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마단’이 핏빛으로 얼룩졌다. 이슬람국가(IS)는 테러를 라마단 기간에 집중시키며 이슬람의 성스러운 전통을 극적으로 비틀었다. 이슬람 달력으로 9월인 라마단(올해는 6월6일부터 7월5일) 기간에 무슬림은 금욕 생활을 통해 자신을 정화하고 신에 헌신하는 전통이 있다. IS는 이교도를 죽이는 것이야말로 신에 헌신하는 길이라는 논리를 세계의 급진주의 무슬림에게 퍼뜨렸다.

크고 작은 테러가 세계를 연타했다(IS의 테러 수출, 동쪽으로 한걸음 더 기사 참조). 예멘 무칼라의 자살 차량 폭탄 테러(42명 사망. 6월27일), 터키 아타튀르크 국제공항 테러(44명 사망. 6월28일), 방글라데시 다카 식당 테러(22명 사망. 7월1일), 이라크 바그다드 차량 폭탄 테러(292명 사망. 7월3일) 등 초대형 테러가 줄을 이었다. 미국 역사상 최악의 총기난사 사건이었던 올랜도 게이클럽 참사(49명 사망. 6월12일)도 ‘IS가 영감을 준 자생적 테러’로 분류하기도 한다. 요르단·레바논·사우디아라비아·쿠웨이트·프랑스·리비아도 라마단 기간 중에 테러를 경험했다.

테러의 대량생산·아웃소싱 체제를 구축한 IS

IS는 지금까지 어떤 테러 조직도 도달하지 못한 ‘테러의 대량생산 체제’를 구축했다. 기존 테러와 비교해 IS표 테러는 대체로 더 잦고, 더 비용이 싸고, 더 많이 죽고, 외부 자원자에 더 의존한다. 그래서 덜 상징적이고 덜 계획적이다. 거의 모든 특징이 2001년 9·11 테러와는 정반대다. 알카에다의 9·11 테러는 ‘제국의 심장부’ 뉴욕 세계무역센터를 노려 타격했고, 서구 유학파 엘리트에게 비행조종술까지 가르쳐가며 정성 들여 기획한 결과였다.

ⓒAFP 7월3일(현지 시각) 자살폭탄 테러가 발생한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 상업지구 카라다에서 어린이들이 희생자들을 애도하며 촛불을 밝히고 있다. 이 폭탄 테러로 292명이 사망했다.

IS는 무슬림 세계 전체에 ‘영감’을 불어넣어 자발적인 테러리스트가 등장하도록 이끄는 전략을 즐겨 쓴다. 올해 라마단을 앞두고 IS는 특유의 선전 능력을 동원해 테러를 부추겼다. 이 전략에서 세계의 동시 다발 테러는 IS 자신조차 발생 장소와 시점을 예상하기 쉽지 않은 고삐 풀린 사건의 다발이다. 테러 다발을 받아든 IS는 입맛에 따라 ‘IS 상표’를 붙여 선전한다. 미국 올랜도 총기난사 사건 직후 IS는 범인 오마르 마틴을 “IS의 사자”라고 부르며, 서구 무슬림의 자생적 테러를 독려하는 홍보 영상을 유포했다. 이렇게 해서 테러는 일종의 ‘OEM(주문자 상표 부착 생산방식)’ 제품이 된다. 올해 라마단 동안 IS는 테러 아웃소싱 체제의 능력을 끔찍한 방식으로 과시했다. 우리 시대의 테러는 과거보다 더 예측하기 힘든 안보 위협이 되었다.

테러의 대량생산·아웃소싱 체제는 왜 IS 시대에 와서야 본격 등장했을까. 알카에다 시절까지만 해도 없거나 성숙하지 않았던 몇 가지 조건이 무르익은 덕을 IS가 보았다고 분석가들은 지적한다. 이들은 우선 유튜브 등 인터넷 동영상 매체와 트위터·페이스북 등 SNS의 확산을 중요한 요소로 꼽는다. 사막 한구석에서 생산한 선전 메시지가 전 세계로 확산될 길이 열렸다. 각국의 잠재적 급진주의 무슬림들은 IS표 테러를 통해 이들을 인지하고, 이후 유튜브와 페이스북으로 메시지를 받아보면서 동화되는 과정을 거쳤다.

