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아메리칸 드림’이 위험하다

공화당의 위기가 곧 미국 민주주의의 위기

미 대선을 뒤흔드는 러시아 해킹 배후설

 

 

 

미국 공화당과 민주당은 각각 전당대회를 열고 대선 후보를 확정했다.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와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는 남성과 여성, 평생 정치 무대에 직접 뛰어든 적이 없는 후보와 평생을 정치 무대에서 대중의 환호와 비난을 함께 받아온 후보라는 점에서 큰 차이를 보였다. 하지만 두 전당대회에서 각 당의 후보자보다 더 확연히 드러난 차이는 바로 공화당과 민주당이 현재의 미국을 바라보는 시각과 그를 토대로 그린 미래 미국의 모습이었다.

7월18일부터 21일까지 나흘간 열린 공화당 전당대회는 트럼프의 캠페인 슬로건 “다시 미국을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를 주제로 안보·경제 정책, 국가 경쟁력, 화합에 관해 이야기했다. 하지만 공화당 전당대회를 관통한 키워드는 바로 ‘두려움(fear)’이었다. 전당대회 내내 연설은 대부분 현재 미국의 모습을 부정적으로 묘사했다. “오바마 대통령이 집권한 지난 8년 동안 범죄가 크게 늘었고 경제는 몰락했으며 무분별하게 받아들인 불법 이민자들이 살인을 저지르고 미국인들의 일자리를 빼앗았다”라는 규탄이 이어졌다. 외교정책도 비판 혹은 비난 일색이었다. 경제위기를 타개하고 안보를 위협하는 요소를 제거하기 위해 공화당은 트럼프가 내세우는 정책을 선택했다. 트럼프의 정책을 거칠게 요약하면, 미국인의 일자리를 빼앗아가는 중국에 경제 보복을 가하고 중국산 수입품에 높은 관세를 매기며, 불법 이민자를 막으려 멕시코와의 국경에 대대적으로 장벽을 세우고, 잠재적 테러리스트를 막기 위해 임시로 모든 무슬림의 미국 입국을 금지한다는 것이다.

ⓒREUTER지난 7월21일 후보 지명 수락 연설을 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 그는 유권자들의 ‘두려움’을 자극한다.

2065년 미국의 백인 비율 46%

미국 언론은 주요 인사들의 연설과 발언이 나올 때마다 부지런히 사실관계를 검증해 보도했다. 사실 확인 결과를 보면, 이들 주장의 근거 가운데 실제가 아닌 것이 꽤 많았다. 먼저 FBI 범죄 통계를 살펴보면 미국의 범죄율은 꾸준히 줄어들었다. 대공황 이후 가장 큰 경제위기였던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미국의 실업률은 10%에 육박했지만 오바마 대통령 집권 기간 실업률은 5%로 금융위기 직전보다 낮은 수준으로 떨어졌고, 오바마 대통령이 집권한 뒤 일자리 870만 개가 창출되었다(물론 트럼프는 공식적으로 발표하는 실업률은 순전히 사기라고 일축한 바 있다).

불법 이민자의 숫자도 2007년에 1200만명으로 정점을 찍고는 계속 감소 중이며, 시리아 내전이 발발한 2011년 이후 미국이 받아들인 시리아 난민은 2290명에 불과하다(참고로 유엔 난민기구가 집계한 시리아 난민은 총 480만명으로 이 중 300만명이 레바논·요르단·터키에 있다. 2016년 4월 기준 독일은 60만명에 이르는 시리아 난민을 받아들였다).

전당대회 무대를 장식한 주장들을 토대로 지금 공화당이 가는 방향을 가늠해보면 과거의 공화당과는 확실히 다른 길을 선택한 듯하다. 전통적으로 공화당은 미국 예외주의를 강조해왔다. 누구나 열심히 일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아메리칸 드림을 강조하며 미국을 기회의 땅으로 그려왔다. 현상 유지나 기득권 체제에 대한 불만은 늘 진보와 민주당의 몫이었지만, 이번 선거는 그 역할이 민주당에서 공화당으로 넘어왔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인종과 종교의 다양성이 증가하고 지금까지와 달리 백인이 살던 방식이 주류의 지위를 잃게 될 가능성이 있다는 두려움이 공화당, 특히 트럼프 지지자들 사이에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다.

