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미국 대선에선 러닝메이트(부통령 후보)를 주목해야 한다. 전통적으로 미국 대선에서 러닝메이트는 대통령 후보의 득표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들러리에 그쳤다. 오죽하면 ‘러닝메이트는 후보의 표만 깎아먹지 않으면 다행’이란 말이 나올 정도다. 하지만 올해 미국 대선에선 러닝메이트가 후보의 당락에 무시할 수 없는 변수로 떠오를 것 같다.

최근 공화·민주 양당은 전당대회를 통해 도널드 트럼프와 힐러리 클린턴을 각각 대선 후보로 확정했다. 오는 11월 대선 레이스의 본선이 시작된 것이다. 하지만 트럼프·클린턴 후보 모두 유권자들에게 역대급 비호감도를 기록하고 있는 상태다. 트럼프가 갖은 막말, 당 정강과 맞지 않는 공약 등으로 공화당 주류 세력에게 배척당하고 있다면, 클린턴 역시 과거 국무장관 시절 개인 이메일 서버로 기밀 정보를 취급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신뢰도가 땅에 떨어졌다. 이에 따라 러닝메이트들이 각 대통령 후보의 약점을 메우고 득표에 기여할 ‘보완재’로 기대되는 것이다.

그동안 러닝메이트 선택 기준으로 “국정과 의회 경험이 있는 사람”을 공언해온 트럼프는 현역 인디애나 주지사 마이크 펜스를 선택했다. 반면 클린턴은 당초 유력시되던 민주당의 진보 기수이자 여류 상원의원인 엘리자베스 워런 대신 중도 성향의 팀 케인 상원의원을 발탁했다.

ⓒEPA힐러리 클린턴(오른쪽)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와 러닝메이트인 팀 케인 버지니아 주 상원의원.

미국의 역대 대통령 선거에서 러닝메이트의 주된 임무 가운데 하나는 상대 측 후보들을 물어뜯는 투견 역할이었다. 2008년 대선 당시 공화당 존 매케인 대통령 후보의 러닝메이트로 나서 거친 입으로 악명을 떨친 사라 페일린이 대표 사례다. 그런데 케인과 펜스는 페일린 유형의 정치인이 아니다. 케인은 1998년 버지니아 주도인 리치먼드 시장을 지낸 뒤 부지사-주지사-민주당 전국위원회 위원장을 거쳐 2013년 상원의원에 당선되기까지 20여 년 동안 투견 이미지를 보인 적이 거의 없다. 인디애나 주 토박이인 펜스도 마찬가지다. 지역 방송에서 라디오 토크쇼 진행자로 인기를 끌던 그는 2001년, 인디애나 주 연방 하원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해 주지사에 오르기까지 조용한 정치를 펼쳐온 것으로 평가된다. 정치 전문 매체 〈폴리티코〉는 “펜스는 스스로 절제하는 사려 깊은 스타일인 반면 케인은 협상을 위해서라면 공화당 인사들과도 친하게 지내는 신뢰할 만한 리버럴이다”이라고 썼다.

그렇다면 트럼프와 클린턴은 무엇을 기대하고 이들을 러닝메이트로 낙점했을까? 두 사람의 약점을 보완해줄 것으로 기대했기 때문이다. 〈뉴욕 타임스〉는 공화당 주류 측에서 사실상 왕따를 당한 트럼프의 처지를 겨냥해 “펜스 주지사가 아직도 트럼프를 믿지 못하는 공화당 유권자들의 지지를 끌어오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라고 분석했다. 의회 전문지인 〈더 힐〉은, 트럼프가 당선되는 경우에 펜스 주지사가 행정부와 의회 간 가교 구실을 할 수 있으리라 봤다. 실제로 펜스는 트럼프의 정치적 경험 부족을 메워줄 수 있을 뿐 아니라 이민 문제, 동성애 등 주요 현안에서 공화당 주류 측과 견해를 같이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케인은 평범한 노동자 가정 출신으로 하버드 법대를 나와 시장-주지사-상원의원 등으로 입신가도를 달려온 점이 유권자들의 호의를 얻을 것으로 보인다. 그가 민주당 표밭인 히스패닉 유권자들과 자유롭게 소통할 정도로 스페인어를 구사하며, 대표적 경합 지역인 버지니아 주에서 지지율 높은 상원의원이라는 점도 고려되었다. 래리 사바토 버지니아 대학 정치연구소장은 〈워싱턴 포스트〉 기고문에서 “클린턴이 케인을 끌어들인 결과로 올해 대선에서 버지니아 주가 경합 지역 딱지를 뗄 수 있을지도 모른다”라고 주장했다. 클린턴이 지역적 요인을 중시했다는 이야기다. 케인은 버지니아 주에서 태어나진 않았지만 하버드 법대를 졸업한 뒤 주도인 리치먼드에서 17년간 변호사 생활을 했고, 이후 1998년 리치먼드 시장을 시작으로 버지니아 부지사(2002~2005)와 주지사(2006~2010)를 거쳐 2013년 이후 지금까지 연방 상원의원을 지내는 등 버지니아 주에서 정치적 뼈가 굵은 인사다.

