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성주군 초전면 롯데스카이힐 성주CC 골프장은 성주와 김천시 경계에 있다. 세로로 길쭉하게 뻗은 골프장의 북쪽이 바로 김천시 농소면이다. 성주군 초전면 소성리 마을회관을 지나 차를 타고 3분 정도 완만한 경사 길을 오르면 필드가 눈에 들어온다. 해발 680m 분지에 자리 잡은 골프장은 18홀에 크기는 96만㎡이다. 롯데는 인근 임야 82만㎡도 보유하고 있다. 취재 차량이 골프장 내로 들어가자 골프장 관계자는 사유지라며 진입을 막았다.

롯데 골프장은 행정구역상 성주에 속하지만 사드 기지가 배치될 경우 레이더의 영향권에 들어가는 지역은 북쪽에 위치한 김천 지역이다. 김천구미역으로 KTX가 통과하고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설 예정인 김천혁신도시와는 8㎞ 정도 떨어져 있다. 약 15㎞ 거리에 있는 성주읍내보다 더 가깝다.

최근 이 골프장이 유력한 사드 배치 예정지로 거론되고 있다. 국방부 관계자들은 8월9~10일 롯데 골프장을 답사하고 8월11일에는 유재승 국방부 정책실장이 직접 현장을 방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방부는 “성주 주민의 요청이 있으면 제3부지를 검토하겠다”라는 공식 발표와 달리, 기존 예정지 성주읍 성산포대를 대신할 후보지를 신속하게 조사했다.

ⓒ시사IN 이명익 제3의 사드 기지 후보지로 거론되고 있는 ‘롯데스카이힐 성주CC’ 골프장 전경. 골프장 너머 보이는 아파트 단지가 김천혁신도시다.

‘제3부지론’이 처음 나온 건 대통령의 입을 통해서였다. 박근혜 대통령은 8월4일 성주가 지역구인 새누리당 이완영 의원(재선)과 대구·경북 지역 새누리당 초선 의원들과 만나 “성주군 내에서 새로운 지역을 검토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같은 날, 국방부는 “해당 지방자치단체에서 성주 지역 내 다른 부지의 가용성 검토를 요청한다면 자체적으로 사드 배치 부지의 평가 기준에 따라 검토하겠다”라고 밝혔다. 대통령 말 한마디에 방침을 180° 바꾼 것이다. 앞서 7월26일, 문상균 국방부 대변인은 “군사적 효용성과 작전 가능성, 비용, 공사 기간 등을 고려했을 때 성산포대가 최적지다”라며 제3부지론을 일축한 바 있다.

정부가 제3부지론 불씨를 던진 것은 주민들의 반발 강도가 예상보다 셌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성주가 사드 기지 예정지로 확정되고 4주가 지난 8월 초에도 반대 여론은 더욱 뜨거워졌다. ‘성주 사드 배치 반대’였던 구호는 ‘한반도 어디에도 최적지는 없다’로 바뀌었다. 군청 앞마당을 빼곡히 채운 주민들은 매일 촛불을 밝혔다. 촛불집회 한쪽에서는 새누리당 탈당계를 받는 부스가 마련됐다. 당원 1000여 명이 탈당계를 제출했다. 8월15일 열린 사드 철회 평화촉구 결의대회 ‘사드 가고 평화 오라’에서는 군민 902명이 집단 삭발식을 하기도 했다. 1번 작대기만 꽂아도 당선된다던 동네에서 새누리당 장례식이 열리고 야당 의원들은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여당과 보수 언론은 외부세력 개입 의혹을 제기했지만 이것도 ‘약발’이 듣지 않았다. 성주 주민 김충환씨는 “정부가 성주를 잘못 봤다”라고 말했다. 김씨는 “연고주의에 크게 학연·지연·혈연이 있지 않나. 성주는 이 세 개가 다 뭉친 곳이다. 정부가 성주 인구 적은 것만 알았지, 그 외에는 전혀 알지 못했다. 우리는 분열하지 않는다”라고 덧붙였다.

