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독일에서는 난민이나 중동계 독일인들이 저지른 테러 혹은 그와 유사한 무차별 폭력이 연쇄적으로 발생했다. 아프간 난민 청소년이 열차 안에서 도끼를 휘두르는가 하면 쇼핑몰에서 총기가 난사되고, 시내 한복판에서는 자폭 테러가 발생했다. 이로 인해 지난달 말에는 고작 나흘 동안 극우 정당 당원 수가 1000여 명이나 증가하는 등 이민자와 난민에 대한 독일 국민들의 반응이 조금씩 냉랭해지고 있는 것이 감지된다. 전체 인구가 8800만명인 독일은 지난해에만 난민 100만명 이상을 받아들였다.

이런 가운데 극우파들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극우파가 자행한 폭력 사건이 2014년 990건에서 지난해에는 1408건으로 50% 이상 증가했다. 같은 시기 방화, 기물 파괴 등 난민 캠프에 대한 공격 역시 5배 정도 늘었다(2015년 75건).

극우주의 세력의 외국인 테러 모의 속속 드러나

히틀러를 경험한 전후 독일은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새로운 극우 독재자의 출현을 막기 위해 ‘전투적 민주주의’를 기치로 내걸었다. 정부·의회·사법기관 등에 ‘반민주주의 세력’을 단죄할 권력을 부여한 것이다. 즉, ‘다수의 찬성’과 ‘민주주의 가치 수호’가 언제나 동일할 수는 없는데, 이 두 원칙이 충돌할 경우 민주주의 수호를 앞세워야 한다는 의미다. 히틀러는 선거로 집권했고, ‘의회 다수의 동의’라는 정당성을 기반으로 반유대 인종차별 및 학살을 자행했다.

ⓒAP Photo7월24일 독일 로이틀링겐에서 3명의 사상자를 낸 시리아 출신 난민(넘어진 사람)이 경찰에 붙잡혔다.

이런 독일 정부의 운영 원칙은 독일 내 극우파들의 준동을 막는 데 큰 기여를 했다. 독일 내무부는 1983년 12월 국가사회주의자행동전선(ANS/NA:1977년 설립되어 300여 명이 참여한 신나치주의 단체)을 강제 해산했다. 1994년 어린이와 청년들 사이에서 네오나치 선동을 일삼던 청년바이킹(Wiking-Jugend)을 해체했다. 전투적 민주주의 원칙에 따라 반민주주의 세력을 제압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가운데서도 극우파의 명맥이 유지되고 있다. 1964년 설립된 독일국가민주당(NPD)이 대표적이다. 수많은 정치학자와 법학자들이 독일국가민주당과 히틀러 나치가 사상·이념적 흐름을 공유한다고 인정한다. 급기야 독일헌법재판소는 2003년부터 이 당의 반민주성을 심의 중이다. 독일국가민주당은 이런 와중이던 2006년 지방선거에서 득표율 7.3%로 의회 진출에 성공해 독일인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이슬람화에 반대하는 유럽의 애국자들’이라는 뜻의 시민운동단체 페기다(PEGIDA)와 ‘독일을 위한 대안(AfD)’ 당은 21세기에 등장한 독일의 극우주의 집단이다.

페기다는 2014년 12월 국가주의, 이슬람 및 외국인 혐오, 인종차별 등을 전면에 내세우며 출범했다. 공식 설립 이전부터 주기적인 거리 집회를 통해 터키 등 이슬람권 출신 이주민과 난민들에 대한 적대적 감정을 노골적으로 표현하던 단체다. 전국적 네트워크를 빠르게 형성하고 활발한 공개 활동을 벌이고 있다. 독일 정보 당국의 조사에 의해 페기다의 외국인 테러 모의가 드러나기도 했다. 뮌헨 페기다 대표는 테러 조직과 공조하고 있었다. 뉘른베르크 페기다는 난민 캠프 공격을 계획하던 중에 적발되었다. 독일 공영방송 ARD에 따르면, 페기다 설립 이후 난민 및 이주민에 대한 공격 빈도가 그 이전에 비해 2배 이상 높아졌다. 페기다 설립일을 기준으로 전후 3개월을 비교해보니, 외국인에 대한 범죄 건수가 33건에서 76건으로 늘어났다.

