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사로부터 <휘트먼:시와 산문>을 거절한다는 통지와 함께 원고 검토자들이 보낸 간단한 논평을 받았습니다. 꽤 근사하게 들리는 말인데요. 혹여나 원고 검토자가 더 필요하면, 저한테도 말씀해주십시오. 뭐가 되었든 일자리를 구할 수가 없으니, 여기라도 문을 두드려보는 게 어떨까 싶습니다.”

1945년, 스물다섯 살의 찰스 부코스키는 원고를 거절하는 잡지 편집자의 편지에 답장을 보낸다. 여유를 부려보지만 어쩔 수 없는 초조함이 묻어나는 얼마 남아 있지 않은 그 시절 그의 편지는 대개 비슷비슷하다. “더는 기다릴 수 없습니다. 아무런 답장을 못 받으면, 그게 답장이 되겠죠.”(1946) “최근에 세상이 꼬맹이 찰스의 불알을 꽉 쥐고 있어서 기운을 다 빼버려서 작가 정신이 얼마 남아 있지 않아요.”(1947)

젊은 부코스키의 작가 정신이 회복되기 위해서는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했다. “지금은 별로 많이 쓰지 않습니다. 저는 이제 서른세 살이 되어가고, 배불뚝이에 서서히 치매가 옵니다. 타자기는 술주정뱅이의 삶을 이어가려고 6년인가 7년 전에 팔아버렸고, 하나 더 사기에는 술값 말고는 돈이 별로 없습니다. 이제 이따금씩 손으로 작품을 쓰고 그림으로 강조를 합니다(여타 다른 미친 자들처럼요).”(1953)

‘술에 취해 보낸 10년(ten-year drunk)’ 동안 부코스키는 도살장에서, 개 비스킷 공장에서, 시어스로벅 백화점 창고에서, 우체국에서 이런저런 잡일을 하며 전전한다. 그 시절의 경험은 다른 때의 경험들과 마찬가지로 한 권의 소설이 될 테지만 아직은 아니었다(당시의 경험을 담은 <팩토텀>은 1975년에 출간되지만, 1947년의 편지에 이미 “(장편을 쓴다면) <축복받은 팩토텀>이 그 제목이 될 거고, 하층계급의 노동자에 대한 소설이 될 겁니다”라는 언급이 있다).

대신 그는 “배에 구멍이 몇 개 생겨서 피가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바람에 병원 자선병동에 가는 신세”가 된다. 죽다 살아난 그는 퇴원한 후 다시 술을 마시면 죽는다는 의사들의 경고를 무시하고 싸구려 와인을 마시며 다시 시를 쓰기 시작한다.

ⓒ위키백과 찰스 부코스키는 ‘위대한 아웃사이더’ 작가로 불린다.

이후 그는 여느 작가들처럼 자신의 작품에 악평을 한 비평가를 욕하고(“어째서 이 돼지새끼가, …난봉꾼, 백합 냄새 피우는 놈이, 어째서 이 건달이 문학의 방법론을 아는 특별한 비평가 행세를 하고 다니는지”), 다른 작가들을 욕하고(“많은 포크너 작품은 순수한 똥덩이예요. 그래도 영리한 똥이죠. 영리하게 차려입은 똥”), 독자(“그들은 자기가 항상 들어왔던 것만 듣고 싶어 해요”)와 출판 편집자를 욕하며(“그 친구 나를 무슨 백치 같은 걸로 취급하오”), 조금씩 우리가 아는 ‘그’ 찰스 부코스키가 되어간다. 가난한 이들의 계관시인, 위대한 아웃사이더, 고양이를 사랑하는 호색한.

“글쓰기 그만두는 건 심장을 변기에 버리는 일”

풋내기 신인에서 죽음을 눈앞에 둔 노작가가 되기까지, 반세기에 가까운 시간 동안 쓰인 부코스키의 편지들을 연도순으로 엮은 <글쓰기에 대하여>를 읽는 것은 특별한(이 단어는 물론 진부하지만) 경험이다. 무엇이 한 작가를 끊임없이 글쓰기 작업으로 돌아가게 만드는지, 그것이 어떻게 한 사람의 인생을 망치는 동시에 그것을 살 수 있게 만드는지를 생생히 보여준다.

일흔 살의 부코스키는 30년이 넘는 세월을 동고동락한 편집자 존 마틴에게 보내는 편지를 이렇게 끝낸다.

“나는 글쓰기를 그만두는 작가를 이해할 수 없네. 그건 심장을 파내어 변기에 넣고 똥과 함께 내려버리는 거나 똑같지. 나는 망할 마지막 숨이 넘어갈 때까지, 누가 그 글을 좋다고 생각하든 아니든 글을 쓸걸. 시작으로서의 끝. 나는 이렇게 될 운명이었지. 그렇게 단순하고 심오한 일이야. 자, 그럼 이에 대한 글은 그만 써야겠군. 그래야 다른 것에 대해 쓸 수 있을 테니.”

기자명 금정연 (서평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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