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14일 소녀상을 지키는 학생들의 노숙 농성이 229일째 이어졌다. 지난해 12월28일 한·일 정부의 ‘위안부 합의’ 이틀 뒤부터 시작한 농성이 겨울과 봄을 지나 여름까지 지속되고 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활동하는 ‘희망나비’, 청년학생 캠페인 ‘같이하자’ 등 7개 단체가 함께한다. 2~3명씩 당번을 정해 오전 9시부터 이튿날 오전 9시까지 24시간 소녀상을 지킨다. 기자는 ‘세계 일본군 위안부 기림일’인 8월14일 오전 9시부터 8·15 광복절인 이튿날 오전 9시까지, 소녀상 지킴이와 함께 24시간을 보냈다.

8월14일 오전 9시10분 대학생 윤준호씨(24)와 고등학생 이현승군(17)이 농성장을 지켰다. 고등학생 이군은 인권동아리에서 활동하는데, ‘위안부’ 문제에도 관심이 많아 가끔 농성장을 찾는다. 윤씨는 간밤의 농성장 소식을 소녀상 지킴이 농성 페이스북 페이지에 올렸다. 지난밤에 차를 타고 지나가던 시민이 아몬드 과자와 초콜릿 쿠키를 건네줬다는 소식과 229일차를 맞은 농성장 알림판 사진을 올렸다. 윤씨는 농성장에서 책을 보며 오전 시간을 보낸다. 윤씨는 “소풍 오는 학생들 말고는 오전에 농성장을 찾는 사람이 거의 없다”라고 말했다. 이날 소나기가 내릴 것이라는 일기예보가 있었다. 하늘이 먹구름으로 어둑해지자 이군과 윤씨가 공사장 한쪽에 있는 창고에서 비닐 천막을 꺼냈다.

ⓒ연합뉴스8월15일 소녀상 옆에서 ‘12·28 한·일 합의’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이 열렸다.

8월14일 오전 11시20분 빗방울이 떨어지자 파라솔 위에 비닐 천막을 씌웠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세계 1억인 서명’ 용지가 놓인 탁자와 농성장 후원금 모금함에도 비닐을 씌워야 한다. 두 사람은 정신없이 빗속을 뛰어다녔다. 천막을 씌운 농성장은 습기로 뿌옇게 보였다. 20대 남자 4명이 일렬로 자면 꽉 차는 1평 남짓한 농성장은 “폭우가 쏟아져도 문제고, 가랑비가 내려도 문제다”. 비가 조금이라도 내리면 비닐 천막을 친 농성장 안이 습해져 두 배로 덥다. 폭우가 쏟아지는 날에는 창고에 쌓아둔 컵라면, 모기장, 확성기 등 물품이 젖는다. 가장 힘든 건 폭염이다. 겨울·봄·여름을 다 겪어본 윤씨는 “겨울엔 옷을 껴입으면 버틸 수 있지만, 여름에는 옷을 벗지도 못하고 더위는 피할 방법이 없다”라고 말했다. 시민이 기증한 파라솔 한 개와 선풍기 한 대에 의지해 더위를 식혔다.

선풍기는 소녀상 뒤편 공사장에서 끌어온 전기로 돌아갔다. 공사장 경비를 담당하는 이우상씨(64)가 이들을 물심양면으로 도와준다. 그가 공사장 한편에 짐을 보관할 수 있는 창고도 마련해주었다. 이씨는 “아버지가 열여덟 살에 일본으로 징집됐다. ‘위안부’와 아버지는 모두 일제의 희생자다. 이런 이슈에 행동하는 학생들이 숨은 애국자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소나기가 내리고 30분 만에 그쳤다. 윤씨는 비닐 천막을 말아올려 파라솔에 집게로 물렸다. 오랜 농성의 노하우다. 천막을 걷었다가 다시 치면 번거롭기 때문에 임시로 고정해둔다고 했다. 오후에도 비 소식이 예고되어 있었다.

ⓒ김형락 교육생폭염 속에서도 소녀상 지킴이의 노숙 농성이 이어지고 있다.

