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덥다. 에어컨을 켜면 되지만 집에는 에어컨이 없다. 지난 주말에는 집을 탈출해 동네 카페에서 하루를 보냈다. 나와 같은 사람들이 넘치는 데다 나보다 성급한 이도 많아 빈자리가 없었지만, 자리가 나길 기다리며 에어컨을 쐬는 것만으로도 집에서 선풍기를 껴안고 버티는 것보다 행복했다. 그러다 카페도 문을 닫고 집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어 터덜터덜 걷다가, 문득 지구를 떠나야겠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생각의 시작은 나와 달랐겠지만, 지구를 떠나 새로운 땅을 찾는 여정을 꿈꾸고 실행하는 이가 있었으니, 바로 영화 〈아이언맨〉 주인공의 실제 모델로 불리는 일론 머스크다. 내가 카페에서 에어컨을 사야 하나 말아야 하나 망설이며 스마트폰으로 쇼핑몰을 돌아다닐 때, 그는 내 결론이 에어컨을 사는 게 아니라 지구를 떠나는 데 이를 거라 예상이라도 했는지, 이미 장대한 계획을 펼치고 있었다.

〈화성 이주 프로젝트〉(스티븐 L. 퍼트라넥 지음, 문학동네)는 일론 머스크가 세운 민간 우주기업 스페이스X를 비롯해 인류의 화성 이주를 계획하는 프로젝트를 소개한 책인데, 나에게는 에어컨이냐 화성이냐를 결정하는 운명의 갈림길처럼 다가와 조심스레 책장을 펼칠 수밖에 없었다. 에어컨에 대해 아는 거라고는 기계 값과 전기세뿐이었는데, 화성에 대해 아는 건 영화 〈마션〉밖에 없었으니, 본문 세 번째 쪽에서 “화성 남반구의 경우, 여름에는 지구보다 더 덥고 겨울에는 더 춥다”라는 문장을 발견했을 때, 나는 너무 초라해져 잠시 더위를 잊고 말았다. 다행히 나보다 화성을 훨씬 많이 아는 이들이 “적도 근처에 착륙하게 된다면 여름 낮 기온이 영상 21℃까지 올라가는 온화한 기후”라는 걸 알아냈다니, 역시 화성은 에어컨과 경쟁할 만하다는 확신이 들었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EPA〈/font〉〈/div〉테슬라 CEO인 일론 머스크는 화성 이주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다.

물론 인류가 화성에 가서 자리를 잡고 살아가려면, 지금 인류가 지구에서 당면한 과제를 해결하는 것 못지않게 복잡한 문제를 풀어야 한다. 정착은커녕 그곳에 가는 동안 벌어질 일도 만만치 않은데, 이 책은 화성 비행에서 자주 제기되는 질문을 소개하고 나름의 해법을 붙인다. 첫 번째 물음은 “소수의 사람들이 극도로 좁은 공간에서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으며 9개월 동안이나 함께 비행한다면 서로 죽고 죽이는 일이 발생하지 않을까?”이다. 나는 자연스럽게 이 질문을 이렇게 바꿔 읽었다. ‘다수의 사람들이 극도로 좁은 공간에서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으며 평생 동안 함께 살아간다면 서로 죽고 죽이는 일이 발생하지 않을까?’ 갑자기 지구와 화성이 별로 다르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 최근에 에어컨을 산 이웃에게 에어컨 사용 후기를 물어보고 싶어졌다. 이웃은 그간 환경문제 때문에 에어컨 사용을 멀리하다가 “문제는 탄소가 아니라 자본주의”(〈이것이 모든 것을 바꾼다〉 나오미 클라인 지음, 열린책들)라며 구매를 결정했다.

꿈에도 돈이 필요하다

맞다. 에어컨은 돈이라고 생각하면서 왜 화성은 꿈이라고 생각했던가. 화성에 가려면 돈이 필요하다는 걸, 책 절반이 지나서야 깨달았다. 일론 머스크는 친절하게도 화성 비행에 필요한 비용을 50만 달러로 책정했다고 한다. 내가 지금부터 죽을 때까지 에어컨을 켜두어도 전기세가 이만큼 나오지는 않을 터. 화성은 돈, 아니 꿈, 그렇다. 꿈에도 돈이 필요하다는 걸 깨닫게 해주었다. 이렇게 화성이 이룰 수 없는 꿈이 되자 비로소 화성 이주에 비친 지구와 인류의 고민이 더위를 뚫고 머릿속으로 들어왔다. 주인 없는 땅을 차지하려는 이들의 탐욕과 지구의 부족한 무엇을 얻으려는 필요 사이에서 누가 무엇을 기준으로 균형을 유지할지. 그리고 이 문제를 풀고 나서 마음 편히 에어컨을 살 것인지, 이 문제를 풀기 전에 에어컨을 사서 몸 편히 깊은 고민에 빠질 것인지. 오늘도 밤이 덥다.

기자명 박태근 (‘편집자를 위한 실험실’ 연구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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