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 스토리


‘EU 탈퇴’라 쓰고 ‘이민 반대’라고 읽는다

해가 진 영국 ‘증오 프로젝트’에 기대다

영국 총리 후보로 꼽히는 인종차별주의자

‘EU 탈퇴’ 세계 금융공황 올까

트럼프와 브렉시트는 쌍둥이?

 

6월23일 국민투표에서 영국인들은 브렉시트(Brexit:영국의 EU 탈퇴)를 선택했다. 이날 투표를 둘러싸고 영국의 여러 정치 세력들은 각자의 꿈과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치열하게 싸워왔다. 사실상의 ‘좌우 합작’도 서슴지 않았다. ‘EU 잔류’ 진영엔 좌우가 섞여 있었다. ‘탈퇴’ 진영도 마찬가지였다. 다만 최후에 웃은 자는 ‘탈퇴’ 진영의 극우파들이다. 영국의 6·23 국민투표에서 ‘극우 인종주의’가 승리했다.

이렇게 정치세력들이 얽히고설킨 이유는, 국민투표의 대상인 EU가 워낙 복잡한 성격의 조직이기 때문이다. EU(European Union)를 직역하면 ‘유럽 연합’, 독립적 국가들이 유럽 외부의 국가들과 맞서기 위해 ‘연합’했다는 인상을 준다. 그러나 EU는 단순한 연합체가 아니라 유럽 대륙 차원의 정부를 목표로 하는 조직이다. 개별 국가들의 ‘독립성’을 일정 정도 침해할 수밖에 없다. 노동권에서 기업, 산업정책, 환경규제, 이민정책 등에 이르는 광범위한 영역에서 회원국들에게 동일한 규범을 부과하고 강제한다. 영국의 경우, ‘최근 제정된 법률 중 60% 정도가 영국 의회가 아니라 EU 집행위원회에서 나올’ 정도였다. 개별 국가 차원에서 이 같은 EU의 권한은 ‘내정간섭’ 혹은 ‘자주성 침해’로 해석될 수 있다.

유럽의 공동 정부를 지향해온 EU의 이념적 성향은 어땠을까? 좌파 사회주의로 평가되기도 하고 우파 신자유주의로 불리기도 한다. EU는 유서 깊은 유럽 사회주의 운동의 성취를 어느 정도 계승했다. 노동시간, 출산휴가 등 노동권 부문에서 특히 그렇다. 동성애자·장애인·이주노동자 등 마이너리티에 대해서도 개방적 정책을 시행해왔다. 이에 대해 유럽 좌파들은 ‘빈틈이 많고, 사회주의 운동이 거둔 성과를 오히려 퇴행시켰다’고 비판한다. 반면 ‘탈퇴’ 진영의 극우파들은 ‘EU가 영국에 강제하는 규제를 철폐하면 경제성장률이 크게 높아진다’라는 주장을 브렉시트의 명분으로 삼았다.

좌파 중에서도 ‘EU 탈퇴’ 세력 있었다

그러나 EU가 기본적으로 ‘자유 시장주의’를 견지하고 있다는 것엔 논란의 여지가 없다. EU의 이념적 주춧돌이라고 할 수 있는 TFEU(유럽연합 기능에 관한 조약)는 “상품·노동·서비스·자본 등이 자유롭게 이동하는 단일 시장”을 설립 목표로 규정하고 있다. 사실상 회원국 정부의 자율적인 산업정책을 금지하는 조치다. 전략산업 육성이나 유치산업 보호 등 산업정책은, 자원의 자유로운 이동을 억제하고 경쟁을 왜곡하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특히 EU 내에서도 유로화를 사용하는 국가(영국은 자국 통화인 파운드화를 포기하지 않았다)들은 금리나 통화가치 조절 같은 평범한 정책수단마저 포기해야 한다. 또한 EU는 공공지출의 규모를 엄격하게 제한해서, 정부지출을 핵심 수단으로 하는 서유럽 사회민주주의 전통을 단절시켰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 EU 회원국들은 연간 재정적자를 GDP의 3% 이하로 유지해야 한다(정부 누적부채는 GDP의 60% 이하로 유지해야 한다).

영국 노동당 대표인 제러미 코빈은 집권하면 민영화된 철도 시설을 다시 국유화하겠다고 공약한 바 있다. 중앙은행이 시중은행을 통해서가 아니라 곧바로 민간경제에 유동성을 투입하는 ‘민중에 대한 양적완화’를 추진하겠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그러나 EU의 각종 규범에 따르면, 영국 정부는 철도 시설 재국유화나 민중에 대한 양적완화를 추진해서는 안 된다. 이처럼 회원국 정부가 자국 시민들을 위한 정책을 시행할 수 없을 지경이니, 영국처럼 역사적으로 유럽 대륙과 일정한 거리를 견지해온 나라에서 EU 탈퇴가 강력하게 제기된 것은, 사실 이상한 일이 아니다. 1990년대 이후 회원국들에서 나타난 빈곤화와 불평등 심화에 EU의 책임이 없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AFP〈/font〉〈/div〉잔류를 주장했던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는 ‘EU 탈퇴’로 국민투표 결과가 나오자 투표 결과에 책임을 지고 10월에 사임하겠다고 발표했다.

