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 스토리

“박원순 공작문건은 청와대 보고용”

‘박원순 제압 문건’이 진짜인 15가지 이유

검찰, 새로운 증거 나왔으니 다시 수사해야

 

 

〈시사IN〉 제464호 전 국정원 직원들의 자백, 박원순 공작 기사에 대해 국정원은 8월2일 보도자료를 냈다. “박원순 시장 관련 문건이 국정원이 작성한 것이라고 보도한 내용은 전혀 사실무근입니다. 검찰에서는 2013년 10월4일 박원순 시장 관련 문건을 다른 국정원 문건과 비교하여 문서감정을 실시한 결과, 동일하지 않은 것으로 분석됐다는 등의 이유로 불기소 처분한 바 있습니다.”

〈시사IN〉 보도 내용 가운데 쟁점은 2013년 5월15일 민주당 진선미 의원실에서 공개한 2건의 ‘박원순 시장 제압 문건’이다. 두 가지 문건은 각각 A4 용지 5쪽짜리 ‘서울시장의 좌편향 시정운영 실태 및 대응 방향’과 1쪽짜리 ‘좌파의 등록금 주장 허구성 전파로 파상 공세 차단’이라는 제목이다.

당시 민주당은 원세훈 전 국정원장 등 국정원 전·현직 직원 9명을 국정원법 위반과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등으로 검찰에 고발했다. 국정원 정치개입 사건을 수사한 특별수사팀(팀장 윤석열)이 맡았다. 검찰은 수사 착수 5개월 만인 2013년 10월7일 국정원이 보내온 문건과 양식이 다르다며 이 사건을 각하 처분했다. 10월17일 검찰 수사팀이 트위터를 전담하던 국정원 심리전단 5팀 소속 직원 3명을 전격 체포하기 열흘 전이었다. 윤석열 팀장은 이 체포 이후 수사에서 배제되었다. 그리고 10월21일 국정감사에 출석한 윤 팀장은 수사 외압 의혹을 폭로했다.

ⓒ연합뉴스

당시 검찰 수사와 관련해 황교안 법무부 장관-조영곤 서울중앙지검장-이진한 서울중앙지검 2차장 라인은 수사팀과 의견을 달리했다. 각하 처분을 설명하며 이진한 당시 서울중앙지검 2차장은 “문건이 아닌데 내용이 뭐 있겠어요? 문건도 아니라니까 내용도 아니지. (국정원이) 자기네 문건이 아니라는데”라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당시 수사 상황을 잘 아는 검찰 관계자는 “수사팀도 국정원 문건으로 의심했다. 그때 댓글이나 트위터 등 수사도 벅찬 상황이라 수사를 더 확대할 수 없었다. 그래서 사실상 고발 내용을 확인할 수 없다는 취지로 각하 처분을 한 것이다”라고 말했다(검찰, 새로운 증거 나왔으니 다시 수사해야 참조). 당시 남재준 국정원장은 수사 대상인 국정원 직원들에게 검찰에서 일절 진술하지 말라고 지시하기도 했다. 윤석열 팀장은 국정감사장에서 “(남 원장) 직권남용죄가 될 수 있다”라며 공개적으로 비판하기도 했다. 당시 수사팀은 댓글과 트위터 수사를 하기에도 벅찬 상황이라 각하 처분을 내렸다는 게 검찰 관계자의 설명이다.

하지만 국정원은 지금도 검찰의 각하 처분을 ‘방패’로 삼고 있다. 검찰 뒤에 숨은 국정원의 해명이 맞을까? 〈시사IN〉은 문건 작성 시기에 국정원에 근무했던 고위 간부를 포함한 복수의 전직 직원들을 접촉했다. 이 문서를 직접 보여주며 정밀 검증을 했다. 취재 결과 이 문건은 국정원에서 작성했다는 일치된 증언을 확보했다(‘박원순 제압 문건’이 진짜인 15가지 이유 참조).

논란이 된 ‘박원순 시장 제압 문건’에 대해 전 국정원 관계자들은 국정원의 문서 작성 양식과 글자체 및 글자 크기가 정확히 일치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참고 표시와 글자체, 부호 등도 국정원에서 쓰는 것이라고 했다.

먼저 국정원 내부 사정을 잘 아는 전 국정원 관계자는 “박원순 문건은 두 종류다. 모두 국내정보 파트인 2차장실 산하 국익전략실에서 작성된 것이다. 원세훈 원장이 당시 국익전략실 신○○ 실장에게 특별 지시해 작성한 보고서가 맞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국정원 간부 출신은 문서의 규격과 양식이 국정원 문건임을 입증한다고 증언했다. “국정원 내부 문서 작성 양식과 글자체 및 글자 크기가 정확히 일치한다. 암호화된 배포선을 사용하는 정부기관은 국정원밖에 없다. 또 보고서 제목은 19폰트, 내용은 14~15폰트 신명조체 글씨를 내부 보고서에 사용하는 곳도 국정원이다. 참고 표시와 글자체, 부호 등도 국정원에서 쓰는 것이다. 내가 국정원 안에서 이런 양식의 보고서를 수없이 작성해봤고 유출 문제를 조사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정확히 안다.” 이 관계자는 두 문서의 차이와 관련해 의미 있는 증언을 했다. 그는 이어 “5장짜리 ‘서울시장 좌편향 관련 문건’은 ‘특상 보고서’ 형식이다. 1주일에 1건꼴로 생산돼 청와대까지 올라가는 보고서 양식이다. 이런 특상 보고서는 청와대 민정수석과 비서실장에게 올라가고 국정원장이 대통령을 독대할 때 가져가기도 한다”라고 말했다.