수용자가 메시지에 귀를 기울여줄 준비가 되어 있는지도 중요했다. 서구 세계에는 차별받고 기회가 부족해 좌절한 무슬림 이민 2세가 누적되고 있었고, 아랍 세계에서도 부패한 왕정이나 독재 권력에 대한 염증이 두텁게 쌓였다. 여기에 기름을 부은 것이 이라크 전쟁과 ‘아랍의 봄’ 이후 이슬람 세계에서 폭발한 종파 갈등이었다. 이라크에서는 수니파인 사담 후세인 정권이 무너지고 시아파 정권이 들어서는 등 일련의 과정에서 종파 갈등이 고조되었다. 2011년 ‘아랍의 봄’ 이후 내전 상태로 들어간 시리아도 종파 갈등이 격해졌다. 수니파 테러집단 IS는 이라크와 시리아에서 종파 갈등을 토양 삼아 뿌리를 내렸다.

테러 대량생산 체제가 자유롭게 작동하려면 테러를 억제하려 드는 권력의 공백도 필요했다. 2011년 ‘아랍의 봄’이 퍼즐을 풀어주었다. 기존 정권을 무너뜨리는 데는 성공했지만 제대로 작동하는 새 권력을 세우는 데 실패한 여러 지역에서 권력 공백 상태가 등장했다. 이라크는 서방 군대의 철수로, 시리아는 내전 발발로 힘의 공백이 발생한 대표적인 지역이다.

마지막으로 전문가들이 강조하는 중요한 차이가 있다. IS는 결정적인 지점에서 알카에다 같은 이전 세대 테러집단과 다르다. 알카에다가 은밀한 점조직 형태의 ‘손에 잡히지 않는’ 테러집단이었던 반면, IS는 ‘국가’ 그러니까 ‘건국’을 목표로 한다. 영토와 국민과 주권을 가진 국가가 되려는 테러집단. 이 독특한 정체성이 IS를 규정하고, 이 차이가 테러 전략의 형태에도 영향을 끼친다.

‘칼리프 국가’를 재건하려는 테러집단

이탈리아의 언론인이자 테러 전문가인 로레타 나폴레오니는 기존 테러 조직과 IS의 결정적 차이점을 ‘I(이슬람)’가 아니라 ‘S(국가)’에서 찾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책 〈이슬람 불사조〉에서 나폴레오니는, IS가 수니파 이슬람의 통일국가인 칼리프 국가를 현실에서 추구하며, 이것이 칼리프 국가를 그저 먼 미래의 이상으로 제시했던 알카에다와의 결정적인 차이라고 썼다. IS는 2014년 6월 ‘칼리프 국가’ 출범을 선언했다.

국가의 3요소라고 불리는 국민·영토·주권을 기준으로 보면 IS는, 원론적 정의에 들어맞지는 않지만 외견상 영토와 국민을 갖추고 있다. 징세 능력도 보유해서, 800만명가량의 ‘국민’에게 걷는 세금이 총수입의 20~25%에 달한다고 알려져 있다. 국제사회에서 주권을 인정받을 가능성은 없지만, IS 지도부는 권력의 원천이 국제사회의 승인이 아니라 신에서 온다고 믿는다.

이처럼 국가의 기본 얼개를 갖추었지만 핵심 기능이 빠진 IS와 같은 형태를 나폴레오니는 ‘의사국가’라고 정의했다. 의사국가는 징세나 치안 등 일부 기능을 수행하며 국가의 외피를 두른다. 하지만 피통치자의 자발적 동의에 의한 권력이라는 대원칙이 지켜지지 않고, 지속 가능한 경제 시스템 대신 밀수나 약탈과 같은 전시경제에 의존한다. 이런 의사국가에서 세금이란 자발적 동의에 의한 것이 아니라 조직폭력배가 보호를 명목으로 뜯어가는 ‘보호세’에 가깝다.

의사국가는 가만히 두어서는 지속 가능한 시스템이 아니어서, 끊임없는 전시상태 유지와 새로운 병력의 유입이 필요하다. 페달을 밟지 않는 순간 쓰러져버리는 자전거와 비슷한데, IS에게 테러는 중요한 ‘자전거 페달’이다. 대량생산된 테러의 선전 효과는 IS에 대규모로 신참을 공급한다. 지금까지 IS로 자원해 들어간 외국인 조직원이 3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점조직 알카에다에게는 이런 대규모 신참 공급이 필요하지도 않았고 수용할 방법도 마땅치 않았다. 하지만 의사국가 IS는 손에 잡히는 영토와 접근 가능한 진입로를 갖고 있다. 나폴레오니는 “IS에게는 테러리즘이 영토와 주권을 확보하는 국가 건설의 수단이다”라고 썼다.

ⓒAP Photo 이슬람국가(IS) 병력이 도요타 트럭을 이용해 이동하는 장면. 2014년 IS는 자신들이 촬영한 이 사진을 유포하며 조직 홍보에 활용했다.

