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뷰티풀 마인드>를 뒤늦게 보았다. 현성병원라는 가상의 종합병원이 배경인 이 드라마에는 무수한 의학 드라마들이 그러하듯 천재 의사가 주인공으로 나온다. 문제는 주인공 이영오(장혁)가 사이코패스라는 사실이다. 타인의 감정을 느끼거나 공감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는 어릴 적 아버지에게서 독하게 훈련받은 대로 사람들의 표정과 신체 반응 및 변화를 미세하게 ‘읽어서’ 다른 이의 감정을 해석하고 추측한다. 그가 천재 의사가 된 것도 이 능력과 관찰력 때문이다. 재미있는 건, 천재 의사로 현성병원에 화려하게 등장했지만 그의 수술대에서 사람이 종종 죽어 나간다는 것이다. 심지어 수술 도중 손목에 수갑을 차고 경찰서에 끌려가기까지 한다. 사람의 목숨보다 자신의 완벽한 수술이 더 중요한 이영오에게는 이 모든 것이 너무나 굴욕적이다.

이 잇따른 죽음은 실은 의도된 살인이다. 병원 내 권력을 가진 누군가가 음험한 비밀을 감추기 위해 이들을 사고와 병으로 위장했고, 이들은 이영오의 수술대 위에서 죽음을 맞는다. 이영오는 이 모든 죽음의 범인으로 의심받는다. 사이코패스니까. 그러나 그는 해명이나 변명 한마디 없이 조용히 이 사건의 진위를 파악하려고 노력할 뿐이다. 환자를 척 보고 병명을 맞히며, 제 고집을 관철하기 위해 병원 경영진을 협박하거나 거래를 제안하고, 자기 손에 들어온 환자를 살린다는 자기도취적인 목적 때문에 불법 시술도 마다하지 않는 천재 사이코패스 괴물. 그러나 이 ‘괴물’이 주는 위협감과 공포란 미미하기 그지없다. 적당히 선하고 이기적인 평범한 이들이 복무하여 유지되는 거대하고 구조적인 악이 워낙 무시무시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는 이 악을 은폐하기 위한 희생양으로 지목된다. 거대 종합병원답게 환한 조명에 각종 현대식 기기들이 가득하지만 음험한 모략과 살인의 비밀을 숨긴 현성병원을 보며, 나는 덴마크의 TV 시리즈 <킹덤>에 나오는 음침한 병원을 떠올렸다.

ⓒ박영희 그림

그런데 사이코패스였던 이영오가 조금씩 변해간다. 사람은 서로 돕고 사는 존재라고 굳게 믿는 계진성(박소담)과 가까워지면서다. 또한 아동학대를 당하면서도 제 부모를 감싸고자 했던 어린이 환자를 만나고서다. 계진성을 통해 그는 처음으로 선의의 가능성을 알게 된다. 또한 아이를 통해 자신의 외로움과 공포를 직시한다. 타인을 이해하는 것은 그렇게 타인에게서 자신을 보는 데서 시작한다. 여전히 감정이라는 것을 느끼지 못하지만, 그는 이제 사람들의 선의에 대해, 사랑이란 감정에 대해 알려고 노력한다. 홀로 고립됐던 그의 세계에 타인을 향하는 다리가 놓인 것이다.

우리는 스스로 선택해 잘못된 길을 가고 악에 복무한다

그리고 우리는 알게 된다. 적당히 선하고 적당히 나약한 이들이 공조한 거대한 악이 그토록 힘이 셌듯, 악에 대한 저항 역시 그렇게 적당히 선하고 적당히 나약한 이들이 조금씩 힘을 모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이영오 같은 사이코패스에게도, 잘못된 선택 이후 길이 틀어진 평범한 사람들에게도 몇 번은 기회가 주어진다는 것을. 우리는 스스로 ‘선택’을 통해 잘못된 길을 가고, 거대하고 구조적인 악을 만들고 유지하는 데 일조한다. 그리고 ‘선택’을 통해 그 길을 바로잡고 악에 저항할 수도 있다. 누구에게나 선택의 순간이 온다.

‘괴물’을 찾아내 눈앞에서 치우는 것만으로 문제를 해결했다고 착각하기는 쉽다. 마치 사이코패스 이영오를 쫓아내는 것으로 해결하려 했던 현성병원의 많은 이들처럼. 혹은 시행착오로 일이 틀어졌을 때 실수한 이에게 화풀이성 비난을 쏟아붓기도 쉽다. 마치 계진성의 시행착오와 오판으로 이영오가 위기에 처했을 때 시청자들이 그녀를 ‘민폐 캐릭터’라 손가락질했던 것처럼. 하지만 이는 어쩌면 악에 복무하는 우리 자신의 죄책감을 덜기 위한 행동일지도 모른다. 중요한 것은 우리 스스로 직시하고, 선택하는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협력하여 선을 이룰 수 있다.

기자명 김숙현 (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코디네이터)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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