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제1대 부통령이자 제2대 대통령인 존 애덤스는 ‘그 직무’에 대해 “인간이 창조한 직업 가운데 가장 별 볼 일 없다”라고 비아냥댔다. 미국 연방 상원 웹사이트는 ‘그 직무’를 “연방정부 내에서 가장 큰 조롱거리이고 가장 자주 무시당하는 헌법상 직책”이라 기술하고 있다. 바로 미국의 부통령직을 두고 하는 이야기들이다.  

하지만 미국에서도 이런 부통령 자리가 세간의 관심을 부쩍 끄는 시기가 있다. 올해처럼 대선 시즌이 돌아오면 그렇다. 민주·공화 양당이 대선 후보를 선출하는 전당대회가 7월 말로 바짝 다가온 가운데 양당의 러닝메이트로 누가 선정될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어떤 기준으로 러닝메이트를 선택할 것인가는, 전적으로 대통령 후보의 마음에 달려 있다. 후보 경선 과정이 치열했다면 당의 단합과 화합을 위한 사람을 고르는 경우가 많다. 여성이나 흑인 등 특정 유권자 계층의 지지를 겨냥해 뽑을 수도 있다. 대다수 주민이 부동층인 주의 표심을 끌어들이기 위해 그 지역 출신을 선택하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대통령 후보 자신이 국정 수행을 하는 데 도움이 될 사람을 고르는 경우도 있다. 2000년 조지 W. 부시 공화당 후보가 의회 및 안보 경험 부족을 보완하기 위해 딕 체니를 선택한 것이 단적인 예다.

다만 러닝메이트가 실제 득표에 긍정적 영향을 크게 미치기는 힘들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캘리포니아 대학 버나드 그로프먼 교수와 뉴욕 대학의 루빈 클라인 교수가 1968년 이후 2008년까지 대선 관련 자료를 조사한 결과, 러닝메이트가 자당 후보의 대선 득표율을 올린 정도는 고작 1%에 그쳤다고 한다. 하지만 러닝메이트 선택이 잘못되면 엄청난 손해를 볼 수 있다. 2008년 대선 당시 공화당 존 매케인 후보의 경우, 무명의 알래스카 주지사였던 극우 정치인 세라 페일린을 러닝메이트로 골랐다가 크게 낭패를 당했다.

ⓒAP Photo트럼프의 러닝메이트로 거론되는 조니 언스트 미국 연방 상원의원은 이라크 참전 용사 출신이다.

그렇다면 공화당의 대선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와 민주당 대선 후보 힐러리 클린턴의 러닝메이트는 누가 될까? 트럼프는 자신의 러닝메이트 선정 기준으로 ‘의회 및 국정 경험이 풍부한 사람’을 제시했다. 클린턴과 달리 트럼프는 의회나 중앙정치 무대에서 활동한 경험이 없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트럼프 행정부’에서는 부통령이 중요한 구실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관측한다.

트럼프 측 러닝메이트 인선 작업은 공화당의 베테랑 정치 참모인 폴 매너포트가 실무팀장을 맡고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1976년 이후 공화당 대선 후보의 러닝메이트 인선 작업을 도와온 아서 컬버하우스 변호사가 총괄 사령탑이다. 여기에 트럼프의 장녀 이방카의 남편 재러드 쿠시너까지 관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거론 중인 트럼프의 러닝메이트 가운데 가장 주목되는 인물은 조니 언스트 연방 상원의원(아이오와 주)이다. 초선인 언스트 의원은 여성으로서는 드물게 주 방위군 예비역 중령에 이라크 참전 용사라는 이색 경력을 갖고 있다. 그래서 외교와 국가안보 분야 경험이 전무한 트럼프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 관측된다. 하지만 언스트 의원 역시 트럼프와 마찬가지로 이렇다 할 국정 경험이 있지는 않다.

부동층 유권자가 많은 인디애나 주의 마이크 펜스 주지사도 유력 후보로 꼽힌다. 인디애나 주의 경우, 2008년 대선에서는 민주당 오바마 후보가 어렵게 이겼으나 2012년에는 공화당 후보 밋 롬니가 승리했다. 블루칼라 유권자들이 많다. 그래서 펜스를 러닝메이트로 삼으면 동요하는 민심을 트럼프 쪽으로 끌어올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펜스 주지사는 동성애자 권리 등 일부 민감한 현안에서 민주당 노선을 지지해온 터라 보수 유권자로부터 외면당할 수 있다는 게 약점이다.

