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드 특집


사드 ‘출구전략’을 알아보자

전문가들이 내놓은 ‘사드 위기’ 5단계 해법

한반도 비핵화를 실현할 대안은?

성주 선비가 20년 만에 서울에 온 까닭

 

7월8일 한·미 양국이 사드를 배치하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실제 배치 시점으로 잡은 내년 연말까지는 앞으로 1년 이상 남았다. 얼마든지 상황이 변할 수 있다. 동유럽에서도 미국이 2008년 폴란드에 미사일방어체계(MD)를 도입하려 했으나 러시아가 강력 반발해 철회한 적이 있다. 한국의 사드 배치 역시 변수가 많다. 중국의 반발 변수가 크다. 중국은 경제 및 인적 교류 제한부터 한국 정부에 대해 단계적으로 압박 수위를 높여갈 것이다.

분명한 점은 지금처럼 배치 선언만 해놓고 후속 조처가 없다면 상황에 끌려다니다 갈피를 못 잡게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이다. 지금이라도 새로운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한반도 문제 전문가와 동북아 정세 전문가들로부터 다양한 해법을 들어보았다. 아래는 전문가들이 내놓은 5단계 해법이다.

 

■ 1단계 한국판 핵·경협 병진전략

박근혜 대통령은 사드를 북한 핵·미사일 방어용이라고 주장했다. “사드 배치 외에 북한의 미사일 공격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할 방법이 있다면 제시해달라”고 박 대통령은 말했다. 이 말대로라면 박 대통령은 사드로 북한 핵을 막을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이 점이 매우 중요하다. 박 대통령 말대로라면 대통령이 되어 지금까지 북핵에 속박되어 아무것도 하지 못했던 상황에서 비로소 벗어날 길이 생겼기 때문이다. 사드 배치로 그동안 대통령과 보수 세력이 사로잡혔던 ‘북핵포비아’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이제 남북 간에 유의미한 뭔가를 해볼 만한 상황이 된 셈이다. 박 대통령은 북한의 비핵화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던 기존 핵연계 전략에서 스스로 걸어나와야 한다. 북핵 때문에 중단했던 남북 경협의 족쇄를 푸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천안함 사건으로 남북관계 단절을 선언한 ‘5·24 조치’를 해제하고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을 재개해야 한다. 임기 1년6개월여 남은 대통령으로서 북한의 4차 핵실험으로 중단해야 했던 ‘박근혜표 대북 구상’도 이제 실천에 옮겨야 한다.

ⓒ청와대사진제공박 대통령은 ‘박근혜표 대북 구상’을 실천에 옮길 때가 왔다.

1월6일 북한의 4차 핵실험 직전까지만 해도 외교가에는 청와대발 대북 프로젝트 얘기가 흘러나왔다. 임기 4년차인 올해 남북관계 돌파구를 열기 위해 대담한 조치가 나올 것이라는 얘기였다. 외교·안보·통일 부처의 인적 쇄신도 그중에 하나였다. 사드 배치 선언 과정에서 군 출신으로 구성된 현 청와대 안보팀은 그 한계를 여실히 드러냈다. 인적 쇄신과 동시에 내부적으로 준비만 하고 중단한 경원선 북쪽 구간 연결 사업과 북한 경제개발구에 농공복합단지를 건설하는 사업도 재추진할 필요가 있다.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큰 그림을 그려야 한다. 사드를 계기로 핵연계 전략을 ‘한국판 핵·경협 병진전략’으로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 2단계 한반도판 중거리핵전력(INF) 감축협정

1980년대 중반 서독이 미·소 양국을 중재했던 것처럼 우리가 북·미 양측을 중재할 수 있다. 미국은 현재 사드 배치 선언으로 북한과 뉴욕 대화 채널뿐 아니라 중국을 통한 대북 통로도 사라졌다. 미국 처지에서 시급하게 북한과 대화해야 할 일이 있다. 바로 북한 무수단 미사일의 발사 실험 및 배치다. 북한의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은 장래의 위협이지만 무수단은 현재의 위협이다. 2013년 4월 미국이 원래 계획보다 앞당겨 괌에 사드를 배치한 것도 당시 북한이 이동식 발사대에 거치한 무수단 미사일로 위협했기 때문이다. 또 지난 6월22일의 무수단 발사 성공도 이번에 사드 배치 선언을 앞당기게 한 요인 중 하나이다.

사드 배치와 북한 무수단의 실전 배치를 상호 연계해 동결하는 미니 중거리핵전력(INF) 감축협상도 충분히 시도해볼 만하다. 미국은 아직 배치하지 않은 사드로 북한의 무수단 위협을 줄일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고, 북한은 그다음 단계인 북·미 대화로 진입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무엇보다 사드 배치 선언으로 야기된 현재의 어정쩡한 상태에서 벗어나는 출구전략으로서 가치가 있다. 즉, 사드를 한반도판 군축협상의 출발점으로 삼을 수 있는 것이다. 다음 단계는 북·미 대화를 심화해 북한 비핵화협상으로 나아가는 과정과 미·중 간 군축협상으로 나아가는 과정이 병행 진행될 필요가 있다.

