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희는 고기를 좋아한다. 돼지고기, 오리고기, 닭고기 순서다. 다행히 비싼 쇠고기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 나이 또래와 달리 독특하게도 오리불고기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다. 가끔 뜬금없이 메뉴 요청을 한다.

“아빠. 우리 오리불고기 먹은 지 좀 오래되지 않았어?” “왜? 오리불고기 먹고 싶어?” “응, 오리불고기 안 먹은 지 오래됐잖아.”

우리 부부는 맞벌이다. 처가 근처에 신혼집을 마련했기에 갓 낳은 윤희를 장모님이 봐주셨다. 처가는 서울 양천구 신월동에서만 40년 넘게 살았다. 장모님 친구가 운영하는 동네 오리탕집이 장모님 친구들의 아지트였다. 윤희가 장모님 친구들 사이에서 태어난 첫 번째 손녀이다 보니 그분들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자연스레 오리탕집이 윤희의 놀이터가 되었다. 이유식을 끝낸 뒤 맨 처음 먹은 고기가 오리고기였을 정도다. 신기하게도 어릴 때부터 고추장으로 맵고 달게 양념한 불고기를 좋아했다.

윤희가 초등학교를 다닐 때까지도 방과 후 대부분을 오리탕집에서 보냈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오리탕집이 문을 닫게 되면서 오리불고기 대신 돼지갈비가 그 자리를 차지했다. 하지만 여전히 윤희의 어린 시절을 지배했던 고기는 오리불고기다. 윤희의 솔푸드(soul food)인 셈이다.

ⓒ김진영 제공

요새 슈퍼나 마트에 가면 오리불고기를 양념해서 예쁘게 포장한 완제품을 판다. 하지만 그 제품들은 구매하지 않는다. 고기의 질을 떠나 양념의 재료가 마음에 들지 않기 때문이다. 가격에 초점을 맞춘 상품이기에 좋은 양념을 쓰는 경우가 드물다.

밑반찬보다 메인 요리에 집중

나는 예전에 근무했던 친환경식품 매장에서 냉동 오리고기를 산다. 무항생제 인증을 받은 고기다. 요즘은 냉동 고기라도 해동만 잘하면 생고기 못지않다. 해동은 냉장고에서 하룻밤을 두고 천천히 하는 게 가장 좋지만 시간이 없다면 찬물에서 해도 된다. 찬물에 포장째 담가두어 해동한 다음 포장을 벗긴 고기를 체에 밭쳐 물기를 빼는 사이 양념을 준비한다.

고추장·고춧가루·다진 마늘·멸치액젓(소금 대신 액젓을 넣으면 맛이 좋아진다)·설탕·대파·양파를 적당히 섞어 양념장을 만든다. 고추장 돼지불고기 양념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이 양념으로 고기를 재면 시중에서 파는 양념 불고기와는 색깔이 다르다. 시중에서 파는 건 붉은색이 도드라져 보이는 색소를 넣기 때문이다. 색깔은 화려하지 않지만 맛은 제대로다. 오리불고기에는 상추와 오이도 곁들여야 한다. 윤희가 유일하게 먹는 채소가 오이와 상추다.

밥을 지어 뜸이 얼추 들었을 때 고기를 볶고 채소를 다듬는다. 김치 하나 상에 올리고 오리불고기·상추·오이·쌈장으로 단출하게 상을 차려 윤희를 부른다. “김윤~ 밥 먹자”(밥 먹을 때 내가 윤희를 부르는 애칭이다. ‘김윤희’라고 부를 때는 혼낼 때다).

“김윤~ 물 떠오고~.”(식사를 차릴 때 한 가지라도 거들게 한다) “오리불고기 했네? 헤헤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밥 한 숟가락을 상추에 얹고 오리불고기를 가득 올려 볼이 튀어나오도록 먹는다. 입안에서 씹던 밥이 목으로 넘어갈 즈음 오이 한 조각을 쌈장에 찍어 먹는다. 윤희의 얼굴 표정에서 ‘바로 이 맛이야!’가 읽힌다.

“맛있어?” “응.” “옛날 오리탕집보다 맛나?” “으응, 생각 좀 해보고”(맛있다는 표현이다).

나는 식사를 준비할 때 밑반찬에 공력을 들이기보다는 메인 요리에 집중하는 편이다. 밑반찬 만드는 데 들이는 힘을 메인에 집중하는 것이다. 메인이 맛있으면 윤희가 잘 먹는다. 그러면 된 거다.

 

김진영
글쓴이는 20여 년간 전국의 산지를 다니고 식품을 기획한 MD(merchandiser:상품기획자)다. 대학에서 식품가공학을 전공하고 군대 시절 취사병 근무를 하면서 조리에 대한 두려움을 없앴다. 결혼할 때 아내와의 약속이 “밥은 해줄 수 있지만 청소와 빨래는 안 한다”였다. 그 약속을 14년째 지키며 딸아이의 간식과 밥을 챙기게 되었다. 본인이 어릴 때 편식 때문에 자주 혼났던 기억이 있어서 딸에게는 음식을 강요하지 않는다. 회·새우·게·채소 등을 먹지 않고 고기를 좋아하는 중학교 1학년 외동딸과 벌이는 밥상머리 신경전을 격주로 연재한다.

기자명 김진영 (식품 MD)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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