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10일 일본 참의원 선거에서 자민당을 비롯한 개헌지지 세력이 승리했다. 참의원 선거는 3년마다 정원의 절반, 그러니까 전체 242석 중 121석을 새로 뽑는 방식으로 이뤄지며 7월10일에 선출된다. 일본 의회는 중의원·참의원으로 나뉜 양원제다. 참의원 선거만으로 집권당 교체 같은 큰 정치적 변화가 일어나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번 선거는 다르다. 이번 선거 결과에 따라 헌법 개정이 이뤄질 수 있기 때문이다.

몇 년 전부터 이번 참의원 선거가 끝나면 헌법 개정 논의가 본격화할 것이라는 예측이 있었는데, 어느새 기정사실이 되어버렸다. 2006년 1차 내각 때부터 임기 중 헌법 개정 의지를 거듭 밝혀온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2015년 2월4일, 2016년 7월 참의원 선거 후 헌법 개정안 발의는 ‘상식’이라고 말했다. 올해 들어 1월4일 연두 기자회견에서부터 개헌을 위해 “참의원 선거에서 국민들의 이해를 높이겠다”라며 적극적으로 개헌 의지를 표명했다. 임기가 2018년 6월까지인 아베 총리가 개헌을 하겠다는 말은 이번 참의원 선거에서 이기고, 헌법 개정안을 발의한 뒤 국민투표에 부치겠다는 의미다.

ⓒAP Photo6월22일 일본 참의원 선거전이 시작된 날 지지자들과 만난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환히 웃고 있다.

정부·여당과 개헌 세력이 개헌안을 발의하기 위해서는 양원 모두 3분의 2 이상 지지를 얻어야 한다. 중의원에서는 집권당인 자민당과 연립 여당인 공명당이 이미 3분의 2가 넘는 의석을 차지하고 있다. 개헌 찬성 의원이 참의원 242석 중 3분의 2, 즉 162석만 확보하면 개헌안을 발의할 수 있다. 현재 자민당이 65석, 공명당이 11석, 그 외 개헌 세력인 ‘오사카 유신회’와 ‘일본의 마음을 소중히 여기는 당’이 8석을 확보하고 있다. 이들이 이번에 새로이 선출되는 121석 중 78석을 차지하면 개헌안 발의 의원 수가 확보된다.

아베 총리는 개헌안 발의 최소 조건인 78석은 함구한 채, 목표 의석을 과반선인 61석으로 내세우고 있다. 2007년 7월 1차 아베 내각의 몰락을 불러온 참의원 선거에서 자민당은 37석을 얻은 바 있다. 자민당 역사에 남을 참패였지만, 그 와중에도 37석은 지켜냈다. 이번 참의원 선거 공지가 나고 이틀밖에 안 된 6월24일, 〈산케이 신문〉과 〈닛케이 신문〉 등은 자민당의 과반 차지는 물론 개헌 가능 의석 확보도 가능하다고 예상했다.

그런데 막상 선거전에 돌입하자 아베 총리는 헌법 개정의 ‘ㅎ’자도 꺼내지 않고, ‘최대 테마는 경제정책’이라며 아베노믹스의 성과를 내세워 유세 중이다. 공명당의 야마구치 나쓰오(山口那津男) 대표도 헌법 개정을 선거 쟁점으로 삼지 않겠다고 밝혔다. 여당은 개헌 관련 여론을 최대한 자극하지 않으면서 표로 이어지기 쉬운 사회보장 정책이나 경기·고용 대책을 선거 쟁점으로 몰아가며 정치 안정을 앞세우고 있다. 개헌 저지, 평화헌법 9조를 지키기 위한 야권의 결집을 차단하면서 유권자의 시선을 다른 데로 돌리겠다는 전략이다. 26쪽에 달하는 자민당의 공약집 중 개헌 관련 공약은 맨 마지막에 몇 줄 들어가 있을 뿐이다. 개헌을 공약 첫머리에 내걸었다가 대패해 결국 퇴진까지 하게 된 2007년 7월 참의원 선거의 기억 때문일 것이다. 아베 총리는 2014년 12월 총선거 승리 후 2015년 9월 안전보장 관련 법안 제·개정을 강행한 것처럼, 아베노믹스로 이번 선거를 돌파한 후 유권자들의 신임을 얻었다며 개헌을 밀어붙일 작정이다.

