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록부심’이라는 게 있다. 이것은 일종의 종교 비슷한 것으로 ‘록 음악이 다른 장르보다 우월하다’는, 황당무계한 믿음에 근거한다. 적시해서 고백하자면 나도 그랬다. 중학교 때부터 록 음악을 들어왔고, 이미 그때부터 록이 아닌 음악을 듣는 친구들을 속으로 우습게 봤던 것 같다.

이놈의 록부심. 과연 누가 창조했는지 알고 있는가. 미국의 음악비평가들, 그중에서도 〈롤링 스톤〉이라는 잡지의 기자 및 평론가들이다. 때는 1960년대, 그들은 할리우드의 영화와 함께 전 세계 시장을 정복 중이던 미국산 ‘로큰롤(혹은 록)’에 특별하고도 독점적인 지위를 부여하겠다는 욕망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저 먼 시대로부터 전해져 내려온 비급을 하사하기에 이르렀는데, 그 비급의 표지에는 다음과 같은 세 글자가 쓰여 있었던 것이다. 진.정.성.

그랬다. 1960년대는 음악의 시대였고, 〈롤링 스톤〉이 당대 청년들을 대변하는 음악 전문지로 위상을 확고히 갖춰가면서 록은 그들의 의도대로 진정성으로 넘치는, ‘진짜 음악’이 될 수 있었다. 이 말은 이런 의미를 내포하는 것이기도 했다. 록이 아닌 음악, 예를 들어 댄스 음악은 가짜라는 뜻. 거칠게 분류하자면 〈롤링 스톤〉의 시각에서 록 외의 음악들은 노골적으로 상업성을 내세운 것에 불과했다.

ⓒEPA일렉트로니카 그룹 M83의 공연 모습.

물론 1960년대와 1970년대에 걸쳐 록은 음악적으로 꽤 진지했던 게 사실이다. 게다가 그것은 태어난 지 20년이 채 되지 않은, 음악적인 신생아나 마찬가지였다. 여기에 스튜디오 기술이 함께 발전하면서 마치 광대한 우주를 탐사하듯 음악적인 실험이 여기저기서 폭발했고, 록 걸작이 쏟아져 나왔다. 대중음악의 발전적인 역사가 실질적으로는 1970년대로 끝났다고 보는 시각도, 혹자는 ‘꼰대스러운’ 관점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어느 정도 일리는 있다.

그런데 문제는 지금이 2016년이라는 점이다. 아직까지도 횡행하는 록부심을 바라보고 있자면 저절로 배어나오는 한숨을 금할 길이 없다. 이렇게 록부심으로 가득 찬 사람들에게는 대개 다음과 같은 공통점이 있다. 요즘 음악은 들어보지도 않고, 이글스의 ‘호텔 캘리포니아(Hotel California)’나 레드 제플린의 ‘스테어웨이 투 헤븐(Stairway to Heaven)’ 같은 곡을 들먹이면서 요즘 음악은 들을 만한 가치가 없다고 치부한다. “요즘 것들은…”과 거의 같은 맥락이라고 보면 된다.

록 페스티벌에서 일렉트로니카 뮤지션이 각광

요즘 젊은이들은 음악 감상의 폭이 넓다. 록 페스티벌에서 록 뮤지션과 록 밴드에 열광하면서도 팝이나 힙합, 일렉트로니카 음악에도 관심의 끈을 놓지 않는다. 깊이는 덜해졌을지 몰라도 넓이에서만은 과거 록의 전성기를 완전하게 압도한다. 그만큼 수많은 장르가 만들어졌으니까 말이다.

얼마 전 열린 ‘지산 밸리록 뮤직 앤드 아츠 페스티벌’ 최고의 퍼포먼스는 일렉트로니카 밴드 디스클로저의 차지였다. 프랑스의 안토니 곤살레스가 이끄는 일렉트로니카 그룹 M83은 지난 5월 관객들을 황홀경에 빠트리고 난 뒤 격찬 세례를 받았다. 두 공연만이 아니다. 장르를 불문하고 각종 페스티벌에는 여러 장르를 즐기려는 사람들로 넘쳐난다. 그들에게 특정 장르에 대한 자부심이란 편견의 또 다른 이름일 뿐이다. 리얼 밴드 연주와 함께하는 힙합, 일렉트로닉 콘서트에서는 록을 느낄 수 있고, 록 공연에서도 댄스와 힙합 리듬을 만날 수 있는 시대다. 그런데도 록부심이라니, 이제 그만 훌훌 던져버리자. 장르 불문하고 좋은 음악은 1960~ 1970년대에도 널려 있었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기자명 배순탁 (음악평론가∙〈배철수의 음악캠프〉작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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