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간 (이 분야의) 변화가 너무 느리게 진행돼왔다. 우리 모두 이 문제에 대해 좀 더 시급하게 생각해야 한다.” 지난 7월7일 저녁 미국 남부 텍사스 주 댈러스 시 도심에서 미카 존슨이라는 흑인이 백인 경찰 5명을 조준 사살하고, 8명을 다치게 한 총격 사건이 터진 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한 말이다. 오바마 대통령이 지적한 ‘변화’는 물론 경찰의 고질적인 과잉대응을 겨냥한 말이다.

지난 7월5일과 7월6일 각각 루이지애나 주와 미네소타 주에서 백인 경찰이 흑인을 총으로 쏴 죽게 했다. 이 뉴스를 접한 뒤 존슨은 백인 경찰을 조준 사살했다. 그의 범행 동기가 드러나면서 경찰의 잔혹한 과잉대응 문제가 다시 한번 미국 사회의 큰 관심사로 떠올랐다.

사실 미국에서 경찰의 과잉대응은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하지만 최근 사태는 경찰의 과잉대응이 어느 수준까지 이르렀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7월6일 미네소타 주에서 발생한 사건을 되짚어보자. 피해자인 필랜도 캐스틸은 저녁 9시께 약혼녀와 네 살배기 딸을 차에 태우고 가다 백인 경찰 2명에게 제지를 받았다. 차의 미등이 고장 났기 때문이다. 경찰 한 명이 그에게 다가와 운전면허증과 신분증을 요구하자 그는 ‘지갑에 있다’고 말했다. 또한 “총기 휴대 면허가 있어서 총 한 자루가 차 안에 있다”라고 먼저 밝혔다. 그때 해당 경찰은 “움직이지 말라”고 소리쳤고, 그가 지갑을 꺼내려 손을 뒤로 하는 순간 경찰은 권총을 발사했다. 당시 운전석 옆 약혼녀는 “내 약혼자가 면허증과 신분증을 꺼내려는데 당신이 총을 네 발이나 쐈다”라고 항의했다. 이 약혼녀는 딸이 보는 앞에서 총에 맞아 피범벅이 돼 죽어가는 남자친구의 모습과 응급처치도 거부한 백인 경찰의 거친 행동과 욕설 등을 휴대전화를 통해 페이스북으로 10분간 생중계했다. 그녀도 곧 수갑이 채워져 경찰에 끌려갔다.

 

ⓒAP Photo7월7일 뉴욕 맨해튼에서 시민들이 경찰의 흑인 총격 사건에 항의하는 집회가 열렸다.


SNS 영상을 지켜본 수많은 미국 시민, 특히 흑인들의 분노는 하늘을 찔렀다. 댈러스 총격 사건의 범인 존슨도 그중 한 사람이었다. 페이스북을 통해 이 참혹한 사건이 알려지자 사건 현장에 시민 200여 명이 몰려나와 경찰의 잔혹한 과잉대응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였다. 민권단체 ‘흑인의 생명도 귀하다’가 주도한 시위는 뉴욕과 시카고를 포함해 여러 대도시로 퍼졌다. 캐스틸이 경찰의 과잉대응으로 사망하기 전날, 루이지애나 주에서도 앨턴 스털링이라는 흑인이 총을 휴대한 채 편의점 앞에서 CD를 팔다 백인 경찰에 사살되었다.

캐스틸, 스털링 두 사건 모두 가해자는 백인 경찰이고, 피해자는 흑인이었다. 그러다 보니 인종 편견에 사로잡힌 백인 경찰이 무고한 흑인을 ‘사냥’하는 게 아니냐는 의혹마저 일었다. 〈워싱턴 포스트〉가 집계한 데이터에 따르면, 2015년 1월1일부터 올해 7월10일까지 경찰 총격으로 사망한 시민은 1502명이다. 백인이 732명, 흑인이 381명이다. 숫자만 보면 백인이 더 희생당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전체 인구 대비로 보면 그림은 달라진다. 미국 인구 중 백인 비중은 62%인 반면 흑인은 13%에 불과하다. 백인 인구가 흑인보다 거의 다섯 배 많다. 하지만 경찰 총격 피살자는 백인이 흑인보다 두 배 많은 정도다. 7월11일자 〈워싱턴 포스트〉는 “흑인이 백인보다 경찰에 의해 피살당할 위험이 2.5배 더 높다는 뜻이다”라고 썼다.

ⓒAP Photo7월12일 댈러스 피격 경찰 추모식에 오바마 대통령·부시 전 대통령(왼쪽 두 번째)이 참석했다.

