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이런 날이 올 줄 알았지만 지금이 그때일 줄은 몰랐다. 내가 〈미스터 노바디〉(2009)에 대해 쓰는 날 말이다.

3년 전 어느 날, 이 영화를 처음 극장에서 보던 때가 어렴풋이 기억난다. 극장에서 걸어 나오는 내 발은 분명 건물의 콘크리트 바닥을 딛고 있는데, 내 마음은 계속 허우적허우적 영화 속을 걷고 있었다. 빠져나올 수 없는 미로에 갇힌 기분. 하지만 영원히 빠져나오고 싶지 않은 미로. 말하자면, “뭔지 잘 모르겠는데 그냥 좋아죽겠어” 하는 느낌.

결국 글을 쓰지 못했다. 정말 사랑하는 사람에겐 쉽게 편지를 쓰지 못하듯, 이 영화를 너무 사랑해서 나는 차마 글이 써지지가 않았다. 2009년에 제작된 영화가 2013년에야 국내에 개봉했지만, 2016년이 되어서야 처음 〈미스터 노바디〉에 대해 쓴다. 이제는 써야 한다. 더 미룰 시간이 없다.

영화의 시간은 2092년. 주인공 니모 노바디(재러드 레토)의 나이는 118살. 많은 사람들이 그의 인생을 궁금해하지만 그의 삶을 제대로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결국 그의 병실에 한 기자가 숨어든다. 마침내 니모가 입을 연다.

아홉 살 때. 테이블 위 에클레어와 롤케이크 중 뭘 집을까 망설이던 자신을 맨 먼저 떠올리며 니모는 말한다. “모든 건 되돌릴 수 없어요. 그래서 선택이 어려운 거죠. 올바른 선택을 해야 하니까요. 선택을 하지 않으면? 모두 가능성으로 남게 되죠.”

그리고 머지않아 곧 진짜 선택을 해야만 했던 그날. 이혼을 결심한 부모와 함께 아홉 살 니모가 기차역에 서 있다. “니모, 결정했니? 엄마랑 갈래? 아니면 아빠랑 있을래?” 엄마를 태운 기차가 움직이고 그제야 니모가 뛴다. 간신히 엄마의 손을 잡고 기차에 올라탄다. 어? 아니다. 다시 생각해보니 그냥 기차를 보내고 아빠 곁에 남은 것도 같다. 이야기를 듣던 기자는 어리둥절. 니모에게 묻는다. “죄송하지만 무슨 말씀이신지… 엄마, 아빠 중 누굴 택하신 거죠?”

니모는 엄마를 선택했다. 그리고 아빠도 선택했다. 안나(다이앤 크루거)를 사랑했지만 동시에 진(린당팜)을 사랑했으며 앨리스(세라 폴리)도 놓치지 않았다. 수영장 관리인이면서 다큐멘터리 진행자였고 동시에 성공한 사업가였다는 니모의 미스터리한 인생. 9살, 15살, 34살, 118살의 시간대를 넘나들면서, 안나와 앨리스, 그리고 진을 따로 또 같이 사랑하면서, 나비효과와 평행우주와 상대성 이론으로 멋지게 매만진 판타스틱 스토리텔링!

물리학 이론으로 무장한 판타스틱한 스토리

하지만 영화 〈미스터 노바디〉는 극장에서 오래 버티지 못했다. 너무 빨리 종영했고 너무 적은 관객을 만났다. 그게 늘 마음에 걸렸다. 3년 전 나의 기분, 말하자면 “뭔지 잘 모르겠는데 그냥 좋아죽겠어”의 느낌을 더 많은 사람들이 공유하길 바랐다. 그러다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프로그래머가 되고 역대 화제작 스무 편을 골라 다시 상영하는 특별전을 준비할 때, 지난 19년 동안의 상영작을 정리해놓은 방대한 리스트에서 운명처럼 이 영화를 발견했다. 관객 투표 후보작에 올렸더니 뜻밖에도 많은 표가 쏟아졌다. 아직 못 본 친구에게 꼭 보여주고 싶은 영화인 거다.

그 덕분에 〈미스터 노바디〉가 올해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다시 상영된다. 우리가 살면서 놓쳐버린 가능성과 우리가 크면서 잃어버린 시간들이, 거기, 그 매혹적인 미로 안에 꽃처럼 피어 있을 것이다. 내가 놓아버린 손, 내가 떠나보낸 기차, 내가 지키지 못한 그 누군가를 떠올리며 조금 쓸쓸해질 것이다. 하지만 곧 알 수 없는 행복감에 충만해질 것이다. 〈토토의 천국〉 〈제8요일〉 〈이웃집에 신이 산다〉를 만든 자코 반도르말 감독이 연출했다.

기자명 김세윤 (영화 칼럼니스트)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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