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유전자변형식품(GMO)이 우리 식탁에 오르기 시작한 지 꼭 20년 되는 해다. 그동안 세계의 농업지도는 크게 바뀌었다. GMO 재배면적은 100배나 확대되었다. 전 세계 종자의 35%가 유전자변형(GM) 종자이고, 전 세계에서 생산되는 콩의 79%, 옥수수의 32%, 카놀라(유채)의 24%가 GMO다. 미국은 GMO의 종주국답게 전 세계 모든 GMO의 40%를 생산하고 수출한다. 한국은 GMO를 가장 많이 수입하고 소비하는 나라 중 하나가 되었다. 한·미 양국이 각각 다른 의미에서 명실상부한 ‘GMO 대국’이 된 것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최근 이 두 나라에서 GMO 표시제도가 크게 강화되고 있다.

먼저 한국의 경우를 보자. 우리는 이미 ‘식품위생법’에 GMO 표시를 하라는 규정을 두고 있다. 다만 현행법에서는 식품의 주재료가 GMO일 경우에만 표시를 하도록 하고 있다. 부재료가 GMO일 경우에는 표시하지 않아도 괜찮다. 그런데 이번에 이 규정을 고쳐 GMO 표시 대상을 모든 재료로 확대하기로 했다. 지난 19대 국회의 작품이다.

비록 우리보다 한발 늦긴 했지만, 미국도 마침내 GMO 표시법을 갖게 될 전망이다. 민주당과 공화당이 함께 만든 GMO 표시법안이 7월7일과 14일 상원과 하원을 통과해, 이제 오바마 대통령의 서명만 남은 상태다. 오바마 대통령이 서명하면 이 법안은 미국 전역에서 시행되는 GMO 표시법이 된다.

ⓒAP Photo미국에서 GMO 표시법이 제정됐지만 단번에 정보를 얻기 힘든 QR코드(위)로도 대체 표시가 가능해 교묘한 꼼수라는 비난이 일고 있다. 왼쪽은 ‘비GMO’ 표시 식품.

이렇게 이야기가 ‘한·미 양국 국민의, GMO를 알 권리가 강화되었습니다’라는 결말로 끝나면 참 좋으련만, 아름다운 이야기는 딱 여기까지다. 이제부터는 이 아름다운 이야기 이면에 감춰진, 한·미 양국에서 벌어진 아름답지 않은 진실을 들여다볼 차례다.

미국에서 GMO 표시법 제정에 가장 헌신한 사람은 누구일까? 정답은 ‘몬산토’다. 전 세계 GMO의 90%에 특허권을 가지고, 수많은 GMO를 개발하고 생산·판매하는, 바로 그 몬산토다. 월마트처럼 GMO를 유통하는 기업이나 전미옥수수재배농협회와 같은 GMO 생산자 단체도 이 아름다운 헌신에 함께했다.

몬산토가 GMO 표시법의 제정에 앞장서게 된 사정은 이렇다. 2014년 5월 미국의 버몬트 주에서는 역사적인 법이 하나 만들어졌다. 버몬트 주 안에서는 모든 GMO에 GMO 표시를 꼭 하도록 하는 법이었다. 몬산토는 초조해졌다. 버몬트 주 한 곳이면 모를까, 이미 이 법이 다른 주로 ‘전염’되고 있었다. 메인 주와 코네티컷 주가 GMO 표시법을 도입했고, 다른 주들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몬산토 등은 위헌소송까지 불사해가며 버몬트 주의 법을 막아보려 했지만 모두 실패했다.

켈로그, 제너럴밀스, 캠벨수프 등 미국의 다른 대형 식품회사들은 결국 버몬트 주의 새로운 법에 따르기로 했다. 그러나 몬산토는 단념하지 않았다. 몬산토의 정치후원금을 받는 의원들과 함께 기발한 아이디어를 생각해냈다. 그 아이디어란 바로, ‘전국에서 통일된 GMO 표시를 하도록 하는 법을 만들자. 그러면 버몬트 주의 GMO 표시법은 효력을 잃게 된다. 그리고 그 새로운 법에서는 생산자에게 GMO 표시를 하도록 하되 소비자는 그 GMO 표시를 볼 수 없도록 하자’는 것이었다.

표시를 했는데 그 표시가 보이지 않는다니, 그런 마법이 어떻게 가능할까? 비결은 바로 QR코드에 있었다. QR코드란 바코드처럼 상품 정보를 넣을 수 있는 전자적 표시로, 소비자가 QR코드 안의 상품 정보를 보려면 스마트폰의 앱 따위를 이용해 인터넷에 접속한 후 QR코드를 읽어야 한다. 이 바쁜 세상에서 누가 물건 하나 사는 데 일일이 QR코드를 찍어본단 말인가. 게다가 미국은 한국 같은 인터넷 강국이 아니다.

ⓒAFP2013년 5월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GMO 개발 기업 몬산토에 반대하는 시위가 열렸다.

알 권리 가로막는 몬산토의 ‘어둠의 법’

이 기발한 아이디어가 법안으로 구체화된 것은 버몬트 주의 GMO 표시법 시행일 7월1일을 바로 며칠 앞두고서였다. 최종 법안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미국 전역에서 GMO 표시를 의무화한다(육류 등 제외). 다만, 그 표시는 포장지에 GMO라고 표시하는 방법 외에 QR코드를 부착하는 방법으로도 가능하다.’ 버몬트 주 상원의원인 버니 샌더스를 비롯한 많은 미국인들이 이 법안을 “어둠의 법(DARK Act)”이라며 분노했다. 미국인의 알 권리를 부인하는(DARK:Deny Americans the Right to Know) 법이라는 뜻이다.