IS가 칼리프 국가 건설을 추구한다는 사실 자체가 선전 효과를 내기도 한다. 중동 문제 전문가인 인남식 교수(국립외교원)는 이렇게 말했다. “현실에 큰 불만을 품은 청년들에게 당장 월급도 주고 결혼도 시켜주겠다는 실질적인 보상도 제시하면서, 거기에 더해 칼리프 국가라는 영광을 제안한다. 찬란했던 7세기 이슬람 세계를 21세기로 끌어당겨서 현실에 재현하겠다고, 상상을 현실로 만들어주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미래를 기약하는 점조직 테러집단보다 현실의 영광을 제시한 의사국가 IS가 좌절한 청년 다수에게 더 매력 있어 보였다.

게다가 국가는 점조직보다 수행할 수 있는 일이 많다. 사담 후세인 정권의 주축이었던 수니파 관료 엘리트 그룹이 IS와 결합해 있다. 확보한 유전에서 원유를 정유까지 해서 밀매하고, 교육과 사회보장 체계를 단시간에 도입했다. 국가를 추구한다는 독특한 정체성은 IS에게 다른 테러집단과는 구분되는 능력과 후광을 부여했다. 덕분에 IS의 테러 독려 메시지는 더 널리 퍼지고 더 깊이 파고든다. 테러의 아웃소싱·대량생산 체제는 이렇게 완성된다.

IS에게 테러는 자전거 페달 밟기

그러나 IS는 나폴레오니가 말한 의사국가의 한계를 벗어나기 힘든 운명이다. 이 신정체제는 국민의 자발적 동의에 의한 통치라는 대전제를 수용할 가능성이 없고, 세금을 가장한 약탈이나 석유 밀매 없이 시스템을 유지할 가능성도 사실상 없다. 이런 약탈적 전시경제 체제는 장기적으로 체제 내 자원을 고갈시키고 주민의 지지를 잃게 된다.

칼리프 국가 출범 선언 2년을 맞은 IS는 테러의 대량생산이라는 자전거 페달을 부지런히 밟는 한편으로, 수니파 학살을 주도했던 시리아의 아사드 정권이라는 ‘외부의 적’에 기대어 와해를 막아내고 있다. 아사드 정권 역시 IS 덕에 국제사회로부터 수니파 학살의 책임 추궁을 면제받은 셈이어서 적대적 공생 관계가 형성되어 있다. 인남식 교수는 이 기묘한 공생 관계를 이렇게 논평했다. “아사드 정권이 유지되는 한 시리아 일대의 수니파들은 IS의 공포정치마저 감수하려 들 것이므로 IS 문제를 해결하기 쉽지 않다. 하지만 아사드 정권 제거는 시리아의 체제 공백을 누군가 감당해야 한다는 뜻이므로 서구 국가들도 선뜻 선택하기 힘들다는 딜레마가 있다.”

국가의 꿈은 IS에게 또 다른 딜레마도 안겼다. 알카에다와 같은 점조직 테러집단이 서구 국가를 상대할 때 누렸던 큰 전략적 이점은, 손에 잡히는 실체가 없어서 전쟁과 같은 고전적인 방식으로는 응징 자체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점조직은 국가를 때릴 수 있지만 국가는 점조직을 때리기 어려운 ‘비대칭 전쟁’은 테러집단의 무기다. 하지만 IS가 국가라는 목표를 추구하고 ‘영토’를 확보하게 되면서, 서구 국가에게 골칫거리이던 비대칭성이 완화되었다. 적어도 공습 목표가 어디인지를 두고도 정보가 없어 헤매는 상황은 줄어들었다.

지속적인 공습으로 시리아와 이라크 일대 IS의 세력권은 상당히 위축된 것으로 평가받는다. 대규모로 영토를 잃었던 5월의 전투 이후로 IS의 대변인 아부 무하마드 알아다니는 “IS는 영토를 지키는 싸움을 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IS가 영토전쟁에서 패배를 거듭하자 게릴라전과 같은 좀 더 전통적인 테러리스트 전략으로 돌아가면서 ‘국가의 꿈’에서 후퇴하고 있다고 7월6일 보도했다.

국가의 꿈은 테러집단 IS에게 더 많은 후광과 능력과 지원병의 물결을 안겨다 주었다. 하지만 동시에 비대칭 전쟁이라는 테러집단 최고의 전략적 이점을 제한했다. 국내외 분석가들이 우려하는 대목은, 이렇게 해서 궁지에 몰린 IS가 앞으로 선택할 대안이 ‘더 부지런한 테러’일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그 자체로 지속 가능하지 않은 시스템에 올라탄 IS는 무너지지 않으려고 더 빨리 페달을 밟으려 할 것이다.

기자명 천관율 기자 다른기사 보기 yul@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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