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전쯤 어느 50대 남성(편의상 그를 ‘ㄱ 선생님’이라고 부르자)에게 무척 흥미로운 ‘칭찬’을 들은 적이 있다. “사실 처음엔 너 페미니스트인 줄 알았는데, 겪어보니 요즘 젊은 여자들과는 다르게 속이 깊더라.”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졌다. “아, 감사합니다만 이걸 어쩌죠. 페미니스트 맞아요, 저.” 어떤 사람의 정신세계를 가장 투명하게 드러내는 것은 ‘어떤 농담을 하는가(무엇을 웃긴다고 여기는가)’이고, 그 다음이 ‘어떻게 칭찬하는가(무엇을 미덕이라 여기는가)’라는 평소의 내 가설을 새삼 떠올린 순간이었다.

감사하게도 ㄱ 선생님은 다른 의도 없이, 나에 대한 긍정적인 소감을 말씀하신 거였다. 그 과정에서 ‘페미니스트=드센 여자’ ‘요즘 젊은 여자=경박한 존재’라는 편견이 노골적으로 드러났을 뿐이다. 그리고 나는 그 말씀이 그즈음 들은 어떤 농담보다도 웃겼다. 일단 또래 여자들을 깎아내리는 방식으로 나를 칭찬했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나는 ‘페미니스트’를 가벼운 욕설 대용으로 쓰는 사람들을 늘 신기한 눈으로 바라본다. 심지어 ‘페미나치’라는 기괴한 단어를 쓰는 이들도 요즘 심심찮게 보이는데, 그들이 ‘페미니스트’는 물론 ‘나치’나 ‘파시즘’의 정확한 의미나 실질적 용례, 2차 세계대전 당시의 상황 등을 한 번도 찾아보지 않았다는 사실에 매번 놀란다(그걸 어떻게 확신하느냐고? 정확한 맥락을 알고 나면 남이 들을까 부끄러워서 도저히 쓸 수 없는 말이니까).

박영희 그림

농담과 칭찬은 고도의 지적 결과물이다. “웃자고 한 소린데 뭘 그렇게 정색하고 그래?” 같은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총무팀 김 부장이 실제로 웃기는 소리를 하는 순간은 아마도 지구 멸망의 그날까지 오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경험으로 안다. “김태희니까 내 지갑에 손대도 예뻐 보이는 거지, 오나미가 내 지갑에 손대잖아요? 저 오나미 얼굴에 손대요”라는 막말이 태연히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나오고, 그럴 때마다 그런 ‘농담’에 웃음을 터트리는 사람과 미간을 찌푸리는 사람들이 홍해처럼 갈린다. 칭찬이랍시고 한 말이 오히려 듣는 이를 불쾌하게 만들거나 애먼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는 경우도 거의 매일 본다. 여배우의 아름다움을 칭찬하는 기사에 “40대 맞아? 아무개 민폐 미모” “애 엄마 맞아? 아무개 극세사 허리” 따위의 제목을 다는 것은 ‘40대나 출산한 적이 있는 여자는 늙고 안 예쁘고 살쪘다’라는 담당 편집자의 편견을 구구절절 고백하는 행위다. “이번에 들어온 신입 말이야, 아주 군기가 바짝 들었던데? 요새 20대들 같지 않게 개념이 있어”라는 말은 “나는 상명하복식 권위주의의 신봉자이자 나보다 연하인 사람들에게 개념 운운하며 꼰대질하는 사람이야”라는 자기고백이다. 얼마 전 〈라디오스타〉에서 김구라는 〈복면가왕〉 녹화 중 눈물을 흘린 신봉선을 가리켜 ‘갱년기라서 그렇다’고 말했는데, 그가 신봉선을 평소 어떻게 대할는지(아무 말이나 막 하겠지), 30대 후반 이상의 여성을 어떤 시선으로 보는지(‘다 늙은 여자’라 보겠지), 육체적·정신적으로 심각한 고통을 겪는 갱년기 여성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왔는지(별 생각도 관심도 없겠지)가 복합적으로 느껴지는 ‘농담’이었다.

한국 정치인들에게 캐머런 총리의 유머를 기대할 수 없는 이유

며칠 전 브렉시트 사태로 총리 자리에서 물러나는 데이비드 캐머런 전 영국 총리의 연설을 동영상으로 보았다. 연설 말미에 그가 말했다. “마지막으로 이 말은 꼭 하고 싶습니다. 한때는 저도 미래였습니다.” 웃음바다가 된 영국 의회의 풍경 아래 ‘한국 정치인들에겐 왜 저런 유머 감각이 없느냐’ 같은 댓글이 줄줄이 붙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농담과 칭찬은 고도의 지적 결과물이다. 그 둘을 ‘제대로’ 하려면 각기 다른 처지를 고려한 화제, 주제, 재치가 있지만 그 누구도 비하하지 않는 표현을 한꺼번에 ‘제대로’ 구사해야 하기 때문이다. 분명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기자명 신윤영 (〈싱글즈〉 피처디렉터)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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