트럼프는 당 내부 겨냥, 힐러리는 경합 주 겨냥

통상 미국에서 대통령을 뽑는 공식기구인 선거인단은 50개 주 인구 비례에 따라 전체 538명으로 구성된다. 대선에서 승리하려면 과반인 270명 이상을 확보해야 한다. 버지니아 주의 선거인단은 13명으로, 치열한 경합 주인 펜실베이니아(20명), 오하이오(18명), 노스캐롤라이나(15명)보다 적지만, 중요성은 결코 뒤지지 않는다. 버지니아 주는 전통적인 공화당 아성에서 2008년 대선부터 민주당으로 돌아선 지역이기 때문이다. 정치 분석가들은 트럼프가 버지니아 주를 수복하지 못하면 선거인단 과반수 확보에 치명타를 입으리라 본다. 이 때문에,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힐러리 클린턴 후보에게 버지니아 주 상원의원인 케인을 강력 추천한 것으로 알려졌다.

ⓒREUTER도널드 트럼프(왼쪽)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와 러닝메이트인 마이크 펜스 인디애나 주지사.

버지니아 대학 정치학과 박사과정인 보리스 히어싱크와 브렌턴 피터슨 등은 최근 ‘경합 주 출신 러닝메이트가 득표에 크게 기여한다’는 내용의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들에 따르면, “러닝메이트가 경합 주 출신일 경우, 평균 2.2%의 득표 효과를 본다”(〈워싱턴 포스트〉 7월15일자). 이들은 특히 “만일 러닝메이트가 경합 주 출신이었을 경우, (실제 역사와 달리) 공화당은 1960년과 1976년 대선에서 승리했을 것이고 민주당은 2000년과 2004년에 백악관을 차지할 수 있었을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대표적 경합 지역인 버지니아 주의 경우, 클린턴이 다소 앞서지만 위의 연구대로 케인이 득표율을 2% 이상 올려주면 100% 승리를 보장할 수 있다.

그렇다면 공화당 부통령 후보인 펜스 역시 자신이 주지사로 있는 인디애나 주에서 트럼프의 득표율을 올릴 수 있을까? 그럴 수는 있겠지만 트럼프에게 실질적 이익이 되지는 않을 듯하다. 트럼프가 인디애나 주에서는 굳이 펜스의 도움 없이도 승산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미국 주요 언론이 꼽는 올 대선의 경합 지역은 버지니아를 비롯해 11개 주에 달한다. 현재 판세는 예측을 불허할 정도의 각축전이다. 이름난 정치 분석 전문 블로그 538(Five Thirty Eight)가 제시한 승리 가능성(7월26일 현재)에 따르면, 클린턴 52.4% 대 트럼프 47.5%다. 클린턴이 다소 앞섰지만, 결코 안심할 상황은 아니다. 공화당 전당대회 직후인 7월25일 CNN 여론조사에서는, 트럼프가 48% 지지율로 클린턴(45%)을 근소하게 앞서기도 했다. 트럼프와 클린턴 두 후보가 현재 하루가 멀다 하고 난타전을 벌이는 진흙탕 싸움 속에서 대선 변수로 떠오른 러닝메이트가 주요 관전 포인트가 되었다.

기자명 워싱턴∙정재민 편집위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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