덥다. 그 맛있던 저녁 공기가 이제는 더 이상 맛있게 느껴지지 않는다. 여름은 나에게 위기의 계절이다. 몸에 열이 많아서 인삼도 멀리하는 나에게 매년 여름을 버티는 건 군대의 유격훈련 못지않은 고역이다. 아아, 이럴 땐 정말이지 음악에 에어컨 기능이라도 하나 달려 있으면 어떨까 싶은 심정이 된다. 어쨌든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외출을 삼가고, 방구석에 틀어박혀 음악이나 듣는 일일 것이다.

잠깐 생각을 바꿔봤다. 아니, 왜 음악만 들어야 해? 확장을 시도해본다. 영화를 보면서 음악 듣기를 하면 되겠다. 대신 조건이 있다. 내 영혼의 파트너이자 이 코너를 격주로 쓰고 있는 김세윤씨의 영역을 침범해서는 안 되지 않겠나. 그래서 일부러 이번 주에는 과거 나에게 큰 영감을 줬던 ‘음악 영화’를 소개하려 한다. 바로 저 위대하신 잭 블랙님께서 가히 카리스마적 면모를 선보였던 그 영화 〈사랑도 리콜이 되나요?〉 (2000)다.

영화 〈사랑도 리콜이 되나요?〉(위)는 레코드 가게를 배경으로 한다.

이 영화의 원제는 ‘하이 피델리티(Hi-Fidelity)’다. 우리가 보통 ‘하이파이’라고 부르는 그것 말이다. 자연스레 누군가는 “어떻게 영화의 타이틀을 이렇게 훼손할 수가 있어?”라고 분개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다음과 같은 대답을 던지는 수밖에 없다. “영화를 보면 ‘사랑도 리콜이 되나요?’라는 제목이 꽤나 잘 어울린다고 느끼게 될걸”이라고. 그런데 이 영화에는 소설 원작이 따로 존재한다. 닉 혼비라는 영국 작가가 쓴 소설을 바탕으로 영화를 만들었는데, 다음과 같은 정보를 먼저 알고 보면 훨씬 이해가 빠를 것이다. 닉 혼비가 이른바 ‘음악 덕후’로, 그러니까 영국의 무라카미 하루키 비슷한 존재라는 사실이다.

‘음악 덕후’의 세계를 재치 있게 보여줘

이 영화의 줄거리는 꽤 단순하다. 레코드 가게를 운영하는 주인공 롭 고든(존 쿠삭)이 두 직원 배리(잭 블랙)·딕(토드 루이소)과 함께 일상을 보내면서 마침내 진정한 사랑에 골인하게 된다는 게 전부다. 그런데 이 세 사람에게는 공통점이 하나 있다. 엄청난 음악광이어서, 영화에서도 표현되듯이 ‘역사상 최고의 1번곡 세 곡 대기’ 같은 놀이를 하며 서로에게 비평 아닌 비평을 한다. 그중 압권은 배리가 스티비 원더의 ‘아이 저스트 콜드 투 세이 아이 러브 유(I Just Called To Say I Love You)’를 사러 온 손님에게 “있어도 안 판다”고 하는 장면이다. 이유가 궁금하다고? 직접 영화를 합법적으로 다운받아서 보기 바란다. 오래전에 개봉한 영화인데도, 조금만 얘기하면 스포일러라고 화내는 사람들, 이젠 아주 질려버렸다.

이 지점에서 배우 잭 블랙의 덕후 연기는 가히 인류 역사상 최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주인공 역을 맡은 존 쿠삭보다 더 큰 화제를 모으면서 ‘신 스틸러’급 이상의 활약을 보여줬다. 또한 이 영화는 누군가에게는 지질하게 보일 수도 있을 음악 덕후의 세계를 유머러스하게 담아 ‘음악을 잘 몰라도 낄낄대며 볼 수 있다’는 게 큰 장점이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이게 모두 저 위대하신 잭 블랙님 덕분이라는 걸 기억하자.

〈사랑도 리콜이 되나요?〉에서 가장 중요한 테마는 음악이 곧 일상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이 영화에서의 음악들은 마치 화면 속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듯한 느낌을 준다. 하긴, 덕후의 세계를 그리는데, 그 덕후들이 겨냥하고 있는 대상이 곧 일상이 아닌 것처럼 다가온다면 현실성이 떨어지지 않겠는가.

더위에 지친 그대여, 음악 좀 좋아한다고 자부하는가. 그렇다면 이 영화를 볼 일이다. 음악 애호가를 자처하면서 이 영화를 아직까지 안 봤다면 그건 볼 것도 없이 유죄다. 빨리 보고, 사면받기를 바란다.

기자명 배순탁 (음악평론가∙〈배철수의 음악캠프〉작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