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인류의 절반은 평생 3000일동안 생리를 한다

인스타그램은 이 사진을 두 번이나 지웠다

 

 

“우리는 손에 손을 잡고 생리할 때 제일 좋았던 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요.”

“난 몸이 퉁퉁 붓는 게 제일 좋았어요.”

“달마다 사흘씩 핫팩을 끌어안고 침대에 누워 있는 것도 좋았지.”

“저는 감정 기복이 심했어요. 기분이 아주 즐겁다가도 순식간에 리지 보든 같은 기분이 되곤 했지요.”

“리지 보든이 누구예요?”

“부모를 죽인 여자. 도끼로.”

코니 윌리스의 SF 단편소설 〈여왕마저도〉 (아작, 2016)의 한 대목이다. 소설 속 여성들은 암메네롤이라는 약 덕분에 생리를 하지 않을 수 있게 되었다. 물론 남성들은 암메네롤을 반대했다. 하지만 다른 문제에서는 단결하지 못했던 여성들도 생리를 하지 않을 수 있다는 가능성이 보이자 뭉치기 시작했고, 결국 암메네롤에 대한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받아내는 데 성공한다. 이 과정은 여성 참정권을 얻는 과정처럼 지난했다. “집회와 시위를 조직하고 추방당하고 감옥에 가고 상원의원을 선출시키고 수정 법안을 통과시켰다.”

소설 속 퍼디타는 외친다. “미친 사람이 아니면 도대체 누가 생리를 일부러 하겠어요!” 그렇다. 생리를 ‘일부러’ 하는 여성은 없다. 여성은 한 달 동안 짧게는 사흘, 길게는 일주일 내내 ‘거의 계속’ 피를 흘린다. 사람에 따라 정도는 다르지만 생리전증후군(PMS)과 배란통을 경험한다. 평균 12세에 초경을 시작해 55세에 완경을 한다. 평생 약 500회의 생리를 3000일에 걸쳐 하는데, 이는 일생의 8분의 1에 해당한다. 이를 위해 1인당 1만2000여 개의 생리대가 필요하다.

그러나 한국에서 남성의 면도기는 ‘필수품’인 반면 여성의 생리대는 ‘취향’, 즉 기호품이 된다. 국민안전처에 따르면 그렇다. 국민안전처는 지난 4월 ‘재해구호법 시행규칙’을 입법 예고하며(7월8일 시행) 생리대를 응급구호 세트에서 제외했다. “생리대는 활용도가 낮은 데다 활용 연령대도 제한적이다. 제품 선택 등 개인 취향의 문제가 있고 오래 보관할 경우 변질 가능성이 있어 제외했다”라는 설명이었다. 거센 비판이 일자, 7월5일에야 부랴부랴 개별 구호물품에 생리대를 포함했다. 국민안전처는 설명 자료를 내고 “(생리대가) 응급 세트에서는 제외되지만 필수 지급품인 개별 구호물품으로 전환된다”라고 해명했다.

ⓒ한겨레신문7월3일 서울 인사동에서 ‘#생리대를붙이자’ 캠페인이 진행되었다. 참가자들은 생리대 가격의 인하를 촉구하며 피색 물감을 칠한 생리대를 벽에 붙였다.

6월15일에는 생리대 혐오 발언이 있었다. 광주 광산구의회 박상용 의원은 ‘저소득층 지원 물품에 생리대 추가 건의안’이 상정된 직후 “본희의장에서 생리대라고 말하는 건 적절치 못한 발언이라는 생각이 든다”라고 했다. 듣기 거북하다는 이유였다. 심상정 정의당 대표는 7월4일 박 의원의 발언을 언급하며 “생리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남성 중심 문화와 깊이 관련돼 있다”라고 지적했다.

1984년 글로리아 스타이넘이 쓴 〈남자가 월경을 한다면〉(현실문화연구, 2002)의 질문은 여전히 유효하다. “남자가 월경을 하고 여자는 하지 않게 된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그러면 분명 월경이 부러움의 대상이 되고 자랑거리가 될 것이다. 남자들은 자기가 얼마나 오래 월경을 하며, 생리량이 얼마나 많은지 자랑하며 떠들어댈 것이다. (중략) 의회는 국립월경불순연구소에 연구비를 지원한다. 의사들은 심장마비보다 생리통에 대해 더 많이 연구한다. 연방정부가 생리대를 무료로 배포한다. (중략) 통계자료가 동원되어 월경 중인 남자들이 스포츠에서 더 뛰어난 능력을 발휘한다는 것이 증명된다.”

여성의 생리는 침묵으로 다뤄진다. 검은 봉투에 비밀스럽게 담아주는 생리대를 집으로 들고 와 보이지 않는 곳에 수납하는 동안 여성들은 자연스럽게 생리를 감춰야 할 ‘무엇’으로 인식하게 된다. 이는 사회가 월경을 궁극적으로 재생산에 연관된 것이라고 보는 관점과 연결돼 있다. 이 때문에 월경에 대한 침묵은 성행위에 대한 사회적 관념과 밀접하게 연관된다(〈월경의 정치학〉 동녘, 2015).

