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2일, 모든 독일 신문과 방송은 일제히 한국 정부가 폭스바겐 인증 취소 및 판매정지 처분을 내린 것을 주요 뉴스로 전했다. 민영 뉴스 전문 채널인 N-tv는 “배출가스 스캔들의 다음 단계-한국이 폭스바겐의 차량 등록을 취소했다”라는 제목 아래, 아시아에서 두 번째로 큰 디젤 승용차 시장인 한국에서 폭스바겐은 새로운 분노에 직면했다고 보도했다. 한국 환경부가 폭스바겐 측에 배출가스 성적서 위조로 1430만 유로(약 176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는 소식을 전하며, 한국은 폭스바겐의 아시아·유럽 시장 경쟁자인 현대자동차 그룹의 나라라고 소개했다. 이 기사는 폭스바겐이 이번 ‘디젤 게이트’ 때문에 기업 이미지 하락뿐만 아니라 미국에서는 수십억 유로에 달하는 과징금을 물게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그럼에도 폭스바겐 그룹은 전 세계에서 올 상반기에만 총 520만 대를 판매해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큰 자동차 제조사라고 강조했다.

공영방송인 ARD 또한 한국 정부의 폭스바겐 판매중단 조처를 중점적으로 다루었다. ARD는 한국 환경부가 폭스바겐 차량 전체에 대해 판매를 중지시킨 것은 너무 과한 결정이라는 폭스바겐 측 반응을 담았다.

폭스바겐 그룹에 투자한 이들의 소송으로까지 번진 디젤 게이트는 독일에서도 여전히 논쟁거리이다. 8월8일 폭스바겐 그룹에 투자한 이들이 최대 40억 유로(약 5조원)에 달하는 손해배상을 청구한 소송이 폭스바겐 본사 소재지 관할 법원에서 시작되었다. 이날 독일의 자동차 전문지 <아우토빌트>는 “폭스바겐을 향한 소송에 파란불이 들어왔다”라는 조롱 섞인 제목으로 이번 사태를 다루었다. 사태가 이 지경이 되도록 거짓말을 일삼은 폭스바겐 그룹의 윤리 문제를 떠나, 이제 시민들은 정부 및 인허가 당국의 규제 완화 및 부실한 감독이 문제를 키운 배경이라고 지적한다.

ⓒDPA 6월22일 폭스바겐 최고경영자 마티아스 뮐러가 하노버에서 열린 주주총회에서 굳게 입을 다물고 있다.

회원 25만명이 참여하는 독일 시민환경단체 분트는 중앙정부의 무책임을 질타하고 있다. 자신들은 이미 수년 전부터 실제 주행 중인 디젤차에서 배출되는 질소산화물 가스 수준이 기준치를 한참 초과한다고 지적했지만, 정부 당국이 그동안 침묵으로 일관했다는 것이다. 사태가 터진 뒤에도 여전히 독일 교통장관과 교통청은 실상을 은폐하고 책임을 회피하는 데 급급하다고 이 단체는 비판했다.

이런 가운데 독일 정부 당국뿐 아니라 유럽의 자동차 검사 시스템을 문제 삼은 전문가 기고가 눈길을 끌었다. 지난 8월8일 시사 주간지 <자이트>에는 이번 폭스바겐 배출가스 조작 스캔들을 세상에 알리는 데 일조한 국제청정교통위원회(ICCT)에서 유럽 책임자로 일하는 페터 모크 씨의 인터뷰 기사가 실렸다. 폭스바겐의 부정행위가 왜 유럽이 아닌 미국에서 처음 알려졌는지에 대해, 그는 유럽이 자국 자동차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느슨하고 제각각인 규제 정책을 펴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예를 들면, 유럽에서 출시되는 새로운 모델의 상당수가 자동차 산업이 전무한 룩셈부르크에서 등록한다. 보통 신차가 출시되면 사양 등을 등록하고 판매 허가를 받아야 하는데, 자동차 산업 및 관련 기준이 발달하지 않은 국가에서 등록해 쉽게 통과시키는 것이다. 룩셈부르크의 경우 독일에 비해 검사나 판매 허가를 위한 통과 규정이 복잡하지 않다. 또 차량 전체에 대한 검사는 독일에서 하지만 배출가스 검사는 룩셈부르크에서 하는 식의 편법도 관행으로 이뤄지고 있다.

