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행〉이 재미있는 첫 번째 이유는 마동석 때문이다. 지난 칸 국제영화제 미드나잇 스크리닝으로 이 영화를 보았는데, 당시 외국 관객들도 단숨에 마동석의 팬이 되는 걸 나는 보았다. 그가 나오는 장면마다 웃음이 터졌다. 그가 휘두르는 주먹마다 박수가 나왔다. 그가 위기에 처했을 때 극장 안은 진심 어린 탄식으로 가득 찼고, 상영이 끝난 뒤 카메라가 객석의 출연진을 비출 땐 오지 않은 마동석을 찾아 목을 길게 뽑는 관객들이 적지 않았다(고 나는 믿는다).

드디어 〈부산행〉이 한국 관객들을 만난 뒤, “좀비가 마동석을 피해 부산으로 도망가는 영화”라는 어느 관객의 한 줄 평이 인터넷에 퍼졌다. ‘정의로운 근육’이야말로 만국 공통의 로망일지니. 안 그래도 호감 가던 ‘아트박스 사장님’이 이 영화로 마침내 진정한 ‘국민 영웅’이 되었다.

〈부산행〉이 재미있는 두 번째 이유는 기차 때문이다. 좀비들을 ‘피해’ 한 칸 한 칸 앞으로 나아가는 영화의 구성은, 가진 자들을 ‘향해’ 한 칸 한 칸 앞으로 나아가던 〈설국열차〉를 닮았다. 칸 영화제에서 〈부산행〉을 본 한 해외 매체도 “〈설국열차〉와 〈월드워 Z〉가 만났다”라고 평했다. 앞으로 더 많은 한국 관객이 이 영화를 보며 〈설국열차〉를 떠올리게 될 것이다. 한 칸 한 칸 앞으로 나아가는 구성은 한 판 한 판 ‘클리어’하며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게임을 닮았으므로, 주인공들의 여정에 관객을 동참시키는 데 효과적이다. 빠르게 달리는 좁은 기차 안이어서 긴장과 공포는 극대화된다.

〈부산행〉이 재미있는 세 번째 이유는 당연하게도 좀비다. 이 영화는 본격 좀비 영화로 불린다. ‘한국 상업영화’로는 사실상 처음 제작된 좀비 장르라는 뜻에서 ‘본격’이다. 할리우드를 비롯한 다른 나라에서 좀비 장르는 진작 흔해졌다. 〈월드워 Z〉를 이 지면에 소개할 때도 인용했듯이, 주로 이런 분석이 뒤따른다. “점점 더 난폭해지는 자본주의 세계화”가 최근 창궐하는 좀비 영화의 자양분이고, “자기와 가까운 사람을 잡아먹는 살아 있는 시체”는 곧 “신자유주의적 개인주의의 궁극적 단계”를 보여준다는 식의 해석(〈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 제22호 ‘좀비 영화의 정치학, 텅 빈 눈으로 응시한 팍스아메리카나’ 중에서).

‘한국형 재난’ 블록버스터의 탄생

그렇다면 〈부산행〉은 어쩌면 이 땅에 너무 늦게 온 좀비 영화일지도 모른다. 우리 사회가 ‘난폭한 자본주의’로 진입한 것은 이미 오래전 일이고, 약육강식과 악다구니의 일상은 어느새 피할 수 없는 삶의 조건이 되어버렸다. 어제의 이웃과 가족을 향해 정색하며 달려드는 오늘의 좀비는 어쩌면 우리 모두의 일그러진 자화상일지도 모른다.

〈부산행〉이 재미있는 마지막 이유는 슬프게도 우리가 이미 ‘부산행 KTX’에 타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발 딛고 선 이 땅 곳곳이 벌써 ‘부산행 KTX’와 다름없기 때문이다. 우리의 삶이 습격당하고 고립되는 재난 앞에서 늘 허둥대는 국가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부산행〉을 본 관객들이 “〈월드워 Z〉인 줄 알았더니 〈괴물〉이더라”는 반응을 보이는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좀비가 야기한 재난이 무서운 게 아니라 그 재난이 증명할 국가의 무능과 무책임과 무대책이 진짜 공포다. 한국형 ‘재난 블록버스터’는 그렇게, ‘한국형 재난’ 블록버스터가 되었다.

〈돼지의 왕〉 〈사이비〉 같은 애니메이션으로 유명한 연상호 감독이 처음 만든 실사 영화 〈부산행〉. 부산행 KTX에 올라탄 좀비가 애초에 어떻게 생겨났는지를 그린 호러 애니메이션 〈서울역〉을 동시에 만들었다. 개봉 순서는 〈부산행〉 먼저. 하지만 이야기의 순서는 〈서울역〉이 먼저다. 〈서울역〉은 8월에 개봉한다.

기자명 김세윤 (영화 칼럼니스트)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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