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략적 모호성(strategic ambiguity)’은 흔히 국제정치에서 쓰는 말이다. 명확한 메시지를 내놓지 않거나, 경우에 따라 다른 해석이 가능한 태도를 취해 곤란한 상황을 피하겠다는 전략이다. 미국의 양안(중국과 타이완 관계) 전략이 대표적이다. 외교가에서 주로 사용한 용어가 여의도 정가에서 자주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지난 7월8일 국방부가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배치를 발표하면서부터였다.

새누리당은 찬성, 국민의당과 정의당은 반대라는 선명한 목소리를 내놓았다. 하지만 같은 날 더불어민주당은 사드 배치와 관련한 효용성·안전성·외교 문제를 거론하면서 “실익이 있는 사드 배치라면 반대하지 않는다”라는 의견을 냈다. 조건부 찬성으로 해석되었다. 이날 박광온 더불어민주당 수석대변인은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가 배치 자체는 반대하지 않는다”라고 기자들에게 밝혔다. 논란이 커지자, 곧바로 우상호 원내대표가 “우리 당은 배치 자체도 신중해야 한다는 입장이다”라며 진화에 나섰다.

ⓒ연합뉴스김종인 비대위 대표(왼쪽)를 비롯한 더민주 지도부는 사드 배치에 대해 모호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비둘기파’를 대표하며 대북정책을 펼쳤던 김대중·노무현 정부 계승을 내세운 정당이 사드에 대해 모호한 태도를 취하면서 입길에 올랐다. 국민의당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 등이 ‘야 3당 공조’ 카드를 꺼내며 더불어민주당을 압박했지만, 끝내 당론을 정하지 않았다.

더불어민주당 원내 지도부의 한 의원은 ‘수권’이라는 키워드로 당의 처지를 설명했다. “선명한 것 좋다. 국민의당이나 정의당은 반대 입장을 취하는 게 맞다. 우리 당에도 사드를 찬성하는 의원은 거의 없다. 그럼에도 내년 집권을 준비하는 더불어민주당은 다른 야당과 상황이 다르다. 사드 배치가 정부 정책으로 결정되었다. 게다가 한·미 외교 사안이다. 명시적으로 반대하면, 집권한 다음 한·미 FTA, 제주 강정해군기지와 같이 여당과 야당일 때 입장이 달라졌다는 비판을 받을 것이다. 책임감 없는 자세로는 유권자들에게 표를 달라고 할 수 없다.”

집권이라는 현실론을 들어 설명하면서 이 의원은 마지막에 단서를 달았다. “다만 개별 의원의 의견을 막을 수는 없다.” 이 대목에 더불어민주당의 ‘투 트랙’ 전략이 담겨 있다. 공개적으로 사드 배치 반대를 못 박지 않은 대신, 개별 의원이 반대 의견을 내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의원들의 개별적인 반대로 지지자 달래기 등 효과를 바라는 속내다.

실제로 사드 배치가 발표된 당일 당내 개혁파 의원 모임인 더좋은미래 소속 의원 26명은 재검토를 요구하는 성명을 냈다. 여기에는 우상호 원내대표도 이름을 올렸다. 이 모임 소속의 한 의원은 “반대 성명을 내기 전에 당 지도부와 소통했고, 오히려 지도부에서 독려했다”라고 말했다. 7월13일에는 당내 친김근태계 모임으로 꼽히는 민주평화국민연대(민평련) 소속 의원 17명도 반대 성명을 냈다. 사드 배치 자체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했다. 김부겸 의원, 문재인 전 대표, 박원순 서울시장, 안희정 충남지사와 같은 대선 주자급 정치인도 조금씩 톤은 다르지만 제각각 반대 성명을 냈다.

내분이 일어난 게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 더불어민주당 사드대책위원회 소속 한 관계자는 고개를 저었다. “북한 관련 외교·안보 이슈는 우리에게 불리한 전선이다. 정당이 정책에 대한 입장을 내고 평가받는다는 건 절반만 맞는 이야기다. 이 결정의 주체는 박근혜 정부다. 평가는 박근혜 대통령이 받아야 하는데, 북한발 이슈는 쉽게 우리가 심판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렇기에 전략적 모호성을 취하며 개별 의원의 행동을 막지 않는 수준으로, 저쪽 프레임에 말려들지 않게 대응할 수밖에 없다.”

