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의 제71주년 광복절 경축사가 논란이 되고 있다. 이정현 새누리당 신임 대표와의 오찬 메뉴도 문제가 되었다. 생소한 호화 메뉴가 시민들의 눈총 대상이었지만 코끼리 상아처럼 거래가 금지된 상어 지느러미를 드셨다니 그 무감각이 놀라울 뿐이다. 모피 코트를 입고 정상회담에 참석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비싼 전기료 때문에 에어컨도 마음대로 켜지 못하는 시민들 처지에서 볼 때 대통령의 식단은 납득이 되지 않는다.

역사적 관점에서 광복절 경축사는 대통령에게는 취임사 다음으로 중요하다. 그런데 이번 광복절 경축사는 객관적 오류, 편향적인 사고와 현실 인식, 천박한 역사 인식으로 가득하다(안중근 의사의 순국 장소가 청와대 홈페이지에 하얼빈에서 뤼순 감옥으로 수정되어 있다). 힘들게 살아가는 국민들, ‘위안부’ 할머니들, 특히 취업하지 못해 고통받는 청년들에 대한 따뜻한 위로 한마디 같은 것은 찾아볼 수 없다. 대신 자화자찬으로 가득하고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은 별로 없다.

박근혜 대통령은 세계가 부러워하는 한국을 살기 힘든 곳으로 비하하는 신조어들이 확산되고 있다고 비난했다. “자기비하와 비관, 불신, 증오”라는 표현으로 국민들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일본 제국주의로부터 해방된 날인데도 일본 관련 내용은 단 한 문장에 불과하다. 산적한 현안에 대해서는 내 생각이 옳으니 아무 말 말고 따라오고, 싫으면 대안을 내놓으라는 식이다. 대안 제시 요구는 청와대가 최근에 개발한 논리인 것 같다. 대통령의 뜻과 다른 사람은 좌파, 외부세력, 종북으로 매도당하고 이 나라 국민으로서 자격이 없는 사람이 되었다.

국민은 대통령의 훈계를 들어야 할 대상이 아니다. 선출된 대통령이 국민의 훈계를 귀담아들어야 한다. 대통령이 국민을 상대로 훈계하고 야단치듯이 지적을 하는 것은 민주주의 국가 지도자로서 자격 미달이다. 반복되는 박 대통령의 국민 비난과 고압적인 발언은 국민의 생각보다 자신의 생각과 판단이 옳다는 사고가 밑바탕에 깔려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이니까 가장 많은 정보를 접할 수 있는 위치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정보량이 많은 것과 정치의 출발점인 여론을 정확하게 아는 것은 별개이다.

공무원들은 전문가를 자처하지만 대통령 앞에서는 수첩 들고 받아 적는 모습이 북한 텔레비전에서 보던 것과 별반 다를 바 없다. 국무회의 석상에서도 무엇인가를 열심히 적는다. 적은 내용을 소중히 관리하고 정책 수립과 집행에 활용하는지, 과연 대통령은 그렇게 많고 다양한 정책들을 꿰고 있어서 지시하는 것인지 궁금하다. 세계가 부러워한다는 대한민국의 고위 공무원들이 대통령 앞에서 어린아이처럼 행동하고, 김무성 새누리당 전 대표의 말처럼 장관이 대통령 집무실에서 뒷걸음질로 나오다가 넘어지는 코미디 같은 상황이 현실이다.

지금 대한민국은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국가정책이 순식간에 결정되기도 하고 바뀌기도 한다. 광복절 경축사에서 1948년 8월15일 건국을 얘기하니까 새누리당에서는 건국절 법제화를 추진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남과 북은 1948년과 1949년에 각각 건국한 별개의 나라인 셈이다. 상하이 임시정부와의 연결고리를 끊는다면 북한 지역을 대한민국 주권이 미치는 영역으로 규정한 헌법의 근거가 무엇인지 모르겠다. 전기요금 누진제 문제점을 지적해도 꿈쩍 않던 산업통상자원부가 대통령의 검토 발언 몇 시간 만에 개선안을 발표했다. 경북 성주의 성산포대가 사드 배치 예정지로 최적이라더니 대통령의 다른 후보지 검토 발언 이후 국방부는 다른 곳도 검토해볼 수 있다고 말을 바꾸었다.

대통령 말 한마디에 국가정책이 순식간에 바뀌기도

국가 운영 시스템의 효율성과 투명성, 민주주의 성숙도가 선진국 판단의 기준이다. 전·현직 검사장이 피고인이 되어 있고, 부장판사도 수뢰 혐의로 수사를 받는 것이, 일부이지만 아직 우리의 사법 현실이다. 고위 공직 취임 예정자의 비위 사실을 조사하는 민정수석이 대통령 소속 특별감찰관의 수사 의뢰를 받아도 여전히 그 자리에 앉아 있다. 반대자의 뜻을 따르지 않겠다는 대통령의 심리적 기제가 자리 잡고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자신과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 그리고 그 생각을 말할 수 있는 사람을 주변에 두지 않는 심리는 가장 반민주적 사고를 드러내는 부분이다. 대한민국 대통령의 자격은 국민이 주권자임을 내면화한 사람이어야 한다. 이 나라는 대통령의 나라가 아니기 때문이다.

기자명 박상기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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