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상조사위원회는 7년에 걸쳐 정부 문서 15만 건을 분석하고, 최고 권력자였던 이를 포함해 120여 명의 증언을 청취했다. 기밀문서 공개 여부를 둘러싼 정부와의 갈등으로 1년간 예정되었던 조사 기간이 7년으로 늘어났고, 사용경비 역시 150억원에 달했다. 조사 결과 발표가 지연되자 여러 불만이 제기되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진상조사위원회가 외부의 강압으로 종료되지도, 일하던 이들이 내쫓기지도 않았다. 정부의 잘못된 정책과 판단은 반드시 평가하고 기록해야 한다는 신념을 그 사회가 공유했기 때문이다. 맞다. 남의 나라 이야기다.

지난 7월7일 영국의 이라크 전쟁 참전 진상조사위원회는 ‘칠콧 보고서’라고 명명된, 12권으로 이루어진 방대한 분량의 보고서를 내놓았다. 치밀한 자료와 증언을 토대로 “영국의 이라크 전쟁 참전은 총체적으로 잘못되었다”라는 결론을 담은 보고서다. 영국은 자신들이 어떤 과정 속에서 이라크 침공이라는 과오를 저질렀는지에 대한 무게감 있는 ‘오답 노트’를 만들었고, 이 ‘오답 노트’는 영국 사회가 이후 새로운 군사적 결정을 하는 데 최우선 지침서가 될 것이다.

브렉시트로 떠들썩한 영국이지만, 자신의 오류를 자인하는 칠콧 보고서를 내놓은 영국 사회의 ‘품격’에 대해서도 세계 언론의 평가가 이어지고 있다. 일본 언론이 대표적인데, 특히 〈아사히 신문〉이나 〈마이니치 신문〉은 영국과 같은 독립적 조사위원회 형태로 이라크 침공을 지지했던 일본 정부의 결정 역시 검증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집단적 자위권이라는 명분하에 미·일 군사행동의 일체화 가능성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이라크에 자위대까지 파견했던 과거 고이즈미 정권의 판단이 미·일 동맹에 편향되어 이루어진 오판은 아니었는지 명확하게 검증할 ‘현재적’ 필요성이 있다는 것이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박영희 그림〈/font〉〈/div〉

한국은 미국과 영국이 주도한 이라크 침공에 연인원 2만173명을 파병했다. 미·영 다음가는 규모였다. 파병하는 것은 전쟁을 지지하는 가장 적극적인 방식이기에, 이라크 침공에 대한 한국의 책임은 명백하다. 이라크 침공의 명분이었던 대량살상무기나 후세인 정권의 테러 지원 의혹은 개전 당시에도 불명확하다는 비판이 다수였다. 유엔 안보리의 결의도, 임박한 위험도 없었다. 그럼에도 한국 정부는 “침략 전쟁을 부인한다”라는 헌법 제5조 제1항까지 무시하면서 태극기를 단 청년들을 이라크로 떠밀었다.

성찰하고 되묻지 않으면 거짓말만 판치게 된다

물어보자. 대한민국은 왜 이라크 전쟁에 파병했는가? 그 파병으로 대한민국이 얻은 것은 무엇인가? 당시 노무현 정부는 이라크 전쟁이 석유를 위한 패권 전쟁이라는 점을 분명히 인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한·미 동맹의 중요성’을 이유로 부정의한 전쟁터에 대한민국 군인을 보냈다. 이라크 파병의 최종 책임을 질 수밖에 없는 노무현 전 대통령조차 “이라크 파병은 옳지 않은 선택으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라고 회고했을 정도다.

그러나 노무현 전 대통령의 탄식조차 사치였다. 전쟁을 주도한 국가들의 성찰과 고백이 이어지고 있음에도 한국 사회는 파병 이후 지금까지 이라크 파병이라는 중대한 군사적 결정에 대해 오답 노트를 만들기는커녕 그게 오답이었는지 치열하게 논의한 바도 없다. 논의도 성찰도 없는 사회에서 이라크 파병은 사드 배치로 반복되는 중이다. 사드 배치는 한·미 동맹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인가? 사드 배치로 우리가 얻고 잃는 것은 무엇인가? 시간과 노력을 들여 오답 노트를 쌓아오지 못한 사회에서 ‘북한의 핵미사일을 막기 위한 사드’라는 거짓말만이 판치고 있다.

기자명 임재성 (평화 연구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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