 

비영리 탐사보도 매체 〈프로퍼블리카〉는 2010~2012년 경찰에 의한 총격 사망 건수 1217건을 분석했다. 그 결과 15~19세 흑인이 경찰 총격으로 죽을 가능성이 같은 또래 백인보다 무려 21배나 높았다. 이 같은 추세는 2014년 8월 18세 흑인 청년 마이클 브라운이 비무장 상태에서 백인 경찰의 총을 맞고 사망해 미국 전역에서 거센 항의 시위가 벌어진 뒤에도 달라지지 않았다. 7월11일자 〈워싱턴 포스트〉를 보면, 비무장 흑인이 경찰 총격으로 사망할 위험은 비무장 백인보다 다섯 배 높다.

결국 오바마 대통령도 2014년 12월 특별대책반을 발족했다. 민권운동가, 지역사회 지도자 및 경찰 등으로 이뤄진 ‘21세기 경찰업무에 관한 대통령 특별대책반’은 2015년 5월 최종 보고서를 통해 경찰이 단독으로 맡아온 순찰업무를 해당 지역사회 자경단과 함께하도록 권고했다. 또한 경찰에 대한 지역사회의 인식 제고 방안을 마련하고, 나아가 체포와 구금 실적이 높은 경찰관에게 부여하던 인센티브를 없애라는 권고안을 냈다.

“미국 건국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문제”

하지만 시사주간지 〈타임〉의 최근 보도에 따르면 올해 5월 말 현재 미국 전역 1만8000개 경찰서 가운데 이런 권고안을 채택한 곳은 15곳에 불과했다. 오바마 대통령의 강한 의지도 오랜 세월 쌓여온 경찰 내 과잉대응 문화를 깨지 못했다. 당시 특별대책반 위원이었던 브리태니 패크닛은 〈타임〉과 인터뷰하면서 “우리가 다루는 문제는 미국의 건국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뿌리 깊은 조직적 인종주의와 핍박이다. 불과 1년 사이에 이걸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비현실적이다”라고 지적했다.

일부에선 민간의 무차별 총기 소유 허용이 경찰의 과잉대응을 부르는 또 다른 원인이라고 지적한다. 허술한 관리로 현재 3억 정이 넘는 총기류가 민간에 난무하는 상황에서 경찰에게만 ‘과잉대응을 자제하라’는 대책은 효과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비정부단체 ‘총기폭력방지연대’는 “경찰의 과잉대응은 민간인과 경찰 간의 끊임없는 무기 경쟁의 산물이다”라고 지적한다.

그럼에도 경찰의 총격 원인을 살펴보면 앞서 특별대책반 위원이었던 패크닛의 지적대로 인종차별적 요인을 무시할 수는 없다. 지난 7월9일자 〈뉴욕 타임스〉가 비영리단체 ‘평등정책센터’의 자료를 인용해 보도한 내용에 따르면, 2010년부터 2015년까지 12개 대도시에서 경찰이 총기 사용을 포함해 1만9000건 무력을 행사했는데, 이때 백인보다 흑인이 타깃이 될 확률이 훨씬 높게 나타났다. 곤봉 구타, 후추 용액 분사 및 총기 사용 등 경찰이 흑인 용의자에게 무력을 행사한 예가 백인 용의자에 비해 3배 이상 높았다.

그렇다면 ‘흑백 내전’의 발단이 된, 경찰의 과잉대응을 시정할 방법은 없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정치권이 경찰의 과잉대응을 원천봉쇄하는 강력한 입법을 도입하지 않는 한 힘들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문제는 전통적으로 총기 규제에 소극적인 공화당이 의회를 장악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번 댈러스 총격 사건으로 미국 사회가 뒤숭숭하지만 의회는 태연하기만 하다. 게다가 의원들은 7월16일부터 7주간 여름휴가에 들어간다. 이번 총격 사건 이후 민주당 하원 지도자인 낸시 펠로시가 공화당 폴 라이언 하원의장에게 총기 폭력을 따지기 위한 특별위원회 구성을 제안했지만 라이언 의장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번 총격 사건은 우리의 형사 정의 체계에 대한 광범위한 도전으로 매년 되풀이되는 인종차별이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라고 말했다. 또 민주당 힐러리 클린턴 대선 후보도 “지역사회와 경찰에 여전히 차별이 숨어 있다”라고 지적했다. 클린턴은 자신이 집권하면 과잉대응의 오명을 벗지 못하고 있는 경찰을 개혁하기 위해 10억 달러를 투입하겠다고 공약했다.

기자명 워싱턴∙정재민 편집위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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