7월15일 발표된 한국갤럽 7월 2주차 여론조사에 따르면 사드 배치 찬성 50%, 반대 32%였다. 찬성 여론이 더 높았다. 정당 지지자별 여론은 차이가 있었다. 더불어민주당 지지자는 사드 배치 찬성 36%, 반대 50%였다. 새누리당 지지자는 찬성 74%, 반대 12%, 국민의당 지지자는 찬성 47%, 반대 38%, 정의당 지지자는 찬성 27%, 반대 58%였다(표본오차 ±3.1%포인트, 95% 신뢰수준).

지역별 지지를 봐도 사드가 배치되는 성주가 있는 대구·경북(TK)의 여론조차 찬성 55%, 반대 30%로 찬성이 앞선다. TK 지역 의원들도 반발하고 있지만 이들 또한 사드 배치 자체에는 반대하지 않는다.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는 이들을 달래며 “지역구 의원 처지에서는 어려움이 많은 줄 알지만 정부·여당 일원으로서 책임 있는 자세가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으로서는 사드 배치를 두고 ‘집토끼’와 ‘산토끼’ 간극을 확인한 셈이다. 운신의 폭을 정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원내교섭 3당이 합의한 7월19~20일 이틀 동안 국회 본회의 긴급 현안 질문에서도 더불어민주당은 사드 찬반보다는, 절차와 유해성을 집중적으로 제기할 작정이다.

“점수를 벌지는 못해도 잃지도 않는다”

당내 사드 반대파가 다수임에도 ‘사드 찬반 전선 뭉개기’가 유지되는 데는 과거 경험도 한몫 했다. 2012년 대선 당시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유출 논란(NLL 발언 논란), 2016년 총선 당시 개성공단 폐쇄 등은 정부·여당이 주도한 이슈였다. 외교·안보 성격상 정부·여당이 쟁점을 만들기에 더 유리한 데다, 네 차례에 걸친 핵실험 등으로 북한에 대한 여론은 관여(engagement)보다는 봉쇄(containment) 정책을 더 지지하는 쪽으로 나타났다. 결과적으로 참여정부 심판, 햇볕정책 심판 프레임이 힘을 얻었다.

ⓒ연합뉴스박지원 비대위원장(오른쪽 세 번째) 등 국민의당 지도부는 사드 배치 반대와 국회 비준 절차를 요구했다.

나중에 야권은 매번 여당이 주도한 프레임에 말렸다는 평가를 내렸다. 더불어민주당의 한 당직자는 “지난 총선 때 개성공단 폐쇄가 큰 이슈였는데, 김종인 대표가 북한궤멸론을 꺼내들었다. 김 대표 발언을 지지하는 건 아니지만, 그 발언으로 전선이 애매해졌다. 쟁점 형성이 안 되니까 유야무야 넘어가버렸다. 그 이슈로 점수를 벌지는 못했어도 잃지도 않고 넘어간 건 맞다. 2012년 대선 때만 해도 여당 프레임 안에서 치고받았던 걸 생각해보면, 평소 우리 당으로서는 보기 드문 모습이었다”라고 말했다.

현재로선 더불어민주당의 전략적 모호성이 언제까지 유지될지 가늠하기가 쉽지 않다. 8월 전당대회에 출사표를 던진 송영길·추미애 의원은 사드 배치를 반대하며 현 지도부를 강경하게 비판하고 있다. 둘 가운데 누가 당 대표가 되어도 ‘사드 배치 반대’를 당론으로 정할 수 있는 상황이다. 당장 당내 최대 주주인 문재인 전 대표의 사드 재검토론도 당 안에서 얼마나 영향을 미칠지 관건이다. 일각에선 외교·안보와 관련한 문제에서 더불어민주당의 전략적 모호성이 사드 정국 이후에도 계속되리라 보는 관측도 있다. 당장 내년에 대선이 있기 때문이다.

기자명 김은지 기자 다른기사 보기 smil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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