‘일본회의 국회의원 간담회’가 개헌의 핵심

하지만 여전히 일본 국민들의 개헌 반대 정서는 강하다. 지난 5월3일 헌법기념일 70주년을 앞두고 각 신문사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50% 이상이 개헌에 반대했다. 〈아사히 신문〉 조사의 경우 개헌 반대가 지난해 48%에서 올해 55%로 늘었다. 그리고 헌법 9조 개정과 세트라고 할 수 있는 안전보장 관련 법안 폐지 데모가 지금도 여전히 전국 각지에서 벌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도 아베 정권이 여론을 신경 쓰지 않고 헌법 개정까지 거침없이 내달릴 수 있는 이유는 자민당 내 견제 세력이나 반대 세력이 몰락했기 때문이다. 자민당은 극우화했고, 자민당에 대한 특정 극우 정치세력의 영향력은 증대됐다. 이를 확인하려면 극우 성향 의원 모임의 자민당 의원 수를 보면 된다. ‘일본회의 국회의원 간담회(중의원 186명, 참의원 61명)’ ‘신도(神道)정치연맹 국회의원 간담회(중의원 237명, 참의원 83명)’ ‘다함께 야스쿠니를 참배하는 국회의원 모임(중의원 223명, 참의원 82명)’ ‘창생 일본(중의원 68명, 참의원 61명)’ 등이 문제의 의원 모임이다. 이들 모임에는 물론 다른 당 의원들도 있지만, 자민당 의원이 압도적 다수를 이룬다.

ⓒAP Photo일본 해상자위대 호위함 ‘무라사메’호의 휘날리는 욱일기 앞에 해상자위대 대원들이 모여 있다.

아베 내각의 각료들 사정은 더 심각하다. 2015년 10월7일 개각을 거쳐 새로 출발한 현 아베 내각의 각료 20명(아베 총리 포함) 중 공명당 소속 국토교통성 대신(장관)을 제외한 19명이 이 모임들 소속이다. ‘일본회의 국회의원 간담회’ 소속이 13명, ‘다함께 야스쿠니를 참배하는 국회의원 모임’ 소속이 16명, ‘신도(神道)정치연맹 국회의원 간담회’ 소속이 18명, ‘창생 일본’ 소속 의원이 10명이다. 대신들만이 아니다. 현 아베 총리의 보좌관 3명 모두 이들 모임 중 어딘가에 속해 있다. 내각관방은 2명 모두, 부대신 25명 중 20명, 대신정무관 27명 중 23명이 극우 성향 모임에 중복 소속되어 있다. 1차, 2차 내각은 물론이고 2014년 9월 발족한 제2차 개각 내각이나 그해 12월24일 탄생한 3차 아베 내각 때도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 모임들 중에서도 가장 큰 힘을 발휘하는 것이 281명의 현역 중·참의원이 속해 있는 ‘일본회의 국회의원 간담회’다. 그래서 지금 일본에서는 이 간담회의 본산 격인 민간 우익단체 ‘일본회의’가 눈길을 끈다. 이번 선거를 앞두고 지난 5월부터 일본회의를 분석하는 서적 네 권(〈일본회의 연구〉 〈일본회의란 무엇인가-헌법 개정으로 질주하는 컬트조직〉 〈일본회의의 전모-알려지지 않은 거대조직의 실태〉 〈일본회의와 신사본청〉)이 출판되었고, 7월에 두 권이 더 나올 예정이다. 그간 별 관심을 기울이지 않던 일본 국내 언론도 2015년부터 일본회의의 정체를 파헤치며 경종을 울리고 있다. 이 책들과 기사에 따르면 아베 내각은 ‘일본회의’ 내각이다. 일본회의 회장은 자민당 국회의원, 간사장은 총리보좌관, 사무국장은 내각관방 부장관이며 아베 총리는 특별고문이다.

일본회의의 제1목표이자 염원이 바로 헌법 개정이다. 극우 세력이 헌법 개정으로 대동단결을 한 셈이다. 2015년 9월 아베 총리가 안보법 제·개정을 강행 처리하고 40일 뒤, ‘헌법 개정 1000만명 찬동자 확대 서명’ 운동을 대대적으로 전개한 것도 일본회의다. 이 운동의 주체는 ‘아름다운 일본의 헌법을 만드는 국민모임’이지만, 이 단체는 2014년 10월에 일본회의가 만들었다. 일본회의는 아베 총리와 발맞추어 국민투표에서 헌법 개정 과반수 찬성을 위한 국민운동을 벌이고 있다.

기자명 도쿄∙이령경 편집위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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