한국의 GMO 표시제도는, 국회에서 ‘법’을 통해 GMO 표시제도의 원칙을 정하면, 정부가 그 원칙에 따라 표시 의무자, 표시 대상 및 표시 방법 등 제도 운영에 필요한 구체적 사항을 정해 ‘고시’에 규정하는 방식으로 설계되어 있다. ‘법’은 ‘식품위생법이고, ‘고시’는 ‘유전자변형식품 등의 표시기준’이다.

내년 2월부터 시행될 개정법은 GMO가 주재료에 들어갔든 부재료에 들어갔든 가리지 않고 GMO 표시를 하게 했다. GMO 표시제도가 한 걸음 나아갔다는 점에서 개정법은 긍정적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개정법에는 식용유, 간장, 증류주, 참치통조림 등 수차례 가공해서 GMO의 DNA나 단백질이 남아 있지 않는 식품을 표시 대상에서 제외하는 규정이 새로 들어갔다. 원래 정부의 고시에 있던 규정을 법의 지위로 격상한 것이다. 사실상 GMO 표시제도가 다시 한 걸음 후퇴했다.

ⓒ연합뉴스2013년 6월 서울 광화문광장에 모인 소비자 생활협동조합 아이쿱 회원들이 미국산 GMO 밀 수입 반대 시위를 벌였다.

어쨌든 국회가 법을 개정했으니 정부도 고시 개정을 통해 GMO 표시제도를 다듬을 정당한 기회를 얻게 되었다. 이에 따라 식품의약품안전처는 고시안을 다듬은 후 그 개정 고시안을 4월21일 공개했다. 개정법에서 주재료가 GMO일 경우에만 GMO 표시를 하도록 한 조항이 없어지게 되므로, 개정 고시안에서는 주재료를 “원재료 중 가장 많이 사용한 5가지 원재료”라는 규정이 삭제되었다.

그러나 개정 고시안에서는 GMO 표시를 가로막는 나머지 독소조항들이 그대로 남았다. 전 세계에서 유통되는 18가지 GMO 중 오직 7가지 GMO(콩·옥수수·유채 등)만을 표시 대상으로 하는 규정이나, GMO 혼입 비율이 3% 이하인 식품에는 표시 의무를 면제해주는 규정이 바로 독소조항들이다. 반면, GMO를 식자재로 사용하는 식당도 GMO 표시를 하게 하는 것만큼 GMO 표시를 강화하는 조항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뿐이 아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고시 개정이라는 이 절호의 기회를 결코 허투루 쓰지 않았다. 개정 고시안에, GMO의 표시 대상이 아닌 다른 모든 식품에는 그 식품이 GMO가 아니더라도 non-GMO(비유전자변형식품)와 같은 표시를 할 수 없다는 조항을 슬그머니 집어넣은 것이다. 이 조항에 따르면, 가령 누군가가 GMO가 아닌 국산 콩으로 콩기름을 만들어 non-GMO 표시를 하면 5년 이하의 징역형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게 된다. 사실 식약처는 이미 지난해부터 non-GMO 표시를 단속해왔는데, 이번 기회에 그 법적 근거를 마련하려는 것이다.

GMO 표시제도는 GMO의 안전성과 관련이 깊다. 안전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당연히 GMO 표시에 찬성한다. 반면 안전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GMO 표시에 반대한다. GMO를 표시하게 하면 사람들이 GMO가 나쁜 것이라고 오해한다는 것이다. 심지어 식약처는 non-GMO를 표시하게 내버려두면, non-GMO의 가격이 올라가서 국민 살림이 힘들어진다는 ‘걱정’까지 하고 있다. 그동안 몬산토가 써먹었던 바로 그 논리다.

‘GMO 생산국’ 꿈꾸는 한국 정부

수십 년째 계속되는 GMO 안전성 논쟁은 수그러들기는커녕 오히려 격해지고 있다. 2012년 발표된 프랑스 셀라리니 교수의 논문(쥐에게 몬산토의 GM 옥수수를 2년간 먹였더니 종양 및 장기 손상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연구 결과가 담긴 논문)은 논쟁의 한 획을 그었다. 미국에서는 최근 GM 쌀 ‘골든라이스’의 시장 출시를 앞두고, 국제 환경단체인 그린피스와 노벨상 수상자들이 정면충돌했다. 그린피스가 골든라이스를 비판하는 성명을 내자, 노벨상을 수상한 100명 이상의 과학자들이 그린피스에 ‘사람들을 굶어죽일 작정이냐’며 원색적인 비난을 퍼부은 것이다. 한국에서는 몇 달 전 농촌진흥청이 전주에서 몰래 GM 쌀을 재배하다 그 지역 농민에게 발각되는 사건이 일어났다. 알고 보니 정부는 ‘우리도 미국처럼 GM 쌀을 생산하는 나라가 되자’는 원대한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농민들은 GM 작물 상용화를 반대하고 나섰고, 한 과학자단체는 GMO는 안전하다며 긴급 성명을 냈다.

우리는 아직 GMO가 안전하다는 증거도, 안전하지 않다는 증거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래서 GMO의 안전성에 대한 최종 결론은 유보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국민의 알 권리는 유보될 이유가 없다. 현재 20대 국회에는 농민 출신인 김현권 의원(더불어민주당)이 발의한 ‘식품위생법’ 개정안이 제출돼 있다. 개정안에는 GMO로 만든 식품이라면 GMO DNA나 단백질이 남아 있든 말든 GMO라고 표시해야 한다는 내용과 non-GMO 표시를 민간 자율에 맡긴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기자명 노주희 (변호사·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국제통상위원회)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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