그는 “5장짜리 보고서 내용 중 ‘감사원과 행안부 감사를 통해 시정 촉구’라는 대목과 ‘검찰·경찰 사정활동 강화’라는 조치가 있는데, 이런 내용을 쓸 수 있는 정부기관은 청와대와 국정원밖에 없다. 이 문서는 국정원에서 작성한 것이 확실하다”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 말대로 5장짜리 보고서와 1장짜리 보고서에는 양식 차이가 있다. 1장짜리에는 작성자 이름과 휴대전화 정보가 상세히 기재되어 있지만, 5장짜리 문서에는 생산라인 ‘2-1’(옛 국내정보분석국장)과 배포라인 ‘0-0’(국정원장), ‘2-0’(국정원 2차장), ‘3-0’(국정원 3차장)만 표기되어 있다.

1장짜리 ‘반값등록금 문건’에 대해서 또 다른 국정원 전 관계자는 “이 문건은 원내에서 ‘B상보’라 부른다. 1장짜리로 간단하게 작성하는 보고서로 매일 생산된다. 국정원 내부에서만 알 수 있는 작성 부서와 이름, 연락처, 배포선 암호 숫자 등이 구체적으로 명기돼 있어 원장에게 보고가 올라가는 단계의 문서다”라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참여정부 말기부터 국정원에서는 문건 작성자 실명제가 도입되었다고 한다. 상부에서 호출할 경우 즉각 응대할 내선번호와 휴대전화 번호가 보고서에 기재되기 시작한 것이다. 국정원 IO(정보관)가 작성해서 보고하는 내부 문서는 국정원 내에 설치된 언론기관과 유사한 ‘편집부’를 거친다. 문건에 기재된 작성자 내선번호와 휴대전화 번호를 통해 문서 내용을 편집부에서 확인해 최종 완성하는 시스템으로 운영된다는 것이다.

1장짜리가 내부용이라면, 5장짜리는 청와대에 보고되는 형식이라는 것이다. 사정기관의 현직 관계자는 “나도 국정원이 작성한 문건을 여러 번 본 적이 있는데, 박원순 문건(5장짜리) 역시 국정원 문건 양식이다. 국정원 문건은 톱시크릿이라고 해서 청와대 민정수석실로 보고된다”라고 말했다. 전 국정원 관계자도 “보고서 양식을 보면 먼저 ‘개요’가 나오고 다음에 ‘실태 및 문제점’, 마지막으로 ‘대응 방향’이 나온다. 이런 형태의 문서 양식은 국정원에서만 쓴다. 대응 방향 대신 ‘조치 방향’ ‘조치 방안’ 등을 번갈아 사용하기도 한다”라고 증언했다.

ⓒ연합뉴스 2009년 2월 국정원장 임명장을 받고 이명박 대통령과 걸어 나오고 있는 원세훈 국정원장(사진 왼쪽).

그는 이어 검찰이 박원순 문건을 다른 국정원 문건과 비교해 문서감정을 실시한 결과, 동일하지 않는 것으로 분석됐다고 발표한 정황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검찰이 국정원 문서가 보관된 내곡동 전산 서버를 직접 들여다보고 대조 확인했더라면 국정원 문건이란 것을 확인할 수 있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당시 수사팀은 국정원의 비협조로 문건에 적시된 추○○, 함○○, 조○○ 등을 소환 조사하지 못했다. 또 이에 앞서 국정원 정치개입 사건과 관련해서도 법원의 영장을 받아 국정원 압수수색에 나섰지만 남재준 원장은 국정원 메인 컴퓨터인 슈퍼컴퓨터에 대한 압수수색을 불허했다. 국정원은 검찰이 자료 제출을 요구하자 로마자 표기법이 담긴 엉뚱한 문서를 건네기도 했다.

