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쿠바 여행을 앞두고, 처음에는 별 감흥이 없었다. 중요한 나라인 건 알겠는데,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을지 딱히 짚이는 게 없었던 탓이다. 쿠바의 근현대사를 파고들어가 보니 그게 아니었다. 지구의 반대편 어디쯤에나 있을 법한 나라가 우리보다 50여 년 앞서 똑같은 길을 걸었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우리의 미군정 3년의 역사가 알고 보니 20세기 초 쿠바에서 행한 군정 경험을 그대로 이식한 것이었다.

우리 문제를 해결할 답을 우리 안에서만 찾아서는 우물 안 개구리 신세를 면치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계기였다. 기자를 쿠바로 이끌었던 이창주 국제한민족재단 이사장(70)이 ‘글로벌 아이(Global Eye)’라는 프로그램으로 ‘평소에 쉽게 가보기 어려운 곳’들만 골라 참석자들을 ‘혹사’시키는 이유다.

ⓒ시사IN 신선영

글로벌 아이 프로그램은 어느 것 하나 녹록하지 않다. 2012년 여름부터 시작한 시베리아 횡단열차 프로그램을 보면, 동쪽 끝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서쪽 끝 상트페테르부르크까지 9900㎞ 전 구간을 완주한다. 대평원을 달리는 것 외에도 참가자들이 꼭 해야 할 일이 있다. 바로 ‘공부’다. 시베리아 횡단열차 프로그램에서는 6회에 걸친 전문가 특강을 들어야 한다.

이창주 이사장은 1992년 한·소 수교 이전 이미 옛 소련과 중국 등 사회주의권에 폭넓은 인맥을 쌓았다. 2000년 5월 뉴욕 대회를 시작으로 매년 전 세계 주요 도시를 돌며 한 차례씩 열리는 세계한민족포럼 역시 이 이사장의 내공이 엿보이는 행사다. 세계 각국에서 모인 동포 사회의 오피니언 리더들, 그리고 한반도 분야 전문가들이 한반도 평화를 주제로 2박3일간 ‘열공’한다. 내년에는 한인 강제이주 80주년을 맞아 국내 인사 80여 명을 대동하고 15박16일간 ‘회상 열차’를 타고 블라디보스토크를 출발해 한인 최초 도착지인 카자흐스탄 알마티에서 행사를 열 예정이다.

이 이사장은 올가을 글로벌 아이 프로그램의 하나로 ‘발트 4개국 역사문화 교류탐사’(9월30일~10월8일)를 준비 중이다. 유럽 문명의 축소판인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에스토니아 탈린, 라트비아 리가, 리투아니아 빌뉴스 등 역사·문화·종교 유적지를 여행하는 프로그램이다. 발틱 국가들은 우리에게는 생소하지만 유럽에서는 중세 기독 문명의 본고장이라 할 정도로 역사·문화·종교적으로 유서 깊다.

이창주 이사장이 이번 프로그램에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이들 국가가 지정학적으로 한반도와 닮았다는 점이다. 러시아, 독일 등 인접 강대국으로부터 침략과 식민의 역사를 겪으면서도 독립을 쟁취하려고 피를 흘린 모습에서 오늘의 우리를 다시 보자는 취지다. ‘열공’할 자세가 돼 있는, 취향이 좀 독특한 분들은 한번 노크해봄직하다(문의 02-730-7530).

기자명 남문희 기자 다른기사 보기 bulgot@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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