미국은 변화하고 있다. 1965년에 미국은 인구의 80% 이상이 백인이었다. 이 비율은 2016년 현재 64%로 낮아졌고, 2065년에는 46%까지 떨어질 전망이다. 반면, 지난 50년간 미국으로 이주한 이민자는 5900만명으로 대부분이 라틴아메리카와 아시아 출신이다. 현재 히스패닉(중남미계 이주민) 인구는 미국 전체 인구의 18%를 차지하지만 2065년에는 24%로 높아질 전망이다. 아시아계 인구도 현재 5%에서 2065년에는 전체 인구의 14%로 급격히 상승할 것으로 보인다. 1965년에는 미국 인구 가운데 미국 밖에서 태어난 사람의 비율이 5% 정도였다. 이 비율은 오늘날에는 14%에 이른다. 인구 구성의 변화는 곧 유권자 지형의 변화를 뜻한다. 2000년 대선에서 전체 유권자 가운데 백인은 78%였지만, 이번 선거에서는 이 비율이 69%로 떨어질 예정이다.

ⓒREUTER힐러리 클린턴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의 선거 구호는 ‘함께할 때 더 강하다’이다. 지난 7월31일 애슐랜드 유세 장면.

사회적인 문제에 대한 여론도 급격하게 바뀌었는데 대표적인 것이 동성 결혼에 관한 여론이다. 2001년만 하더라도 동성 결혼에 반대하는 의견이 찬성하는 의견보다 압도적으로 많았지만, 오늘날 미국 인구의 55%가 동성 결혼을 찬성한다. 특히 1980년 이후 출생한 밀레니얼 세대는 네 명 중 세 명이 동성애를 지지한다. 종교 역시 마찬가지다. 2007년만 해도 아무런 종교가 없다고 말한 사람이 전체 인구의 16%였지만, 이 비율은 2014년에 23%로 늘었다. 자신을 기독교인이라고 답한 사람은 같은 기간 78%에서 71%로 줄었다.

이렇게 인종과 종교, 그리고 삶의 방식에서 다양성이 증가하는 현실에서 공화당과 민주당은 정반대 선택을 했다. 공화당은 여전히 백인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미국적인 삶이 곧 백인의 삶이었던 ‘전통적인 미국’을 이상화한다. 선거분석 전문 기관인 업샷에 따르면, 트럼프 지지자들에게 미국이 가장 위대했던 시절이 언제인지를 물었을 때 75%는 지금보다 1960년대 중반이 훨씬 좋았다고 답했다.

민주당의 전략은 달랐다. 이번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여실히 드러났듯이 민주당은 인종과 종교, 그리고 삶의 방식에서 다양성을 포용했고 이를 당의 정책에도 적극적으로 반영하려 노력했다. 다양성의 포용은 민주당을 하나로 통합하는 강력한 의제가 되었다. 민주당 의원이라고 해서 모든 정책에서 같은 목소리를 내는 것은 아니다. 경선 기간 드러난 힐러리 클린턴과 버니 샌더스의 정책에도 확연한 차이가 있었다. 하지만 차이를 인정하면서 다양성을 적극적으로 끌어안는 것은 어느새 민주당의 브랜드로 자리 잡은 모습이다.