이렇게 성주 민심이 ‘분열’되지 않자 정부가 들고 나온 대안이 바로 제3부지론이라고 주민들은 생각한다. 성주사드배치반대 투쟁위원회에서 대외협력분과 실무위원을 맡고 있는 이재동 성주농민회 회장은 “제3부지론은 성주 주민을 분열시키려는 것이다. 성주 주민들이 흔들림 없이 뭉쳐서 싸우니 새 부지 검토를 들고 나온 것이다. 성주 주민을 갈라치기하고, 김천 주민들과도 민·민 갈등을 유발하려는 의도다”라고 말했다. 이른바 ‘1318 카톡방’으로 불리는 성주 주민 카카오톡 그룹채팅방에서도 “제3부지는 우리 투쟁을 와해시키려는 술책이다”라는 대화가 오갔다.

그럼에도 제3부지론은 고령층을 중심으로 조금씩 힘을 얻고 있다. 촛불집회에서 만난 한 60대 주민은 “제3의 장소를 찬성해야 할지 아직 마음을 정하지는 못했지만, 성산포대 배치 철회가 결정되면 촛불집회에는 그만 나갈 생각이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70대 주민은 “롯데 골프장으로 간다니까 이제 (반대 투쟁이) 거의 끝나간다”라고 말했다. 한민구 국방부 장관의 재방문을 하루 앞둔 8월16일, 성주군 재향군인회를 비롯한 보수 단체들은 제3부지에 찬성한다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이들은 “참외 값은 반토막 나고, 식당은 텅 비어 지역경제가 도탄에 빠졌다”라며 제3의 장소 검토를 촉구했다.

김천에도 ‘사드배치반대 비상대책위원회’ 꾸려져

8월17일 성주를 찾은 한민구 장관은 군청에서 투쟁위 대표들과 비공개 간담회를 열었다. 주민 200여 명이 군청 앞 현관을 지켰다. 미니버스를 타고 온 한민구 장관이 주차장에서 내려 현관을 통과하자, 검은색 상복을 입은 주민 한 명은 “우리는 처음부터 한반도 사드 배치 반대를 외쳤는데 왜 다른 장소를 들먹이느냐”라고 외쳤다.

ⓒ시사IN 이명익 8월17일 한민구 국방부 장관(가운데)이 사드 기지 관련 주민간담회를 마친 뒤 빠져나오고 있다.

한 장관은 PPT 자료를 이용해 성주에 사드를 배치하기로 결정한 배경을 설명했다. 간담회에 참석한 박수규 투쟁위 홍보분과 실무위원은 “한 장관이 성산포대를 최적지로 선정한 이유에 대해 2017년 말까지 사드 배치를 완료하기 위해 기존 군부대 위주로 검토했다고 답했다”라고 전했다. 한 장관은 제3후보지에 대해 “지역 의견으로 말씀을 주시면 검토하겠다”라는 종전 방침을 반복했다. 간담회 말미에 방청석에 있던 한 투쟁위원이 국방부에 제3후보지 검토를 요구했지만 투쟁위는 개인 의견이라고 선을 그었다. 투쟁위는 주민들에게 국방부 장관과의 비공개 간담회 내용을 발표했다.

제3후보지가 떠오르면서 사드 배치 반대 불길은 김천으로 옮아붙는 모양새다. 김천에도 롯데 골프장에 인접한 농소면 주민들을 중심으로 ‘사드배치반대 비상대책위원회’가 꾸려졌다. 8월17일 김천시와 김천시의회는 “롯데 골프장에 사드 배치를 반대한다”라는 공동성명서를 발표했다. 이날 김천시 농소면 주민 60여 명은 한민구 국방부 장관 방문에 맞춰 성주군청을 찾았지만 성주고등학교 앞에서 경찰 통제에 막혀 되돌아갔다. 김천시 주민 정성호씨는 “경찰이 이유를 말하지 않고 버스를 막아 (군청까지) 걸어서 왔다. 우리 생각에도 사드는 한반도 어디에도 배치되면 안 된다”라고 말했다. 8월20일 김천 강변공원에서 첫 촛불집회가 열린다.

기자명 김연희 기자 다른기사 보기 un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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