8월14일 낮 12시10분 점심으로 편의점 도시락을 먹었다. 농성장에서 식사는 시민의 후원금으로 해결한다. 메뉴는 주로 김밥이나 편의점 도시락이다. 1인당 5000원을 넘기지 않기로 약속했다. 이현승군은 편의점 도시락을 꿰고 있었다. 기자에게 가장 맛있는 도시락이라며 치즈스팸 도시락을 추천했다. 8월14일은 ‘세계 일본군 위안부 기림일’이다. 1991년 8월14일 고 김학순 할머니가 자신의 피해 사실을 전 세계에 처음 증언한 날을 기억하자는 의미로 만들어졌다. 소녀상 주변은 기림일을 맞아 나비문화제 준비로 분주했다. 두 사람도 손님 맞을 채비를 했다. 비닐 천막과 파라솔을 창고로 들였다. 수요집회나 행사가 있을 때 농성장은 시민이 앉을 수 있는 평상이 된다. 윤준호씨는 농성장에 앉아 문화제 리허설을 봤다. 재일동포 가수 이정미씨가 영화 〈귀향〉의 주제곡 ‘가시리’를 불렀다.

8월14일 오후 5시 배우 권해효씨의 사회로 나비문화제가 시작됐다. 김복동 할머니와 길원옥 할머니도 자리를 함께했다. 농성장 주변에 ‘12·28 한·일 합의 무효’라는 문구가 새겨진 손부채를 든 시민 20여 명이 앉았다. ‘대한민국 인권활동가’라는 소개를 받고 마이크를 든 김복동 할머니는 “(한·일 정부가) 전화로 속닥속닥해서 형편없이 (협상안을) 만들어놓고 돈 줄 테니 소녀상을 철거하라고 한다. 할머니들 앞에서 진심으로 잘못했다 사죄도 하지 않는다. 우리가 무슨 돈이 필요하겠느냐”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밤 10시가 다 되어서야 소녀상 앞에서 진행되는 모든 행사가 끝났다. 행사 참여자로 북적이던 거리에는 다시 소녀상 지킴이와 경찰버스만 남았다. 윤준호씨는 창고에서 모기장을 꺼내 농성장에 설치했다. 농성장 바로 앞에 하수구가 있어 모기나 벌레가 많다고 한다. 근처 빌딩 화장실에서 간단히 세면을 하고 잠자리에 들 준비를 했다.

ⓒ김형락 교육생한 할머니가 소녀상에게 직접 만든 모자를 씌워주고 있다.

8월14일 밤 11시30분 재일동포 3세 강선일씨(51)가 농성장을 찾았다. 일본 오사카의 모모다니 고등학교에서 한글을 가르치는 교사다. 여름방학을 맞아 한국 여행길에 나섰다가 소녀상을 찾았다고 한다. “위안부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지만 무엇이 문제인지는 몰랐다. 학교에서 위안부 문제를 가르치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에 와서 소녀상 사연을 듣고 직접 와보니 여기 있는 게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씨와 같은 사연이 농성장을 지키는 학생들에게 힘이 된다.

물론 농성장을 지켜보는 달갑지 않은 시선도 있다. 경찰 정보과 형사나 채증 카메라는 밤늦은 시간에도 농성장을 주시한다. 윤준호씨는 항상 긴장과 불안 속에 농성장을 지킨다고 한다. 그는 새벽 1시가 넘어서야 잠자리에 들었다.

8월15일 오전 7시15분 노숙 농성을 한 이들은 소녀상 주변 구석구석을 빗자루로 쓸었다. 경찰버스가 하나둘 늘었다. 평소에 4대만 지키던 경찰버스가 12대로 늘었다. 행사나 집회가 있을 때면 경찰차가 두 배로 늘어난다. 8월15일은 광복절을 맞아 소녀상 주변에서 다양한 행사가 예정되어 있었다. 이날 아침 소녀상은 흰색 면 모자를 썼다. 직접 모자를 만들어온 한 할머니(70)가 씌워준 것이다. 자신을 서울시민이라고만 밝힌 할머니는 “며칠 전 텔레비전을 보다 뙤약볕에 앉아 있는 소녀상이 눈에 들어왔다. 나보다 언니 또래의 이야기에 항상 가슴이 아팠다. 소녀상이 이 자리에 계속 남아 역사를 기록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8월15일 오전 10시 ‘12·28 한·일 합의’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이 열렸다. 소녀상 지킴이 교대를 하러 나온 채은샘씨(23)는 “우리가 평생 기억해야 할 역사인 소녀상을 옮긴다는 이야기가 자꾸 나온다. 게다가 위안부 문제가 다 타결되었다는 식으로 보도가 나오는데, 위안부 피해 당사자들이 문제가 제대로 해결되지 않았다고 외치는 상황이다. 농성은 계속될 거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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