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부는 지난 6월14일 에너지·환경·교육 분야 기능 조정 방안을 발표했다. 유사·중복 기능 조정, 비핵심 업무 축소, 민간 개방 확대, 민간 경합 축소, 경영 효율화를 기능 조정의 명분으로 내세웠다. 공공기관을 핵심 기능 위주로 재편해 더 나은 공공서비스를 제공하고자 한다는 것이다. 에너지 분야에서는 “전력 판매, 가스 도입·도매, 화력발전 정비 등의 분야에서 민간 개방을 확대하고 8개 에너지 공공기관을 상장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핵심은 경영 효율화를 위해 민간 개방을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과연 공기업의 민간 개방은 효율성을 가져올 수 있을까?

경제학 이론에서 보자면, 공기업은 예산에 대한 압박과 여러 이해당사자가 결정 과정에 참여하는 문제 때문에 비효율성이 초래된다. 민간 기업이 수익 극대화만을 목표로 활동하는 데 비해, 공기업은 환경 보호나 복지 같은 경영 활동 이외의 정치적 목표 또한 추구해야 하기 때문에 자연스레 효율성이 낮아질 수밖에 없다. 비효율성은 생산비용 상승으로 이어지고 최종적으로는 소비자가격 인상으로 나타난다는 것이 비판의 핵심이다.

그러나 최근 독일에서 나온 연구 결과는 그간 우리가 불변의 진리로 믿어왔던 ‘공기업=비효율’이라는 등식이 틀릴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1925년 설립된 독일에서 가장 큰 경제·산업 분야 연구소인 독일경제연구소(DIW)가 지난 5월 에너지 분야에서 활동하는 공기업과 민간 기업의 효율성을 비교 분석한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1998년부터 유럽연합(EU) 차원에서 전력 판매 자유화가 시행되어 소비자들이 전력회사를 자유롭게 선택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동시에 전력산업이 분할되어, 독일에서만 현재 2300여 개 에너지 관련 기업이 영업 중이다. 이 연구소는 전력 판매 분야 65개 공기업과 147개 민간 기업이 2003년부터 2012년까지 영업한 내용과, 배전 분야 공기업 1275개 및 사기업 199개 등 총 1474개 기업이 2008년부터 2012년까지 벌인 활동을 분석했다. 기업의 거래 물동량(전력 판매량 또는 배전량) 대비 생산요소(노동력 및 자본)의 상관관계를 비교한 결과, 독일의 에너지 분야에서 공기업과 민간 기업의 효율성에는 어떠한 차이도 나타나지 않았다.

ⓒ베를린 에너지 원탁회의 제공민영화된 베를린 시의 전기 공급 회사를 재공영화하라고 주장하는 베를린 시민들. 주민투표 유효 수를 채우지 못했지만 재공영화 논의가 시작되었다.

재공영화의 도화선 된 ‘함부르크의 반란’

이 연구에 참여한 아스트리트 쿨만 연구원은 “공기업이 여러 다른 정책적 목표를 동시에 구현하면서도 스스로 효율성을 강화했다. 또 민간 기업도 정부 규정을 준수해야 하기 때문에, 공기업과 민간 기업의 차이가 나타나지 않는다”라고 지적한다. 효율성은 기업의 형태에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시장이라는 경기장에서 공기업이든 민간 기업이든 선수들이 규칙을 잘 지키며 ‘페어플레이’를 하면 기업의 경영 효율은 담보된다는 것이다.

독일에서 전기나 도시가스 등은 인프라 사업이기 때문에 해당 기업은 지자체로부터 20년가량 독점권을 부여받았다. 대부분 공기업 형태로 운영되던 이 사업들은 1990년 통일 이후 민영화되었다. 전문가들이 모인 연구소에서 과학적인 분석 결과를 내놓기 이전에, 민영화의 문제를 체감한 시민들이 먼저 움직였다. 독일 헌법에 해당하는 기본법 제28조는 지자체의 자치행정권에 대해 명시하고 있다. 전기·가스·지역난방 같은 에너지 공급과 상하수도 관리는 지자체의 공공서비스 중 핵심 영역에 속하므로 해당 지자체는 이 서비스 공급자를 스스로 결정할 권리가 있다.

2013년 9월, 독일 국회의원 선거 때 함부르크에서는 ‘에너지 반란’이라 불린 주민투표가 함께 진행되었다. 함부르크 지역의 배전망을 관할하던 함부르크 전기회사(HEW·1894년 설립)가 2000년 스웨덴 기업인 바텐팔(Va ttenfall)에 매각되었는데, 이 전력 배전망을 다시 공영화하자는 일부 시민의 발의가 주민투표로 이어진 것이다. 투표 참가자의 50.9%가 재공영화에 찬성해 함부르크 시는 바텐팔로부터 지분 재매입에 들어갔다. 이듬해 2월 시가 100% 지분을 갖는 함부르크 전력망 회사가 설립됐다.

ⓒStromnetz Hamburg주민투표에 의해 재공영화된 함부르크 전력망 회사의 직원이 배전시설을 점검하고 있다.

‘함부르크의 반란’ 소식이 전해진 뒤 2013년 11월3일에는 베를린 시에서도 같은 내용의 주민투표가 진행되었다. 유럽 최초의 전기 공급 회사로 1884년 설립되어 분단 시절에도 서베를린에 전력 공급을 담당한 베를린 시영 전기회사(BEWAG)는 1993년부터 민간에 지분을 매각했다. 그러다 1997년 말 베를린 시 배전망 운영권 전체를 바텐팔에 넘겨주었다. 베를린 에너지 재공영화 운동을 주도했던 토마스 가스트만은 “민영화 이후 재생에너지 보급과 같은 지역사회에 대한 공헌은 전혀 없고, 바텐팔은 베를린에서 번 돈을 지역사회를 위해 투자하지 않았으며, 의사결정 과정에서 베를린 시민들은 철저히 배제되었다”라며 주민들의 투표 참여를 독려했다. 하지만 주민투표 규정상 공영화를 결정하는 데 필요한 투표수에서 2만1374표가 부족해 근소한 차로 공영화 논의는 폐기되었다. 그러나 유권자들의 재공영화 열기를 베를린 시가 받아들여 시영 에너지 회사인 베를린 에네르기를 설립했고, 지난 3월14일 민영화된 전력망을 100% 재매입하는 제안을 공개적으로 내놓았다.

이 두 대도시뿐만 아니다. 1990년대 유행처럼 번진 민영화의 폐해를 맛본 여러 지자체에서 자체 에너지 회사를 설립하는 재공영화 바람이 불고 있다. 독일 전체적으로 2000년 이후 에너지 분야 공기업 수는 23% 이상 증가해 현재 1100개 이상의 공적 자본이 지역 주민들을 위한 공적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공기업이 비효율적인 조직이었다면 일어날 수 없는 현상이다. 한국의 민영화 맹신자들이 주의 깊게 지켜볼 대목이다.

기자명 베를린·염광희 (싱크탱크 코덱 연구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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