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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의 테러 수출, 동쪽으로 한걸음 더


금수저 엘리트들은 왜 테러범이 되었나

 
 
 

7월1일(현지 시각) 방글라데시 수도 다카 한복판에서 인질극이 벌어졌다. 밤 9시30분 다카 외교가의 고급 레스토랑인 ‘홀리 아티잔 베이커리’에 무장괴한들이 들이닥쳤다. 이들은 ‘알라후 아크바르(신은 위대하다)’라고 외치며 총을 난사했다. 미처 대피하지 못한 30여 명이 인질로 잡혔고 현지 경찰과 대치했다.

현지 언론사 〈더 데일리 스타〉에서 기자로 일하는 초드리(가명·32)는 그날 집에서 쉬다가 속보를 들었다. 급히 현장으로 달려가던 그는 ‘누가 인질극을 벌이는지’가 가장 궁금했다. 이것이 취재 포인트였다. 그는 금세 테러리스트들의 정체를 짐작했다. 초드리 기자는 “인질극이 벌어진 장소가 외국인이 많이 가는 홀리 아티잔 베이커리였다. 금요일 밤인 데다 라마단(금식월) 단식 중이라 사람들이 붐볐다. 금요일 밤 외국인을 노리는 것이 이슬람국가(IS) 조직원들의 주된 수법이다”라고 말했다. 인질극은 무려 10시간 가까이 계속되었다.

인질극이 한창일 때 IS의 선전 매체인 ‘아마크 뉴스 통신(Amaq News Agency)’에 범인들의 얼굴이 공개되었다. 해맑은 얼굴로 웃고 있는 범인들은 모두 6명이었다. 초드리 기자는 “범인들이 IS와 관련되었다는 결정적인 증거다. 범인의 얼굴과 범인들이 인질극 현장에서 피와 시신이 낭자한 현장 사진을 IS에게 직접 전송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AP Photo테러범들이 인질극을 벌이고 있는 방글라데시 다카의 음식점 주변에 군인들과 장갑차량이 출동해 있다. 특공대가 투입된 구출 작전은 10시간이 걸렸다.

인질극이 길어지자 다음 날 오전 7시40분께 정부 특공대가 레스토랑으로 진입했다. 30여 분간 총격전이 벌어졌다. 용의자 6명 전원이 사살된 뒤 공개된 인질들 상황은 참혹했다. 이탈리아인 9명과 일본인 7명 등 민간인 20명이 사망했다. 구출된 인질은 13명이다. IS는 이번 테러를 자신들의 소행이라고 공식적으로 주장하고 나섰다.

사실 이라크나 시리아와 달리 방글라데시는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이나 IS 무장세력의 활약이 두드러진 나라가 아니었다. 세계 테러 전문가들이 이번 테러를 두고 다소 의아해했던 대목이다. 그렇다면 방글라데시는 IS의 거점 지역도 아닌데 왜 이런 대형 테러가 벌어졌을까? 2년 전부터 미국을 비롯한 연합군이 시리아 내 IS 거점을 중심으로 공중 폭격을 가했다. 시리아에 있던 IS 지도부는 물론 IS 조직원들이 연합군 폭격을 피해 국경을 넘어 다른 나라로 이동했다. IS 조직원들의 이동은 자연스럽게 테러 지역의 확대를 가져왔다.

시리아 인근 국가인 터키에서 지난 6월28일(현지 시각) 발생한 이스탄불 아타튀르크 국제공항 테러도 이 때문이다. 또한 지난해 11월 파리 테러나 지난 3월 벨기에 브뤼셀 자벤템 국제공항 테러 역시 IS 조직원들이 이동하면서 테러가 유럽 중심부로 확산된 것으로 분석된다. 여기에 방글라데시처럼 극단주의 이슬람 세력이 거의 활동하지 않은 곳까지 IS의 테러 대상이 되었다는 점은 IS가 세계 곳곳으로 퍼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또 이번 테러에는 IS 특유의 수법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지난 7월2일 〈뉴욕 타임스〉가 보도한 생존자 증언에 따르면, 범인들은 현지인보다 외국인들에 대한 증오가 심했다고 한다. 생존자 중 한 명은 “그곳에는 많은 외국인이 있었다. 이번 테러에서 IS가 특정한 대상이 누구였는지를 보여준다. 무장괴한들은 외국인들을 무참히 살해했지만 음식점의 현지 종업원들에게는 매우 정중한 태도를 보였다”라고 전했다. 또 “범인들이 ‘외국인들이 노출이 심한 의상을 입고 술을 마시는 등 현지인에게 영향을 주면서 이슬람 문화를 해치고 있다’고 말했다”라는 증언도 나왔다.

외국인을 노리는 테러는 IS의 전형적인 수법이다. IS는 외국인 여성의 노출 옷차림을 테러 명분으로 삼는다. 또 외국인 남녀가 자유롭게 모이는 곳을 테러 장소로 정하고 성 소수자 등도 테러 대상으로 꼽는다. 하지만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외국인을 테러할 경우 현지인보다 훨씬 더 전 세계 언론사가 많이, 비중 있게 보도하기 때문이다. 일종의 선전 효과를 노린 것이다. 그래서 IS는 지난해 11월 파리 테러 때처럼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장소에서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테러를 벌인다. 이슬람권 국가에서도 가급적이면 외국인들이 가장 많이 모이는 곳에서 테러를 일삼는다. 〈더 데일리 스타〉 초드리 기자는 “이번 테러는 외국인을 노린 IS의 테러가 거의 확실하며 앞으로도 이런 형태의 테러는 또 일어날 것이다”라고 말했다.