ⓒ연합뉴스 환경부는 8월20일 폭스바겐 인증 취소 및 판매정지 처분을 내렸다.

느슨한 유럽에선 통과, 엄격한 미국에선 적발

독일뿐 아니라 유럽 각국도 자국의 자동차 산업 보호에만 급급해한다. 최근 독일 교통청(KBA)은 이탈리아 피아트 자동차의 배기가스 정화장치가 20분이 지난 후 자동으로 다른 모드로 전환된다고 밝혀냈다. 하지만 이탈리아 관계 당국에서는 이 문제를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다. 독일이나 유럽에서는 자국의 자동차 산업 보호가 큰 명분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방증인 셈이다. 이에 비해 미국 정부 당국은 미국산 차량이라 하더라도 매우 엄격하게 검사를 실시한다. 문제가 발견되면 자국산 여부를 떠나 엄격하게 책임을 묻는다는 것이 국제청정교통위원회 유럽 책임자인 페터 모크 씨의 지적이다. 이런 차이가 독일이나 유럽이 아닌 미국에서 디젤 게이트를 밝혀낸 이유라고 그는 설명했다.

디젤 게이트 여진이 계속되는 가운데 정치권과 재계를 중심으로 일각에선 친(親)폭스바겐 여론이 없지는 않다. 예를 들면 미국 정부가 부과한 10억 유로(약 1조2300억원) 이상의 벌금을 두고, 이것이 너무 과한 것 아니냐는 볼멘소리가 나오기도 한다. 하지만 폭스바겐의 부정행위는 악의적이었다. 이전에 적발된 배기가스 배출량 초과 문제가 허용치의 두세 배 수준이었다면, 폭스바겐의 경우에는 최대 40배에 달했다. 조작 논란이 일었을 초기에도 폭스바겐은 거짓 해명으로 일관했다. 결과적으로 미국 당국뿐 아니라 독일 시민을 우롱한 꼴이었다.

디젤 게이트 재발을 막기 위해 독일 언론이나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다양한 대안이 나온다. 언론에서는 먼저 검사 당국의 독립성을 제기한다. 즉, 새로운 차량 등록뿐 아니라 주기적인 시험 검사를 집행하는 기관은 자동차 회사한테 어떠한 지원이나 도움도 받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또한 최초 개발된 차종에 대해서만 등록 검사를 실시하는 현재의 규칙을 강화해, 소비자들이 실제 구입하는 다양한 시리즈의 모델 각각에 대해서도 엄격한 검사를 해야 한다는 대안도 나온다.

그런데 이런 대안과 별도로 디젤 승용차가 아예 시장에서 사라질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도 나오고 있다. 소형 디젤 승용차에 고가의 배기가스 정화장치를 설치하는 것은 차량 전체의 가격 경쟁력을 떨어뜨릴 테고, 향후 전기자동차의 기술 개발이 빠른 속도로 이루어져 전기자동차의 생산단가가 낮아질 경우, 디젤 승용차는 시장에서 버림받을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청정 디젤 승용차는 기술적으로 충분히 가능하지만, 개인이 이를 소유하기에는 값이 너무 비싸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디젤 승용차에 대한 비관적인 전망까지 나오면서 폭스바겐에 대한 독일인의 시선은 차갑게 변하고 있다. 한때 폭스바겐은 독일인의 자존심이었다. 폭스바겐은 이름 자체가 ‘국민(Volks) 차(Wagen)’다. 실제 독일인들은 한때 자랑거리였던 국민 차 때문에 ‘눈에 보이지 않는’ 손해도 입었다. 시민과 자연환경 보호를 위해 마련한 질소산화물 규제를 비웃기라도 하듯 자동차 제조업체는 부정행위를 저질렀고, 여기서 발생한 엄청난 발암물질은 이미 시민들의 몸속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소 잃고 외양간을 제대로 고치지 않는 정부 당국을 보면서, 시민들은 정치인들이 폭스바겐을 비호한다는 의문을 갖기 시작했다.

기자명 염광희 (싱크탱크 코덱 연구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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