힐러리 클린턴의 선거 구호 “함께할 때 더 강하다(Stronger Together)”는 이를 단도직입적으로 보여준다. 힐러리 클린턴은 후보 수락 연설에서 쉽지 않은 도전을 헤쳐나갈 수 있는 힘의 핵심은 바로 미국이 전 세계에서 가장 역동적이고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있는 나라이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민주당에 누가 표를 주는지를 살펴보면 민주당이 다양성을 핵심 가치로 내세우는 이유를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소수 인종 유권자들의 투표 행태를 살펴보면 흑인의 95%, 히스패닉 유권자의 70%가 민주당을 지지한다. 지난 20년간 아시아계 유권자들의 투표 행태 변화는 훨씬 더 극적인데, 대체로 학력과 소득 수준이 높고 종교 활동을 활발하게 하는 아시아계 이민자들은 공화당의 지지층과 유사한 면이 많았다. 실제로 과거 대선에서 아시아계 유권자들은 공화당을 지지했다. 1992년 대선에서 민주당 후보였던 빌 클린턴은 아시아계 유권자들로부터 36%의 지지밖에 받지 못했다. 하지만 2012년 선거에서 오바마 후보는 아시아계 유권자들에게 73%라는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다.

ⓒEPA2010년 4월15일 미국 국회의사당 앞에 모인 공화당 지지 티파티 운동원들.

공포, 공화당의 강력한 선거 도구가 되다

변화하는 현실에 대한 다른 인식은 자연히 다른 정책 대안으로 이어졌다. 전 세계에서 기회를 찾아 미국으로 이민 오는 사람들을 미국의 원동력이라고 생각하는 민주당은 이민을 확대하고 불법 이민자들의 자녀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주는 쪽으로 이민 정책을 개혁하고자 한다. 반면, 이민자들이 들여오는 ‘다른 방식의 삶’과 종교가 ‘전통적인’ 미국인의 가치를 위협하고 ‘우리의 일자리’를 빼앗아가며 미국의 안보에 위협을 가한다고 생각하는 공화당은 미국에 와 있는 이민자들을 다시 돌려보내거나 앞으로 들어올 이민자들을 최대한 차단하는 정책을 제안하고 있다.

공화당 지도부와 주요 정치인들은 물론이고 공화당 지지자 사이에서도 트럼프를 둘러싼 분열과 불신이 감지되지만, ‘타인에 대한 두려움’은 트럼프 지지를 이끌어낸 가장 큰 원동력이었다. 이러한 두려움의 원천은 어디이고, 왜 이런 두려움이 트럼프가 떠오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 것일까? 학자들은 진보와 보수가 경계심을 느끼는 정도가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다양한 실험을 통해서 증명해왔다. 특정 이미지나 자극을 주었을 때 뇌파나 눈동자가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통해서 학계 연구는 보수적인 사람이 훨씬 더 경계심이 강하며 자신과 다르거나 불편한 이미지를 보았을 때 보수적인 사람일수록 스트레스 수치가 올라간다는 것을 밝혀내기도 했다.

하지만 생물학적 차이에 주목한 설명은 왜 트럼프가 공화당 대선 후보로 떠올랐는지를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다. 경계심이 강한 건 원래 보수적 유권자들의 특징이었는데 왜 이번 선거에서는 두려움을 공략한 전략이 먹혔을까? 공화당 지도부가 탐탁지 않게 여기는 트럼프를 대통령 후보 자리까지 끌어올린 구조적인 원동력이 있을까?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지난 20년간 공화당의 정책과 지지 기반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공화당은 시장경제와 작은 정부를 외치며 기업의 이익을 대변하는 정책을 지지해왔다.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에서 최근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 이르기까지 모든 자유무역협정을 지지했고 부자 감세와 탈규제 정책을 적극 추진했다. 미국 인구 전체를 놓고 봤을 때 소득이 높을수록 공화당을 지지하는 경향이 높긴 하지만, 2008년 오바마 대통령 취임 이후 소득이 낮고 교육 수준이 낮은 블루칼라 백인들이 공화당을 지지하는 비중이 급격히 늘어났다.