■ 3단계 북한의 핵 동결과 한·미 군사훈련 중단

북한이 무수단 미사일 발사 실험을 거듭한 이유는 무수단 사정거리에 있는 괌이 바로 한·미 군사훈련에 동원되는 미군 전략기지의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북한은 이미 핵실험을 중지하는 대가로 한·미 군사훈련을 중단할 것을 여러 차례 제안했다. 지난 4월 초 중국 군부 채널로 황병서 총정치국장의 5월 말 방미 의사를 타진했던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미국이 그동안 북한의 제안을 무시했던 것은 협상의 실익이 높지 않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북한의 핵 능력과 미사일 능력이 현저하게 진화했다. 이제 미국 처지에서도 북·미 대화가 실익이 없지는 않다.

ⓒ미국 육군 홈페이지 갈무리2013년 8월 괌 앤더슨 공군기지 사드 포대 앞에 모인 미군 장병들. 같은 해 4월 사드가 배치됐다.

■ 4단계 북한 비핵화와 평화협정 회담

중국의 왕이 외교부장이 제안한 ‘북한 비핵화와 평화협정의 병행’에 대해 존 케리 국무장관 역시 관심을 보였다. 하지만 더 이상 진전이 없었다. 이런 가운데 북한은 지난 7월6일 정부 성명을 통해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5대 요구사항을 발표했다. “남조선에서의 미국 핵무기 공개, 남조선에서 모든 핵무기와 핵기지 폐쇄 및 검증, 미국이 조선반도와 주변에 핵 타격 수단을 끌어들이지 않겠다는 담보, 어떤 경우에도 북한에 대해 핵 위협을 하거나 핵을 사용하지 않겠다는 확약, 남조선에서 미군의 철수 선포”가 그것이다. 이에 대해 미국의 북핵 전문가 로버트 칼린 스탠퍼드 대학 연구원은 미군 철수를 주장한 항목을 제외한 나머지 4개 항목은 1992년 남북 비핵화공동성명의 합의 사안이거나 미국이 이미 충족 또는 원칙적으로 동의한 사안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남조선에서 핵 사용권을 쥐고 있는 미군의 철수를 선포하여야 한다”라는 다섯 번째 요구 사항도 협상이 가능하다고 보았다. 로버트 칼린은 ‘선포’라는 대목에 주목했다. 북한이 ‘철수’ 대신 굳이 ‘철수를 선포’할 것을 요구한 대목에 대해 칼린은 “주한미군 철수 요구안이 신축적일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미국이 마음만 먹으면 충분히 대화가 가능하다는 의미다.

■5단계 동북아판 헬싱키 프로세스

사드 문제의 본질은 아시아·태평양 지역 전반에 걸친 미·중 군사 대결이다. 동중국해와 남중국해에 이어 미국의 새로운 군비확장 전략인 제3차 상쇄전략과 이에 대응하는 중·러의 신무기 개발로 아시아·태평양 지역은 바야흐로 21세기판 냉전 구도가 펼쳐지고 있다. 미·중 양국은, 패권국과 신흥대국 사이 패권의 교대는 반드시 전쟁을 통해 이루어지는 ‘투키디데스 함정(Thucydides trap)’을 알면서도 점점 빠져들어 가고 있다. 그러나 함정을 피할 방법이 있다. 과거 미·소 냉전과 달리 양국은 매우 광범위한 분야에서 협력하고 있다. 대결 일변도로 가다가는 공멸할 수밖에 없다.

냉전 시대에 동서 유럽이 헬싱키 프로세스를 통해 군축을 시작했듯이 동북아 관련 국가들이 모두 참여하는 동북아판 헬싱키 프로세스를 시작할 필요가 있다. 헬싱키 프로세스는 유럽식의 안보협력 시스템인데, 1975년 헬싱키 선언을 시작으로 냉전 시대 동서 유럽 35개국이 안보협력을 위해 헬싱키 협약을 체결하고 이를 이행하면서 통합의 기반을 닦았다. 나토 사무총장을 역임한 아네르스 포그 라스무센 전 덴마크 총리 등이 방한해 동북아판 헬싱키 프로세스를 제안하는 등, 국내외 전문가들 사이에 공감하는 방안이기도 하다. 박근혜 대통령도 후보 시절부터 자신의 동북아 평화협력 구상을 헬싱키 프로세스를 모델로 한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과거 서독이 유럽 평화의 발신지가 되었듯 ‘평화 없는 70년’의 고통을 겪어온 한국이, 5단계 해법을 추진한다면 아시아 평화의 근원지가 될 수도 있다. 물론 군 출신 인사들을 중용한 박근혜 정부가 이 해법에 귀를 기울이지 않을 확률이 높지만 말이다.

기자명 남문희 기자 다른기사 보기 bulgot@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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