ⓒAP Photo엘리자베스 워런 연방 상원의원(왼쪽)은 힐러리의 러닝메이트로 꼽힌다.

뉴저지 주지사 크리스 크리스티도 유력 부통령 후보다. 그는 대통령 후보 경선에 나섰다가 지난 2월 중도 하차한 뒤 일찌감치 트럼프를 지지했다. 주 하원 의정생활을 거쳐 지사에 오른 만큼 행정 경험이 풍부하다는 게 이점이다. 미국 정계의 거물인 뉴트 깅리치도 공화당 러닝메이트 물망에 오르고 있다. 깅리치는 20년 이상 의정생활을 했고, 1990년대에는 공화당 하원의장까지 맡았다. 의회 경험이 전무한 트럼프에게는 적격이다. 하지만 그는 1998년 의회 중간선거에서 대패한 뒤 불명예 속에 정계를 은퇴했다.

공화당 먼저 정하면 민주당이 대항마 결정할 듯

트럼프보다 훨씬 가용 자원이 많은 민주당 힐러리 클린턴 후보는 어떨까? 그녀는 과거 국무장관 재직 당시 개인 서버로 기밀 문건을 주고받은 혐의로 연방수사국(FBI)의 수사를 받아왔다. 그러나 최근 FBI가 형사책임을 묻지 않기로 방침을 정하면서 그녀의 대선 가도는 물론이고 러닝메이트 선정에도 탄력이 붙은 상황이다. 공화당 전당대회가 민주당보다 먼저 열려 트럼프의 선택을 고려해서 러닝메이트를 선정할 수 있다.

민주당의 러닝메이트 인선 작업은, 힐러리 클린턴의 남편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을 비롯해 유세 본부장인 존 포데스타, 유세 현장 책임자인 로비 무크, 전직 참모 세릴 밀스, 고위 정책보조관 제이크 설리번, 베테랑 변호사인 제임스 해밀턴 등 최측근이 맡고 있다.

최근 클린턴의 러닝메이트로 가장 주목되는 사람은 엘리자베스 워런 연방 상원의원. 그는 클린턴의 대선 후보 경쟁 상대인 버니 샌더스 후보에 버금가는 급진적 진보 성향 정치인이다. 따라서 그가 러닝메이트로 나서면 샌더스 지지자들을 상당수 흡수할 수 있는 데다 미국 역사상 최초로 대선 후보와 부통령 후보가 모두 여성이라는 기록도 세우게 된다.

팀 케인 버지니아 주 연방 상원의원도 워런 못지않게 강력한 후보다. 버지니아 주지사와 시장을 두루 거친 케인은 워런과 달리 온건 중도파에 속한다. 그는 최근까지 7개 주를 돌아다니며 ‘트럼프 공격수’로 나섰고, 탄탄한 의정과 행정 경험 때문에 클린턴의 러닝메이트로 안성맞춤이란 평이다. 흠이라면 과거 버지니아 주지사 재직 시 위법은 아니지만 16만 달러 이상을 정치적 ‘선물’로 받은 적이 있는데 이것이 트럼프 진영의 공격 빌미가 될 수 있다.

클린턴이 부동층 주를 의식한다면 오하이오 주 연방 상원의원 셰러드 브라운이 적임자다. 그는 블루칼라 유권자들의 원망 대상인 자유무역협정(FTA)에 반대 기치를 든 상태여서 오하이오는 물론 펜실베이니아 같은 부동층 주에서도 클린턴의 득표에 도움을 줄 수 있으리라 보인다. 흑인과 히스패닉계 등 특정 유권자층을 염두에 두고 물망에 오른 사람도 있다. 토머스 페레즈 노동장관, 코리 부커 뉴저지 주지사, 줄리언 카스트로 주택·도시개발 장관 등이 주인공이다. 이 가운데 카스트로 장관은 올해 41세로 멕시코 이민 가정에서 태어나 역경을 딛고 성공한 정치인으로 꼽힌다. 그가 러닝메이트가 되면 히스패닉 유권자가 큰 비중을 차지하는 플로리다·네바다·콜로라도 주에서 클린턴의 득표에 도움이 되리라 기대된다.

국무장관에 상원의원까지 지낸 클린턴은 부동층 주 혹은 특정 유권자층을 겨냥해 러닝메이트를 선택할 가능성이 크다고 관측된다. 반면 트럼프는 의정과 국정 경험을 우선하겠다고 했지만, 지금까지 보인 돌출 언행을 감안하면 막판에 의외의 인물을 선택할 수도 있으리라 보인다.

기자명 워싱턴∙정재민 편집위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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