라기보다는 참여하는 지식인이자, 반쯤은 테크노크라트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지.

ⓒ이지영 그림

〈21세기 사전〉은 ‘사전’인 만큼 표제어들을 프랑스어-로마자-알파벳 순서로 배열해놨고, 한국어 번역판은 그 표제어들을 다시 가나다순으로 재배열해 편집했어. 그러나 이런 유형은 어휘 사전과는 달리 찾아보는 사전이 아니라 읽는 사전이라고 할 수 있지. 아직 21세기가 5분의 1도 지나지 않았지만, 지난 16년을 되돌아보며 현재 생존 저자의 〈21세기 사전〉을 읽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야. 독자들은 이 책을 읽으면서, 한 시대의 가장 박학한 사람도 통찰력과 상상력이 충분치는 않다는 점에 낄낄거릴 수도 있고, 과연 한 시대의 석학답게 미래를 바라보는 눈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그에게 경의를 표할 수도 있어. ‘정경문사철’과 자연과학, 공학을 종횡으로 누비는 저자의 박학을 증명하듯, 이 사전의 표제어들도 아주 다양해. 그것은 인류 사회 전체를 포괄하고 있다고 할 만하지. 아무튼 막상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들이 보기에, 이 세기가 아탈리의 예측 그대로 흘러가지는 않을 거라는 걸 쉽게 넘겨짚을 수 있는 대목이 많아. 물론 아탈리에게 동의하느냐 여부는 예측과 예언을 즐기는 독자들 견해에 따라 다를 수도 있겠지.

예컨대 아탈리는 ‘영어’라는 표제어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어. “21세기 첫 삼 분기까지 무역, 문화, 외교, 인터넷과 미디어에서 사용되는 제1언어; 사용자 수로는 두 번째 언어; 모국어 화자 수로는 네 번째 언어. 영어는 그것이 사용되는 대륙에 따라 자립적인 방언들로 다양화할 것이다. 그 이후에는 중국어의 다양한 형태들이 무역 언어로서 영어와 경쟁하게 될 것이다. 시간이 조금 더 흐르면 트랜슬레이터, 곧 자동번역 기계가 개발되어 미디어와 문화 영역에서 영어의 역할을 축소시킬 것이다.”

미래는 ‘역사의 법칙’이 아니라 우리의 ‘의지’

다시 말해 아탈리는 영어의 미래에 대해 보수적이고 조심스러운 입장을 취하고 있어. 영어가 궁극적으로 보편어가 될 것이라는 일부 사람들의 예측에 동조하지 않는 거지. 그 일부 사람들에는 나도 포함돼. 내게는 이 대목에서 프랑스인으로서 아탈리가 영어에 대해 느끼는 질투심이 슬며시 읽혀. 아탈리는 ‘언어’라는 표제어를 설명하면서는 “어떤 언어도 보편 언어로 자리 잡지 못하고, 모든 언어들이 다양한 방언으로 잘게 나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는데, 내 생각은 달라. 중국어나 스페인어나 프랑스어같이 모국어 사용자 수가 많거나 문학적 전통이 깊은 언어들의 저항에도 불구하고, 21세기 끝 무렵이 되면 영어가 보편어로서 전 세계를 평정할 거라는 게 내 예측이야. 물론 나는 그 시대를 볼 수 없을 테고, 지금 이 글을 읽는 독자들 가운데도 많은 사람이 그 시대까지 살 수는 없겠지. 그러나 지금 아주 젊은 독자들은 영어가 보편 언어로 자리 잡은 세상을 목격하게 되리라는 게 내 생각이야.

아탈리의 예측이 가장 과격한 것은 21세기의 ‘가족’을 그리고 있는 대목이야. 아탈리는 “사람들은 사는 동안 순차적으로 여러 가정에 소속될 것이고, 따라서 아이들은 여러 사람의 아버지, 여러 사람의 어머니를 한꺼번에 갖게 될 것이다. 그러니 각 가정은 각자에게 여러 가정 중의 하나를 의미하게 될 것이다. 뒤이어서 천천히 그리고 은밀하게 훨씬 더 중요한 혁명이 일어날 것이다. 사람들은 한 가정에 이어 다른 가정을 갖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동시에 여러 가정을 원하게 될 것이다. 관계의 복수성(複數性)이 낮은 기대수명과 유아 사망 그리고 일손 부족으로 정당화되던 시절처럼, 일부다처제와 일처다부제가 다시 돌아올 것이다. (…) 남자든 여자든 동시에 여러 배우자를 가질 수 있게 될 것이다. 다시 말해 다른 사람과 살기 위해서 어떤 사람을 떠날 필요가 없게 될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어.

나는 장기적으로 아탈리가 예측한 일부다처제와 일처다부제가 출현할 가능성이 있기는 하다고 여겨. 그렇지만 그것이 21세기 안에 이뤄질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아. 다만 지금의 추세를 훨씬 뛰어넘어 이혼율이 급격히 는다면 21세기 안에도 이런 형태의 가족이 세계의 일부 지역에서는 합법화될 수도 있겠지. 아무튼 아탈리의 예측에 따르면 21세기에는 인류가 붙박이에서 떠돌이로 변할 개연성이 아주 높아. 그래서 아탈리는 〈21세기 사전〉에서 ‘유목’과 ‘유목민’에 대해 길게 설명하고 있어. 그 설명은 아마도 들뢰즈와 가타리한테서 힌트를 얻었을 것 같은데, 견해가 그리 참신하지는 않아. 요약하자면 “1만 년 전에 완전히 정착된 문명들은 곧 유목을 중심으로 하나하나 다시 건설될 것”. 유목이라는 존재 양식에 상대되는 존재 양식은 정착이지. 그래서 아탈리는 ‘정착성’이라는 표제어의 설명을 “지난 문명들의 기반; 미래의 문명들에 적응하는 어려움의 척도”라는 말로 시작해.

아탈리가 〈21세기 사전〉에서 예측한 지금 이 세기를 곧이곧대로 믿을 필요도 없고, 마냥 부정할 필요도 없어. 우리의 경험이나 상상력에 기반해서 어떤 것은 받아들이고 어떤 것은 버리면 그만이야. 아무튼 과거(불과 20년도 안 된 과거이지만)에 쓰인 ‘현재에 대한 예언서’를 읽는 것은 즐거운 일이야. 특히 그 책이 아탈리처럼 명민하고 박학한 사람의 손에서 쓰였다면. 다만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미래라는 것이 ‘역사의 법칙’에 따라 빚어진다기보다는 우리의 ‘의지’에 따라 빚어진다는 거지.

기자명 고종석 (작가·칼럼니스트)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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