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그림자들의 섬〉의 김진숙·박성호·윤국성·박희찬씨가 카메라를 응시하고 지난 30년을 회고한다. 이 가운데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사진)은 한진중공업 민주노조와 궤를 같이한다. 그녀는 1986년까지 이름뿐인 노동조합을 바꿔보겠다며 노조 대의원이 됐지만 어용 노조의 비리를 폭로한 대가로 해고됐다. 그때의 싸움 이후 한진중공업 민주노조는 부산 지역 노동운동의 거점이 되었다. ‘아저씨’ 조합원들은 “진숙이 누님이 싸움의 원동력이었다”라고 입을 모을 정도였다.

2010년 정리해고 칼바람이 불자, 이듬해 김 지도위원은 85호 크레인에 올랐다. 2003년 김주익 지회장이 홀로 농성하다 129일 만에 목을 맨 그 자리였다. 하늘에 오른 309일 동안 희망버스 수십 대가 부산 영도로 모여들었다. 희망버스는 움츠러들었던 노동운동에 불을 지피고 김진숙이라는 이름을 다시 전국에 알렸다.

희망버스가 없었다면 김 지도위원은 2003년의 김주익 지회장과 다르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희망버스가 와야만 살아 내려갈 수 있다고 확신했지만, 그에 따르는 대가가 너무 가혹했다.” 희망버스를 타고 온 사람을 향해 경찰은 최루액이 섞인 물대포를 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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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그녀는 〈그림자들의 섬〉을 통해 민주노조에 대한 뼈아픈 반성을 남겼다. “회사 측은 2003년 김주익과 곽재규의 죽음 이후 노조의 모든 요구를 다 들어주었다. 대단한 착각을 하게 됐다. 오만의 씨가 뿌려졌다.” 조선업이 호황을 누리던 2003∼2008년은 사실상 민주노조에 위기였다. 노동조합은 정규직을 설득해 비정규직을 조직할 기회를 놓쳤다. 결국 비정규직이 소리 없이 잘려나갔다.

<p>기나긴 싸움이 일단락된 뒤 민주노조는 예전에 비해 기력을 잃었다. ‘김주익의 관을 들던 손으로 민주노조 탈퇴서를 쓴 사람’마저 생겨났다. 하지만 김 지도위원은 원망하지 않는다. “배반으로 낙인찍으면, 그들은 다시는 돌아오지 못한다.” 기업노조로 가버린 동료들에게도 김 지도위원은 말을 건넸다. “전국노동자장을 세 번이나 치르면서 제 손으로 만장을 쓰고, 깃대를 만들고, 관을 짜던 그때 마음을 속이지는 말자.”

<p>30년 동안 싸우면서 해고자는 모두 복직되었다. 김진숙 지도위원만 예외다. 그사이 정년은 3년을 남기고 있다. 정년 내에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이젠 정년이 없다고 마음을 바꿨다. 복직은 인생의 과제가 되어버렸다. 2011년 309일 만에 85호 크레인에서 내려오면서 외쳤던 말을, 기자에게 나지막이 전했다. “웃으면서 끝까지 함께 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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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명 송지혜 기자 다른기사 보기 song@sisa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