원세훈 원장 시절 간부를 지낸 또 다른 전 국정원 관계자는 박원순 문서를 검토한 뒤 “문서에 기재된 내용과 형식 모두 원세훈 원장 시절 국정원에서 실제 이뤄진 것이 확실하다. 간부회의 때마다 원세훈 원장으로부터 귀가 따갑게 들었던 내용이 대부분 망라돼 있다. 문서 작성자로 기재된 국익전략실장 신○○ 산하 사회팀장 추○○, 사회팀 과장 함○○, 작성자 과원 조○○ 등은 실제 당시 해당 부서에서 근무했고 지금도 국정원에서 근무하고 있다. 외부에서 이를 가짜로 만든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국정원 전 관계자들은 “당시 대외적으로 국정원 작성 문서가 아니라고 해명했지만 내부적으로는 처음부터 심각한 보안 누설 사태로 간주해 문서 유출자를 색출하는 데 전력을 다했다”라고 증언했다. 당시 감찰 상황을 잘 아는 국정원 전 관계자의 증언이다. “2013년 5월 이 문서가 〈한겨레〉에 폭로되고, 진선미 의원이 문서 작성자로 전화번호까지 나온 조○○ 휴대전화에 전화를 걸어 신원을 확인했다. 이 같은 사실이 국정원 수뇌부에 보고됐다. 남재준 원장이 직접 나서서 박원순 문건 유출자를 색출하도록 특별 지시를 내렸다. 거짓말 탐지기 조사를 포함한 고강도 감찰 조사가 진행됐다.” 또 다른 국정원 전 관계자의 증언이다. “국정원 안에서도 ‘박원순 제압 문건’이 내부에서 나간 문서라는 것을 알 만한 사람은 다 알았다. 2013년 5월 문건 유출자 색출 과정에서 가장 의심받은 간부가 원세훈 원장 시절 의전비서관을 지낸 ㄱ 처장이었다. 그 무렵 ㄱ 처장은 동료들에게 ‘감찰실에서 문건 유출자로 나를 지목해 강도 높게 추궁하는 바람에 죽는 줄 알았다’라고 고충을 토로한 적도 있다.”

ⓒ연합뉴스 2013년 3월 박근혜 대통령이 임명장을 수여한 뒤 남재준 국정원장(사진 오른쪽)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또 다른 국정원 전 관계자는 “당시 남재준 원장은 이 문건 유출을 계기로 직원들의 휴대전화 번호가 노출되는 바람에 국정원 직원들이 쓰던 휴대전화를 순차적으로 바꾸게 했다. 주로 ○○문화사나 ○○연구소 등 국정원 대외용 법인 명의로 개통한 011, 017, 019 등 2G 폰을 썼는데, 그때부터 일부 직원들이 스마트폰으로 바꾸기 시작했다”라고 말했다. 진선미 의원은 “당시 문건 작성자로 기재된 조○○씨의 019 휴대전화로 전화해 통화했는데, 그 뒤로 조씨 전화번호가 바뀌었다”라고 말했다.

복수의 전 국정원 관계자들은, 2013년 5월 박원순 문건에 대한 고발이 이뤄지자 국정원과 청와대가 ‘꼬리 자르기’ 조처를 취했다고 증언했다. 국정원 전 관계자의 증언이다. “박원순 문건에 대한 검찰 조사가 시작되자 국정원에서는 문건 작성 책임자인 추○○씨를 자택 대기발령 조치했다. 추씨는 문건이 폭로되던 2013년 5월에는 청와대 민정수석실 선임 행정관으로 파견 나가 있었다. 추씨는 약 5개월 동안 서울 송파구에 있는 아파트 자택에 대기발령으로 칩거했다. 급여는 100% 받았다. 그해 10월 검찰이 각하 처분을 내린 뒤 대기발령이 풀렸다. 그 뒤 2014년 이병기 신임 원장이 취임하며 2급이던 추씨는 1급으로 승진했다. 현재 국정원 2차장실 산하 국내정보수집국장으로 영전했다.” 추○○ 국장은 박근혜 인수위원회를 거쳐 이후 청와대 민정수석실로 파견근무를 했다. 현재 그가 맡은 국내정보수집국장은 정부 각 부처 및 언론, 법조, 시민사회단체를 담당하는 국정원 국내정보 파트 IO들을 총괄하는 자리다.

허위 문서라더니 내부에서는 유출자 색출?

박원순 서울시장이 이명박 정권 때는 물론이고 지금까지도 ‘박원순 공작’이 실행 중이라고 믿는 이유 가운데 하나도 공작 문건 작성자로 기재된 추씨가 국내파트 정보 수집을 총괄하는 자리에 있기 때문이다. 또 다른 국정원 전 관계자는 “추○○ 국장은 경북고와 육사를 나와 골수 TK 세력으로 분류되는데, 현재 국정원 내에서 TK 핵심 실세 3인방으로 꼽힌다. 그를 국내정보 수집 파트 총괄 수장 자리에 앉혀두고 있다는 것은 박원순 시장 제압 문건에 대한 공로를 인정해주면서 더 잘하라고 격려하는 뜻으로 비칠 소지가 다분하다”라고 말했다.

〈시사IN〉이 국정원에 추 국장의 대기발령 여부와 승진 여부에 대해 묻자, 국정원은 “추 국장의 인사 조치 내용에 대해서 확인해줄 수 없음을 양해해주기 바란다”라고 밝혔다.

기자명 정희상 기자 다른기사 보기 minju518@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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