방글라데시 정부는 테러에 당혹스러워했다. 방글라데시에는 일본계 패션 브랜드 유니클로 공장을 비롯해 여러 브랜드 생산 공장이 있다. 방글라데시는 세계 2위의 의류 생산 국가다. 이번 테러에서 이탈리아 희생자가 많은 이유도 의류 도매업을 하는 이탈리아인이 많았기 때문이다. 이탈리아 ‘안사 통신’ 보도에 따르면, 생존자인 이탈리아 남성 잔니 보스케티도 25년 전부터 다카에 머물며 의류 도매업을 하고 있었다.

방글라데시 정부는 IS 소행 아니라고 부정

IS 테러는 의류 산업의 메카로 통하는 방글라데시에 치명타이다. 외국 자본이 투자된 국가 산업 자체가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방글라데시 정부는 이번 인질 테러가 IS 소행이 아니라고 강하게 부정했다. 아사두자만 칸 방글라데시 내무장관은 AFP 통신과 기자회견에서 “테러범들은 방글라데시에서 10년 넘게 활동이 금지된 단체인 ‘자마에툴 무자헤딘 방글라데시(JMB)’ 소속으로 IS와 관련이 없다”라고 밝혔다. JMB는 방글라데시 내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다. IS나 알카에다가 자국에 거점을 두었을 가능성에 대해서도 방글라데시 정부는 부인했다. 즉, 이번 테러는 범인들도 자국인이며 자국 내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테러라는 점을 공식적으로 강조했다. 방글라데시 내무부의 한 관리는 “정부 안에서 이번 사건이 IS 테러라고 발표하는 순간 다카에 있는 국제적인 의류 산업이 끝날 수 있다는 위기감이 크다”라고 귀띔했다.

ⓒAFP이번에 방글라데시 다카에서 인질극을 벌인 테러범들은 중산층 집안에서 태어난 엘리트 출신이었다.

하지만 이미 IS의 선전 매체가 방글라데시 테러를 벌인 범인들의 얼굴과 신상을 공개했다. 이에 방글라데시 정부는 IS가 이번 테러를 자신들의 선전 수단으로 이용하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미국 〈월스트리트 저널〉은 이 사진이 남아시아에 있는 무장세력이 시리아·이라크에 있는 IS 조직원들과 소통했다는 증거라고 해석했다. 국제사회는 이번 사건을 방글라데시 안에서 IS의 활동이 본격화된 것이라 보고 있다.

방글라데시에서는 IS 테러에 대한 징후가 여러 차례 있었다. 지난 5월 방글라데시 경찰은 다카에서 IS 모집책으로 활동한 아미눌 이슬람 바이그와 그의 동료 사키브 빈 카말을 체포했다. 경찰은 이들이 IS를 위해 싸울 젊은 조직원 모집에 나서 20명을 선발했다고 밝혔다. 앞서 4월에는 방글라데시 북서부 라지샤히의 라지샤히 대학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레자울 카림 시디크 교수가 출근 도중 살해당하기도 했다. 이날 IS는 ‘아마크 뉴스 통신’을 통해 “그(시디크 교수)가 무신론을 주장해 우리 전사들이 살해했다”라고 주장했다. 이 밖에도 힌두교 사제나 이슬람 극단주의를 비판한 블로거가 잔인하게 살해되는 등 IS의 활동이 조금씩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었다.

미국 외교 전문지 〈포린 폴리시〉는 지난 3월 ‘방글라데시의 IS’라는 보도를 냈다. 이 보도에 따르면, 지난해 이후 방글라데시 현지 무장단체가 IS의 사상·강령 등에 세뇌되어 일으킨 이른바 ‘동조 테러’가 크게 늘었다. 〈포린 폴리시〉는 “정부가 현지 테러단체에만 신경을 써온 틈을 타 IS가 서서히 자리 잡을 수 있었다. 셰이크 하시나 총리는 아직 IS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으며 이런 주장을 야당의 정치공세로 보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다카 인질 테러 사건의 수습이 채 끝나기 전에 또 다른 테러가 방글라데시에서 발생했다. 7월7일(현지 시각) 오전 9시30분께 다카 북동쪽 117㎞ 지점의 키쇼레간지  ‘아짐 우딘’ 고등학교 앞 검문소에서 신원이 밝혀지지 않은 이들이 폭탄을 던졌다. 이 사건으로 경찰관 2명이 숨지는 등 10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폭탄이 터진 곳에서 1㎞ 정도 떨어진 광장에는 이슬람 단식 성월 라마단 종료를 알리는 ‘이드 알피트르’ 축제를 맞아 수십만명이 모여 있었다.

기자명 김영미 국제문제 전문 편집위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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