이러한 침묵에 대해 ‘균열’을 내려는 움직임도 일어나고 있다. 7월3일 서울 인사동과 SNS에서 벌어진 ‘#생리대를붙이자’ 캠페인이 대표적이다. 한 여성의 제안으로 시작된 이 퍼포먼스는 세계적으로도 비싼 편에 속하는 한국의 생리대 가격을 알리고, 생리를 터부시하는 문화에 반대하는 의미를 담았다. 실제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에 따르면 2010년 이후 펄프나 부직포 등 생리대의 원재료 가격이 많게는 30%가량 떨어졌는데도 가격은 25.6%나 올랐으며, 이는 소비자물가지수 상승폭의 2.4배에 이른다. 이날 인사동에 모인 여성들은 생리대를 빨갛게 칠해 전시했다. 숨겨야 할 일도, 부끄러워해야 할 일도 아닌 당연한 생리 현상에 대한 인식 개선을 요구한 셈이다.

퍼포먼스에 대해 불편하다는 반응이 뒤따랐다. 이런 반응은 30여 년 전과 비교해도 변한 게 없다. 실제 1970년대 생리대 광고는 ‘시청자에게 혐오감이나 악감정을 줄 우려가 있는 광고’로 판단되어 광고 금지 처분을 받았다. 생리대 광고 금지는 1995년에야 해제되었는데, 1996년에는 〈동아일보〉에 생리대 광고를 둘러싼 찬반 토론이 게재되기도 했다. 반대 의견의 주된 이유는 “밥맛 달아난다”였다.

“어떤 피도 우리를 멈춰 세울 수는 없다”

한국의 생리대 퍼포먼스는 외국 사례에 비추면 ‘온건한’ 편에 속한다. 영국과 프랑스, 파키스탄에서는 실제 생리혈을 이용한 시위가 벌어진다. 2015년 8월9일 런던 마라톤 대회에 참석한 뮤지션 키란 간디는 생리대를 착용하지 않은 채 마라톤을 완주했다. 1년간 훈련한 대회를 생리 때문에 놓칠 수 없던 그녀에게는 생리대를 하고 뛰거나, 그냥 피를 흘리거나 두 가지 선택지가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두 번째를 선택했다. 간디는 자신의 블로그에 이렇게 적었다.

ⓒAFP생리대와 탐폰의 세금을 인하하라는 시위를 펼치고 있는 프랑스 여성들.

“여성과 남성 모두 생리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행동하도록 사회화되었다는 생각을 했다. 생리를 수치스러운 것으로 생각하게 함으로써, 세계 인구 50%가 매달 공유하는 경험을 통해 유대할 수 있는 기회를 효과적으로 막고 있다. 볼 수 없다면 대수롭지 않은 일인 것으로 간주된다. 이것이 왜 중요한 이슈냐고? 지금 바로 이 순간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6월2일 영국의 ‘보디폼(Bodyform)’이 유튜브에 공개한 광고는 붉은 피를 전면적으로 등장시키며 전통적인 생리대 광고 공식을 깨버렸다. 광고에는 모델의 편안한 미소나 흰 바지, 생리대 위로 쏟아지는 파란 물감 따위는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달리기·권투 등 다양한 스포츠를 즐기는 여성들의 모습이 나온다. 이들의 손과 발, 얼굴에 피가 흐르지만 끝까지 운동을 멈추지 않는다. 광고는 “어떤 피도 우리를 멈춰 세울 수 없다(No blood should hold us back)”로 끝난다.

‘무상 생리대’ 논의 본격적으로 시작할 때

보디폼은 자사 트위터 계정을 통해 “생리 중 운동이 좋지 못한 영향을 준다는 고정관념은 생리에 대한 부정적 인식과 부정적 느낌을 키워 여성들의 활동을 막아버릴 수 있다”라고 말했다. 위스퍼 역시 2014년부터 여자들의 자신감이 사춘기에 급격히 떨어지는 것에 착안해 ‘#LikeAGirl’ 캠페인을 진행해왔다. 올해부터는 한국에서도 여성 운동선수들을 등장시켜 ‘#여자답게 멈추지마’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미국 뉴욕 시의회는 지난 6월 만장일치로 공립학교·교도소·노숙자 보호소 등에 생리대와 탐폰 등을 무료로 제공하기로 했다. 해당 법안을 발의한 율리사 페레라스 코프랜드 의원은 생리대를 휴지 같은 필수품이라고 강조했다. 케냐에서도 2011년 저소득층 여학생에게 생리대를 무상 지급한 것을 시작으로 2014년에는 ‘생리의 날’을 지정했고(5월28일), 2015년에는 국가 차원의 계획을 수립해 여성의 생리를 기본권의 문제로 접근하고 있다. 조티 상게라 유엔 경제사회문제 인권사무소장은 지난해 5월 각국 정부에 생리 및 위생 관련 대책 마련을 촉구하기도 했다. 저소득층 청소년의 ‘깔창 생리대’ 사연이 언론을 도배하는 한국에서는 언제쯤 ‘무상 생리대’ 논의를 시작할 수 있을까.

기자명 장일호 기자 다른기사 보기 ilhostyl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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