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삿짐을 싸던 날, 포털 사이트 메인에 이런 기사가 올라왔다. ‘서울시 인구 1000만 무너져.’ 젊은 인구가 경기도로 빠져나가 서울 인구가 줄었다는 내용이다. 마침 이삿짐을 실은 차는 14년간 정을 붙인 서울시 강서구 화곡동에서 인천시 서구 원당동으로 향하고 있었다. 서류 절차를 마치자 인천시 서구청장 명의로 “전입을 환영합니다”라는 문자 메시지가 도착했다. 떠난 사람에게 한마디 없는 서울시에, 조금은 야속한 마음이 들었다.

“뭐하러 그렇게 멀리 나가? 그냥 저축 포기하더라도 서울이 낫지 않아?” 마포구에서 월세 50만원을 내고 사는 친구가 술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일리 있다. 출근 시간은 45분에서 1시간20분으로 늘었고, 이동거리는 왕복 60㎞를 넘는다. 책 읽을 시간이 늘어날 것이라는 기대는 만원 광역버스의 탁한 공기 탓에 허사로 돌아갔다.

ⓒ시사IN 양한모

서울을 등진 게 후회되지 않는 것은 전세 막차를 탔다는 안도감 때문이다. 서울에서 33㎡(10평)짜리 원룸을 구하는 것은, 억 단위 전세를 내거나, 매월 월급에서 40만~60만원을 덜어내거나 둘 중 하나니까. 지푸라기 전세라도 잡을 수 있다면 하루 왕복 시간 2시간30분이야 등가교환인 셈치고 버틸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서울 인구 1000만 붕괴를 해석하는 방식은 좀 불편하다. 주요 언론에서 쏟아져 나오는 후속 보도는 주로 어떤 신규 아파트 단지로 젊은이들이 옮아갔는지에 초점을 맞춘다. 고양시 덕양구, 남양주시 등이 인기 지역이라는 분석도 뒤따른다. 중요한 얘기지만, 월세 폭등에 못 견뎌 터전을 옮기는 이들에 대해서는 쉬이 눈을 돌리지 않는다.

통계도 부족하다. 2014년 국토교통부가 실시한 주거실태 조사에 따르면, 수도권에서 지하·반지하·옥탑방 거주 가구 비율은 5.6%다. 하지만 이 수치에는 불법 증축으로 전입이 불가능한 거주자와, 고시원 생활자는 잡히지 않는다. 서울을 떠난 사람도 시대를 반영하지만, 더 중요한 건 여전히 비싼 월세를 내며 서울 생활을 붙잡고 있는 친구들이다. 마포에 산다던 친구는 맥주잔을 손에서 놓으며 이렇게 말했다. “결국 돈으로 하루 1시간 정도 아끼는 셈이잖아.” 녀석의 월급은 200만원이 채 되지 않았다.

꽉 막힌 올림픽대로를 지나며 조금씩 빌딩숲이 보일 즈음 이 도시의 중압감을 느낀다. “한번 나가면 다시 돌아올 수 없대.” 덜컹거리는 버스에서 나도 돈으로 시간을 사볼까 생각해본다. 하지만 뒤따르는 고민, 결혼은? 육아는? 에라 모르겠다. 나 하나쯤 그냥 혼자 살아도 괜찮겠지. 그날따라 버스에는 비슷한 표정을 짓는 또래가 많아 보였다.

기자명 김동인 기자 다른기사 보기 astori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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