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 스토리


‘EU 탈퇴’라 쓰고 ‘이민 반대’라고 읽는다

해가 진 영국 ‘증오 프로젝트’에 기대다

영국 총리 후보로 꼽히는 인종차별주의자

‘EU 탈퇴’ 세계 금융공황 올까

트럼프와 브렉시트는 쌍둥이?

 

역사가들은 2016년을 세계의 엘리트들이 ‘분노한 투표자’에게 연전연패했던 한 해로 기록할지 모른다. 미국의 거의 모든 엘리트들은 도널드 트럼프가 공화당 대선 후보가 되리라고 상상하지 못했다.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 투표 당일까지도 세계의 증권·외환 시장은 영국의 유럽연합(EU) 잔류에 베팅했다. 하지만 대서양을 사이에 둔 두 나라의 분노한 대중은 정치·경제 엘리트의 예측을 비웃듯 반(反)자유무역과 반(反)이민 깃발에 표를 몰아줬다.

미국에서 트럼프의 핵심 지지층은 저학력·저소득 백인이다. 이들은 미국의 정치 블록 중에서 반자유무역 정서가 단연 단호하다. 자유무역이 미국에 손해라고 믿는 이는 전체 유권자 중 43%인 반면, 트럼프 지지자 중에서는 67%나 된다. 자유무역의 단호한 수호자를 자처했던 공화당 엘리트들은, 분노한 유권자들이 몰려와 “중국산 제품에 관세 45%를 물리자”고 말하는 후보를 대선 주자로 밀어올리는 풍경을 넋 놓고 지켜봐야 했다. 반이민 정서도 단연 눈에 띈다. 이민자가 미국의 힘이라기보다는 짐이라고 생각하는 이는 전체 유권자 중 35%이지만, 트럼프 지지자 중에서는 69%이다(〈시사IN〉 제453호 ‘트럼프 밀어올린 분노의 정치’ 기사 참조).

이런 패턴은 영국의 브렉시트 지지층에서도 그대로 발견된다. 브렉시트를 만들어낸 유권자는 저학력·저소득·고연령층이 많고, 반이민 정서를 공유하며, 런던 이외의 잉글랜드 지역에 거주하는 유권자이다(런던과 스코틀랜드와 북아일랜드는 EU 잔류 지지가 우세했다). 영국의 유력지 〈가디언〉은 선거구별로 브렉시트 찬반 결과와 교육 수준, 소득, 연령 등의 관계를 집계했다. 그 결과 교육 수준과 소득이 높은 지역일수록 EU 잔류 지지세가 뚜렷이 높았다. 반대로 연령이 높은 지역일수록 EU 탈퇴 지지세가 뜨거웠다.

ⓒAFP영국 브리스톨의 한 빌딩 벽면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왼쪽)와 보리스 존슨 영국 의원이 키스를 하는 모습을 묘사하는 벽화가 그려져 있다.

브렉시트 찬성파의 대국민 선전전은 이민 반대를 전면에 내세웠고, 탈퇴를 가장 선명하게 주장한 극우 정당인 영국독립당은 반이민 정책이 당의 기본 노선이다. 이민 문제가 영국이 직면한 주요 문제라는 응답은 2014년 가을 조사에서 9%에 불과했으나 2015년 가을 조사에서는 61%로 급증했다.

한때 소수 극우파의 주장으로 치부됐던 반자유무역과 반이민 노선이 어떻게 해서 다수 유권자, 그중에서도 특히 저학력·저소득·고연령 유권자에게 매력 있는 대안으로 떠올랐을까. 전문가들은 세계화 시대가 지구 전체의 부를 늘려주었지만, 선진국 중하층의 지갑을 상대적으로 가볍게 했다고 지적한다. 홍춘욱 키움증권 이코노미스트는 6월24일자 글로벌 이슈 보고서 ‘트럼프 열풍과 브렉시트 사태의 공통점’에서 반자유무역·반이민 블록의 상승을 다뤘다.

