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공기가 맛있는 때가 왔다. 이걸 어떻게 표현할지 그 언어가 내게 있지 않은데, 여하튼 딱 이즈음의 저녁 공기를 참말로 좋아한다. 해는 ‘거의’ 다 졌고, 서늘하지도 덥지도 않은 저녁 공기가 기운을 내뿜기 시작하면 나는 충동을 못 이기고 밖을 나선다. 아이팟을 켜고, 음악을 들으면서 무작정 걷는 것만으로도 참된 힐링을 느낄 수 있는 요즘이다. 이런 시기가 해가 갈수록 짧아진다는 게 그저 아쉬울 뿐이다.

되도록 어떻게든 신보를 들으려고 하는 건 내 오랜 노력의 소산이다. 이렇게 감성을 극대화해주는 날씨에 인간은 습관적으로 자신이 젊은 시절에 ‘애정했던’, 추억의 음악을 찾기 마련이다. 그러나 24시간이 모자란 나는 이렇게 해서라도 짬을 내서 음악을 듣고 독후감을 머릿속으로 정리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시사IN〉 담당 기자의 추상과도 같은 불호령이 떨어질 것이니, 내 어찌 음악 듣기를 게을리할 수 있단 말인가.

얼마 전 산책을 하면서 인상 깊게 들었던 새 음반이 있다. 바로 쏜애플의 〈서울병〉이다. 일단, 맞다. ‘자궁’ 발언으로 문제가 되었던 리더가 있는 바로 그 밴드, 쏜애플이다. 아무리 ‘친구’라고 주장하는 누군가가 페이스북을 통해 공개한 발언이기는 했어도, 근래 높아진 젠더 감수성과 여성 차별에 대한 인식을 고려하면 논란에 대한 뒷수습이 영 마땅치 못했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밴드 쏜애플의 신곡들은 초여름 저녁 산책하며 듣기 딱 좋은 노래이다.

이 음반의 밑에 주렁주렁 달려 있는 댓글들을 쭉 본다. 어떻게든 ‘실드’를 쳐주려는 팬들도 종종 보이는 와중에 아예 극단적으로 더 이상 너희 음악을 듣지 않겠다는 문장들이 곳곳에 포진해 있다. 그러니까 논쟁이 격렬해지는 마당에 가장 핵심이 되어야 할 음악에 대한 평가는 정작 주목받지 못하고 있다.

나는 ‘자궁’ 발언에 분명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쪽이다. 논란 이후의 뒷수습에는 더 큰 문제가 있었다고 분명히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동시에 나는 쏜애플의 새 음반이 실로 뛰어난 음악들을 담고 있다고도 생각한다. 그러니까 ‘친구’에 의해 까발려진 그의 사석에서의 발언을 비판하는 것과 그의 음악에 감탄하는 것이 절대 양립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이 글을 쓰고 있는 가장 큰 이유다.

횡설수설하지만 독창성 넘치는 가사

환상적이다. 격렬하면서도 강렬하고, 강렬하면서도 완급 조절을 통해 지루할 틈조차 주지 않는다. 사이키델릭 록이라는 본령에 충실하면서도 그것을 ‘현대적’으로 다듬어내는 재능은 가히 국카스텐 이후 최고라고 해도 부족함이 없다. 부드러우면서도 단단하게 고저를 오르내리는 인상적인 멜로디, 선명하면서도 다채로운 변주와 편곡으로 듣는 이들을 압도하는 첫 곡 ‘한낮’을 시작으로 연주와 보컬의 키가 묘하게 어긋나 세계와 화자 사이의 관계를 대변하고 있는 것처럼 들리는 ‘석류의 맛’, 시작부터 사이키델릭한 톤으로 볼트 높은 설득력을 뿜어내는 ‘어려운 달’ 등 방점이 찍히지 않은 곳이 없는 앨범이다.

그를 둘러싼 논쟁이 노랫말에 영향을 미쳤음은 분명해 보인다. 위에 언급한 세 곡과 더불어 ‘장마전선’과 ‘서울’에 이르기까지, 소통의 단절과 존재의 불안을 밀도 있는 사운드와 드라마틱하면서도 입체감 가득한 전개, 상징성 짙은 가사를 통해 표현하고 있다. 가사의 경우 가끔씩 횡설수설하는 듯한 느낌이 없진 않지만 그래도 그 독창성에 조금 더 마음이 끌리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결론이다. 2016년 상반기 인디를 떠나 한국 가요계가 배출해낸 최고작 중 하나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의 발언은 충분히 비판하되, 음악까지 배제하지는 말자.

기자명 배순탁 (음악평론가∙〈배철수의 음악캠프〉작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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