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 전 친구 모임에서 있었던 일이다. 결혼을 앞둔 남자인 친구가 약혼자를 데리고 나왔다. 명절에 예비 시댁에 가니 마니를 놓고 한바탕 대화가 오갔다. 나는 적극적으로 반대하는 쪽이었다. 어차피 결혼하면 여러 면에서 여성이 남성보다 더 많이 양보하는 경험을 하게 되는데 굳이 결혼 전부터 시댁에 얽매여 감정노동하지 말라는 요지의 말이었다. 그때 친구가 웃으면서 물었다. “너, ‘메갈(메갈리아)’ 하니?”

ⓒ시사IN 양한모

이미 지금과 같은 논란이 있기 한참 전부터 ‘메갈’은 페미니즘이라는 단어를 대체하는 어떤 ‘기표’였다. 저런 식의 대화에서 쓰이는 페미니즘이나 메갈이라는 단어에는 그 자체로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저 마음에 들지 않는 걸 다 욱여넣는 텅 빈 그릇이다. 단지 귀찮다는 이유로 메갈이라는 ‘장소성’에 대해 깊이 들여다보지 않았던 나는 그 질문 앞에서 순간 당황했다. 그럼에도 친구의 질문에 “아니, ‘메갈’ 안 하는데”라고 대답하지 않았고, 다음에 친구를 다시 만나 그러한 낙인찍기와 여성혐오 문제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친구는 똑똑한 사람이었고 내 말을 잘 이해해줬다.

매일같이 놀랄 만한 일이 연속적으로 벌어지는 나라건만, 얼마 전 넥슨 성우가 입은 티셔츠가 촉발시킨 논란 앞에서 나는 다시 한번 놀랐다. 티셔츠와 성우 일은 대체 어떤 관련이 있나? 티셔츠가 공공의 이익을 침해하거나 누군가를 모욕했나? 그 일을 기점으로 여성혐오와 낙인찍기는 마치 ‘놀이’처럼 실생활에 타격을 입히는 일로 번져나갔다. 공당은 관련 논평을 철회하는 코미디를 벌였고, 당장 한 커뮤니티에는 ‘메갈류’ 기사를 쓰는 <시사IN>을 절독하겠다는 인증샷이 올라왔다. ‘메갈류’ 기사란 무엇을 말하는지, 혹은 어떤 기사가 왜 문제인지에 대한 지적은 없었다. 마치 ‘빨갱이’ 논란을 보는 듯했다.

왜 페미니즘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은 과잉이고, 유난이고, 반복이고, 편들기이고, 심지어 위험해 보이는 걸까. 메갈이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 페미니즘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려고 하지도 않으면서 말이다. 메갈 욕하고 기분 나빠할 시간을 생산적으로 쓰는 방법이 있다. 페미니즘도 배워야 하고, 모르면 공부하면 된다. 어떤 책을 읽어야 할지 모르겠다면 당장 접근하기 쉬운 온라인 서점에 접속해서 사회과학 분야의 베스트셀러 목록을 참고하자. 알라딘의 경우 사회과학 분야 50위권 안에 14권이 페미니즘 관련 서적이다.

나는 특히 남성들이 자신들에게 페미니즘이 얼마나 좋은 것인지 알았으면 좋겠다. 이번에야말로 당신을 짓누르고 있는 무거운 가부장제를 벗어버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 아닌가. 물론 공부는 셀프다.

기자명 장일호 기자 다른기사 보기 ilhostyl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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