보고서는 크리스토프 랭커와 브랑코 밀라노비치의 2013년 논문을 인용하는데, 핵심 내용은 이렇다. 냉전 기간 선진국 시민은 선진국에서 태어났다는 ‘출생의 행운’만으로도 개발도상국의 상류층보다 월등히 나은 삶을 꾸릴 수 있었다. 하지만 베를린 장벽 붕괴와 냉전 종식 이후, 자유무역이 고도화되고 특히 이민이 활발해진다. 이제 경쟁이 세계 단위로 벌어지게 되면서, 개발도상국의 상류층과 중산층의 소득은 빠르게 늘어난 반면 선진국 중하층의 소득은 정체 상태에 빠졌다.

불평등 심화는 세계화에 역습을 가한다

랭커와 밀라노비치는 전 세계인을 소득순으로 한 줄로 세워 ‘글로벌 소득분포’를 그렸다. 이렇게 하면 선진국 최하층 시민의 경우 글로벌 소득분포에서 대략 20% 언저리에 자리 잡는다고 한다. 즉, 제1세계의 빈곤층도 개도국의 중산층보다 잘산다. 그런 후 두 연구자는 베를린 장벽이 붕괴한 1989년부터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진 2008년까지의 소득증가율을 계산했다. 그 결과가 위의 〈표〉이다. 선진국의 상류층(글로벌 소득분포 5% 이내)과 개발도상국의 중상층(글로벌 소득분포 40~50%)은 이 기간에 크게 소득이 늘어났다. 반면 1세계 중하층이 위치한 상위 20% 언저리의 소득증가율은 사실상 제자리걸음을 했다.

이 결과는 세계화 이후의 세계가 우리가 알던 방식으로 불평등해진 것은 아니라고 말해준다. 글로벌 중간층의 소득증가율은 상위 1%에 뒤지지 않았다. 하지만 ‘1세계 내의 불평등’과 ‘개도국 내의 불평등’은 크게 증가했다. 그리고 1세계의 중하층은 자신이 살아가는 나라의 불평등 증가를 몸으로 체감하게 되었다. 상품과 노동의 자유로운 이동은 1세계의 중하층을 특히 소외시켰고, 세계화로부터 손해를 봤다고 느끼는 저학력·저소득층이 이제 반자유무역·반이민 블록으로 결집하고 있다. 트럼프 현상과 브렉시트 쇼크는 대서양을 사이에 둔 쌍둥이인 셈이다.

20세기 역사를 돌아보면 이런 흐름은 낯설지 않다. 경제학자 대니 로드릭(하버드 대학 케네디스쿨)은 3월에 발표한 ‘분노의 정치’라는 글에서 거대한 패턴이 반복되고 있다고 썼다. 로드릭이 ‘첫 번째 세계화 시대’라고 부른 20세기 초반의 세계화 역시 소외된 기층의 파멸적인 반동, 공산주의와 파시즘을 불렀다. 이 ‘첫 번째 분노의 정치’는 인류사 최악의 전쟁인 제2차 세계대전을 낳았다. 2차 대전 이후 서구는 이 교훈을 바탕으로 세계화의 속도를 제어하고, 복지 시스템으로 분노의 정치를 예방했다. 하지만 고삐는 다시 풀려버렸고, 이제 다시 분노의 정치가 돌아오는 중이라고 로드릭은 썼다.

역사가 주는 교훈은 꽤 분명하다. ‘고삐 풀린 세계화’와 ‘심화되는 불평등’과 ‘민주주의’ 셋의 조합은 지속 가능하지 않았다. 고삐 풀린 세계화가 불평등을 심화시키면, 소외된 대중은 민주주의를 통해 세계화에 역습을 가한다. 20세기에 이 역습은 때로 민주주의 자체를 잡아먹는 자해적인 극단으로까지 나아갔다. 그 결과 세계화도 극적인 후퇴를 겪어야 했다. 21세기에 돌아온 ‘두 번째 분노의 정치’는 투철한 민주주의자라고 보기는 힘든 정치인들을 국가 지도자로 밀어올리려 하고 있다.

2016년 대서양 양쪽에서 동시에 벌어지는 풍경은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1세계가 민주주의 이외의 정치 시스템을 상상하기 힘든 현대 사회에서, 불평등은 직접적인 희생자들만 괴롭히는 데서 멈추지 않고 결국 상품과 노동과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을 위협하는 부메랑이 되고 있다.

기자명 천관율 기자 다른기사 보기 yul@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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