오바마 집권 이후 시작된 공화당 내의 풀뿌리 조직 티파티의 영향으로 교육 수준과 소득 수준이 낮은 유권자들이 공화당 예비 경선 과정에서 더 많은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들 중 많은 사람은 세계화와 기술 발전의 과정에서 일자리를 잃었거나 과거보다 실질임금이 줄어든 사람들이다. 티파티의 주장은 공화당 지도부나 전통적인 공화당 정치 엘리트들의 정책과 다르지만, 공화당 지도부는 상·하원 선거에서 이들의 지지가 꼭 필요하기 때문에 당내 지지 기반 사이에 큰 균열이 있음에도 이를 계속해서 묵인해왔다. 공화당 내 블루칼라 유권자들은 지속적인 실질임금 감소와 일자리 감소, 불안한 노후 대책이 가장 중요하지만, 공화당 의원들은 이런 문제에 장기적인 해결책을 제시하는 대신 여전히 기업과 부자를 위한 세금 감면 정책을 펴면서 선거 국면에서는 이민자의 증가와 관련해 보수 성향 유권자들이 가진 두려움을 적극 활용했다.

1873년부터 2009년까지 의회 연설문을 분석한 최신 논문에 따르면, 실제로 공화당 의원들이 1994년 중간선거에서 1952년 이후 처음으로 하원 다수당이 된 이후로 사람들의 불안을 조장하거나 당파성이 짙은 단어를 사용하기 시작했다(Matthew Gentzkow, Jesse M. Shapiro, Matt Taddy. 〈Measuring Polarization in High-Dimensional Data:Method and Application to Congressional Speech〉).

사회안전망 부족했던 미국이 맞을 부메랑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의 등장은 공화당을 지지했지만 친기업 부자 중심의 정책에서 아무런 혜택을 받지 못했던 공화당 내의 저소득·저학력 유권자들에게 새로운 대안을 제시했다. 트럼프 지지자들 가운데 가장 두드러진 집단은 백인이면서 고등학교 이하의 학력, 그리고 과거 제조업이 중심일 때 경제 번영을 누렸지만, 기술과 정보, 서비스 중심의 경제로 전환하면서 적응에 실패한 지역에 거주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자신이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이유가 이민자들 때문이고, 중국이 미국과 공정하지 않은 무역을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민자를 제한하고 중국에 무역 보복을 하겠다고 큰소리치는 트럼프를 지지한다. 세계화가 제조업과 같은 전통적인 일자리에 타격을 준 것을 부인하기는 어렵지만, 트럼프가 제시하는 정책이 공화당의 블루칼라 유권자들이 처한 문제를 해결해줄 수 없다는 것은 상식적인 수준에서도 판단 가능하다.

지난 30년간 대부분의 선진국은 세계화를 경험했다. 하지만 영국·캐나다·독일·프랑스와 같은 선진국에 비해 미국에서 세계화와 자유무역에 대한 지지 여론은 현저히 낮은 편이다. 그 이유 중 하나로, 학자들은 정부가 세계화로 인해 제조업이나 농업에서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들이 새로운 일자리를 찾을 수 있도록 직업교육을 제공하거나 충분한 사회안전망을 보장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자유무역과 세계화가 가져오는 문제를 해결하는 근본적인 방식은 무역과 사람들의 국경을 넘어선 이동을 근본적으로 차단하는 것이 아니라 정부가 교육 관련 지출을 늘리거나 최저임금 인상 등 사회보장 제도를 확충해 큰 변화를 겪게 될 사람들이 받는 충격을 줄여주는 것이다. 이번 전당대회를 통해 드러난 공화당의 기조, 그리고 트럼프의 정책은 그의 가장 열렬한 지지자들을 오히려 트럼프 정책의 가장 큰 피해자로 만들 가능성이 높다. 기회주의적인 정치인들이 선거 승리를 위해서 만들어낸 두려움의 수사는 공화당에서 가장 소외되었던 계층에 대통령 후보를 선출할 권한을 줬지만, 역설적으로 이 유권자들은 트럼프가 당선되면 자신들의 선택 때문에 경제적으로 더 어려운 시대를 맞이할 수도 있다.

기자명 유혜영 (밴더빌트 대학 교수·정치학)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