ⓒAP Photo2014년 12월 독일 드레스덴에서 극우주의 단체 ‘이슬람화에 반대하는 유럽의 애국자들(PEGIDA)’ 회원 등 1만여 명이 반(反)이슬람 집회를 열었다.

유럽의 난민구호 정책에 반발해 2013년 2월 창당한 ‘독일을 위한 대안(AfD)’은 전형적인 우파 포퓰리즘 정당으로 분류된다. 유로존 탈퇴, 마르크화 회귀를 창당 일성으로 외쳤던 이 정당은 노골적으로 ‘이슬람 및 난민 반대’ ‘러시아와 강력한 연대’ 등을 주장한다. 나치와의 경계에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하는 독일국가민주당과 달리 대중 영합주의에 기반한 AfD는 페기다 운동과 발맞춰 매우 빠른 지지율 상승을 기록하고 있다. 창당한 지 채 1년도 안 된 2013년 9월, 연방 총선에서 득표율 4.7%를 기록했다. 1953년 이후 독일 총선 사상 신생 정당이 전국 차원에서 득표한 가장 높은 수치다. 이후에도 승승장구하고 있다. 2014년의 유럽의회 선거에서 7.1%를 얻더니, 올해 작센안할트 지역 선거에서는 무려 24.3% 득표율을 기록하면서 기민당에 이어 제2당으로 올라서는 이변을 연출했다. AfD는 오는 9월 지방선거가 예정된 메클렌부르크포어포메른 주와 (독일 내에서 가장 진보적인 지역인) 베를린 주에서 실시된 여론조사에서도 각각 19%와 13%의 높은 지지율을 나타내고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AfD의 성공을 4~5년 전 돌풍을 일으켰던 해적당(인터넷을 통한 직접민주주의, 정보 자유화 등을 표방한 정당으로 2006년 창당) 사례에 비교하곤 한다. 기존 정당에 실망한 유권자들이 호기심 차원에서 포퓰리즘 정당인 AfD에 표를 던졌다는 이야기다. AfD가 의회 진입에는 성공했지만, 정작 원내에서 반이민 선동 외에는 딱히 내놓을 정책이 없기 때문에 기존 정당들과 실력을 겨루는 과정에서 스스로 무너져버릴 수도 있다.

반면 정보 자유화를 외치는 해적당과 달리, AfD를 비롯한 독일의 극우파 정당이나 조직에는 너무나도 뚜렷한 대상이 있음을 지적하는 전문가도 많다. 난민 수를 제한한다고 하지만, 이미 많은 난민이 독일 거리를 활보하고 있다. 난민들이 사회 적응에 실패해서 벌이는 크고 작은 범죄, 그리고 난민 수 증가와 테러 발생 빈도를 동일시하는 단순 논리가 독일 극우파 정당들에게 튼실한 자양분을 제공하게 된다는 의미다.

브렉시트로 어수선한 독일 정계와 시민사회는 극우파들의 인기몰이로 더욱 혼잡한 양상이다. 히틀러 전체주의의 결과인 패전과 서유럽을 휩쓴 68혁명을 거치며 반차별과 다양성을 사회의 구성 원칙으로 받들었던 독일 시민사회가 올가을 지방선거와 내년 총선에서 인종차별을 노골적으로 외치는 이들에게 얼마나 지지를 보여줄지 관심이 쏠린다. 연이어 진행될 선거의 결과들이 좁게는 독일의 향후 난민정책에, 넓게는 유럽연합과 세계 질서 재편에 영향을 미칠 것이기 때문이다.

기자명 염광희 (싱크탱크 코덱 연구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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