6·23 국민투표에서 EU에 대한 영국 정치 세력들의 주장은 대충 4가지로 나누어진다. 잔류 진영의 좌우파와 탈퇴 진영의 좌우파다.

‘잔류 우파’의 대표자는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보수당)다. 이 외에 보수당 의원 가운데 절반과 노동당 중도파 등이 잔류 우파에 속한다. 이들은 지금의 EU 시스템에 대체로 긍정적인 편이다. 특히 캐머런 총리는 브렉시트를 저지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지난 2월에는 유럽 정상회의에서 다른 회원국 지도자들을 설득해서 ‘브렉시트를 저지하기 위한 EU 개혁 방안’을 타결시켰다. 영국 내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복지급여를 줄이고, EU 법안의 영국 적용을 일부 차단하는 등의 내용이었다. 6·23 국민투표는 결국 ‘영국을 위한 이 정도의 개선안이 나왔는데도 EU에서 탈퇴할 것인가’를 묻는 행사였다. 결국 캐머런은 실패하고 말았다.

제러미 코빈 대표 등 노동당 좌파, 자유민주당, 녹색당 등은 ‘잔류 좌파’로 분류될 수 있다. 이들은 ‘잔류 우파’와 달리 EU에 굉장히 비판적이다. 노동당 좌파의 청년 조직인 ‘전환 네트워크(Transform Network)’는, EU를 “노동자와 공공 서비스의 희생으로 대기업 및 초부유층의 이익을 수호하는 조직”으로 규정한다. 그러나 EU 탈퇴로 문제를 해결할 순 없다고 본다. 결국 잔류 좌파의 대안은 다른 회원국의 시민들과 연대해서 EU를 ‘밑으로부터 변혁’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영국 옥스퍼드 대학 에드 룩스비 교수(정치학)는, 진보 성향 매체인 〈자코뱅〉에 기고한 글에서 “밑으로부터의 EU 변혁은 환상일 뿐이다”라고 일축한다. 실제로 EU는 조직 구조는 물론 노선 역시 변화시키기 어려운 조직이다. EU 시스템에서 가장 강력한 기구는 EU 집행위원회다. EU 차원의 정책을 개발, 집행하는 행정부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집행위원회는 사실상의 입법기구이기도 하다. 각종 EU 법안의 초안을 만들고 입법 과정을 개시하는 것이 집행위원회의 권한이다. 만약 집행위원회가 선출직으로 구성된다면 대중운동을 통한 ‘정권교체’가 가능할 수 있다. 그러나 집행위원은 회원국 정부에 의해 지명되는 임명직이다. 시민들이 직접 선출하는 유럽 의회는 제대로 된 입법권은 물론 집행위원회를 견제할 권한도 갖고 있지 않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AP Photo〈/font〉〈/div〉‘EU 탈퇴’ 국민투표가 있기 전 런던에서 브렉시트 반대 유세를 하는 제러미 코빈 노동당 대표(왼쪽)와 사디크 칸 런던 시장. 칸 시장은 무슬림이다.

일부 좌파가 EU 탈퇴를 주장한 것은 이 때문이다. 영국 사회주의노동당 등 극좌파로 구성된 ‘탈퇴 좌파’들은 ‘밑으로부터의 EU 변혁’이 불가능한 과제라고 주장해왔다. 그렇기 때문에 영국의 EU 탈퇴를 통해 유럽의 대자본과 초국적 엘리트들을 타격하자는 노선을 취했다.

그러나 6·23 국민투표의 승리자는 ‘탈퇴 좌파’가 아니라 ‘탈퇴 극우파’다. 영국 보수당 의원 가운데 절반 정도와 영국독립당(UKIP)이 ‘탈퇴 극우파’로 분류될 수 있다. 이들은 브렉시트 이후, 대외적으로 EU와의 무역협상을 성공적으로 완료하고, 대내적으로 대규모 탈규제를 시행하면 경제성장률을 오히려 크게 높일 수 있다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이미 영국은 선진국 가운데 미국과 함께 가장 느슨한 규제 시스템을 보유한 나라다. 일각에서는 탈퇴 극우파의 ‘경제발전 담론’이 잔류파에게 대항하기 위한 것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그동안 잔류파들은 ‘영국이 EU에서 탈퇴하는 경우 경제적 재앙이 불가피하다’라고 주장해왔다.

탈퇴 극우파의 진정한 이슈는 ‘이민 반대’다. 실제로 이번 국민투표의 프레임을 ‘이민 문제’로 고정시키는 데 성공했다. 브렉시트 투표가 결국 ‘이민에 대한 찬반 투표’였다는 주장도 나온다.

EU가 창설된 1993년 이전까지 영국에서는 이민이 주요 이슈가 아니었다. 그러나 이후 이민자가 급증했다. 영국 옥스퍼드 대학 자료에 따르면, 1993년에 380만명 정도였던 ‘외국 출신’이 2014년에는 830만명으로 2배 이상 증가했다. EU는 회원국 시민이 다른 회원국으로 이주하는 것을, 해당 국가의 정부가 막을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AP Photo〈/font〉〈/div〉채널터널(영국과 프랑스 사이의 해저터널) 입구가 있는 프랑스 북부 항구도시 칼레에서 철로에 접근하려는 난민들을 경찰관들이 저지하고 있다. 칼레에는 영국행을 원하는 수천명의 난민이 있다.

영국의 이주민이 폭증한 것은 2004년부터다. EU가 당시 중동부 유럽의 옛 사회주의 국가들을 회원국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폴란드 같은 나라의 시민들이 영국 같은 부자 나라로 이동했다. 2008년 세계 경제위기와 이후의 불황으로 가장 큰 타격을 받은 남유럽 국가에서도 많은 노동자들이 영국으로 몰려들었다. 이는 역설적으로 영국 노동시장의 유연성이 다른 회원국에 비해 높은 편이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유럽인들은 대부분 영어에 능숙하기 때문에 프랑스나 독일보다는 영국을 선호했다.

미국 언론인 잭 뷰챔프의 〈복스〉 기고문에 따르면, 이토록 이주민 수가 증가하는 가운데 ‘외국인 혐오’ 정서가 조성되었다. 외국인들이 몰려와 영국인의 일자리를 빼앗고 범죄를 저지른다는 것이다. 또한 영국 시민들은 이민이라는 단어를 듣기만 하면 자연스럽게 EU를 연상하게 되었다.

영국독립당의 외국인 혐오 프레임 극복 못해

이런 가운데 등장한 영국독립당은 외국인 혐오 정서를 정치적 자산으로 삼아 약진했다. 지난해 총선에서는 400만 표를 얻어 일약 제3당으로 등극했다. 최근엔 무슬림을 제물로 삼았다. 나이절 패라지 영국독립당 대표는 지난해 언론 인터뷰에서 “영국 문화를 거부하는 무슬림들이 쳐들어오고 있다. 영국인들을 증오하고 살해하려는 자들이 우리와 함께 살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루마니아 범죄자들의 물결”을 경고하면서, 기업들이 영국인과 외국인을 차별하도록 하는 법안을 제출하기도 했다. 영국 시민들의 생활수준 저하를 자연스럽게 ‘EU의 개방적인 이민정책 때문’으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이런 영국독립당이 인기를 끌자 중도 우파로 불리는 보수당 정치인들 역시 차츰 EU와 이민에 대한 적대적 태도로 전환했다. 그 대표적 인물이 바로 보리스 존슨 전 런던 시장이다(22쪽 기사 참조). 패라지와 존슨의 핵심적 주장은 결국 ‘이민을 크게 줄이려면 EU에서 탈퇴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입장이 맹위를 떨치면서 캐머런 총리가 국민투표를 실시하도록 압박한 것이다.

뷰챔프에 따르면, 잔류파들 역시 이번 투표운동 기간에 이민자들을 적극적으로 방어하지 못했다. 시민들의 외국인 혐오 정서가 너무나 강력했기 때문이다. 기껏 ‘경제 재앙론’으로 브렉시트를 공격할 수밖에 없었다. 뷰챔프는 〈복스〉 기고문에서 “브렉시트 투표의 주제는 경제가 아니라 외국인 혐오였다. (…) 이를 둘러싼 논란 자체가 이민자에 대한 적대적 감정을 일상적인 것으로 만들어버렸다”라고 주장했다.

캐머런 총리는 국민투표 개표가 완료된 6월24일 오전(현지 시각), 오는 10월에 사임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때 열리는 보수당 전당 대회에서 새로운 총리를 뽑으라는 의미다. 영국 정부는 국민투표에서 확인된 시민들의 의지(브렉시트)를 EU 측에 통보하고, 이로부터 2년 동안 EU와의 무역·투자·인력이동 등의 관계를 새롭게 구성하는 협상을 추진해야 한다. 오는 10월에 영국의 정권을 장악할 주체는 이번 국민투표에서 승리한 ‘탈퇴 극우파’가 될 것이다. 보리스 존슨 런던 전 시장이 가장 유력하다. ‘탈퇴 좌파’는 극우파의 들러리 노릇만 한 셈이다.

이로써 구성되는 영국의 새 정부는 외국인 혐오 정서에 부응해서 강력한 반(反)이민 정책을 추진할 가능성이 높다. EU 회원국이기 때문에 의무적으로 수용했던 노동보호, 인권, 환경규제 등의 EU 규범 중 일부를 철회할지도 모른다. 또한 대대적인 탈규제 개혁을 시도할 것이다. 영국 채널4 방송국의 경제 담당 에디터인 폴 메이슨은 〈가디언〉 기고문에서 “보리스 존슨 등 보수 우파는 완전한 대처리즘으로 복귀할 권한을 추구할 것이다. 고용, 기업 등에 대한 규제를 더 완화하고 지금보다 열악한 임금이 허용되는…. 그들은 영국을 ‘신자유주의적 환상의 섬’으로 만들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기자명 이종태 기자 다른기사 보기 peek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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