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스바겐에서 시작된 배기가스 조작 스캔들이 진정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지난 6월8일 독일 검찰은 폭스바겐 법무팀의 한 직원이 미국 당국이 조사 중이던 배기가스 조작 사건과 관련된 파일 및 문서를 회사 동료에게 삭제해달라고 요청한 정황을 포착하고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6월7일 벤츠의 디젤 모델인 R350과 GLK250에서 미국 허용 기준의 최대 20배를 초과하는 질소산화물이 배출된 것이 확인되었다고 독일 시사 주간지 〈디 차이트〉가 보도했다.

 

이에 앞서 지난 2월에는 이탈리아 자동차 업체인 피아트가 생산하는 500X 2.0 MJ SUV 사륜구동 모델의 배기가스에서 기준치의 22배에 달하는 질소산화물이 검출되어 논란을 일으켰고, 지난 4월 말에는 독일 교통국(KBA)이 피아트 일부 모델에서 배기가스 정화장치가 22분 후 자동으로 꺼지는 현상을 찾아냈다. 배출가스 검사 시간이 20분 동안 이루어진다는 것을 교묘하게 이용한 것이다. 지난 4월 말, 다임러 벤츠는 미국 법무부의 요청에 따라 배기가스 이상 징후 가능성에 대한 조사를 시작했다고 밝혔다.

ⓒEPA2015년 11월9일 한 그린피스 활동가가 독일 폭스바겐 본사 정문에 있는 로고 양옆에 ‘C’와 ‘2’를 두어 CO2(이산화탄소 화학기호)를 만들었다.

차세대 자동차를 연구하는 흐름은 연료전지를 활용하는 미국과 ‘청정 디젤’을 추구한 독일로 대별되는 분위기였다. 높은 연비를 자랑하는 디젤엔진은 팜오일이나 유채씨 기름을 이용하는 바이오디젤의 보급과 때를 같이해, 수송 부문에서도 화석연료 탈피가 가능하다는 장밋빛 전망을 보여주었다. 유일한 문제라면 배기가스에 들어 있는 미세먼지와 질소산화물을 어떻게 처리하느냐인데, 저감장치 또는 저감기술을 장착하면 자연과 인체에 유해한 이 골칫거리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는 점이 확인되었다. 그러나 엄격한 기준을 맞추기 위해 값비싼 장치를 장착해야 하는 경제성 함정에 빠지면서 신화를 써 내려가던 독일의 자동차 산업은 졸지에 희대의 사기꾼으로 전락했다.

연비가 높은 경유 승용차의 인기는 안타깝게도 독일을 유럽에서 공기 오염 챔피언으로 만들어놓았다. 지난 5월25일자 〈베를리너 차이퉁〉은 경제면 한 면을 할애해 “독일이 유럽 대기에 가장 많은 독을 뿜어내고 있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독일은 유럽에서, 단기적으로는 호흡기 질환과 장기적으로는 폐기능 저하 및 심장 혈액순환 장애, 암 등을 일으키고, 특히 어린아이에게 기침과 기관지 증상, 알레르기를 유발하는 독성 기체인 이산화질소를 가장 많이 내뿜고 있다. 연방환경청(Umweltbundesamt)에 따르면, 주범은 바로 경유 자동차였다. 경유차가 2014년 독일 전체 이산화질소 배출의 67%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화물차와 버스가 내뿜는 양을 압도하는 수치다.

벤츠의 고향 슈투트가르트, BMW의 도시 뮌헨, 독일 수도인 베를린은 수많은 차로 인해 유럽 챔피언 독일에서 ‘공기 오염 분데스리가 1위’를 다투는 도시가 되었다. 연방환경청은 전국 514개 대기질 측정소의 결과를 인터넷을 통해 공개하는데, 이산화질소 유럽연합 기준치인 연평균 40㎍/㎥를 초과하는 곳이 전체 27%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슈투트가르트는 89㎍/㎥를 기록해 압도적 1위를 차지했고, 뒤를 이어 뮌헨-쾰른-프랑크푸르트-다름슈타트-비스바덴 등의 유명 대도시가 이산화질소 배출에서 유럽연합 기준이자 국제보건기구 권고 기준을 초과했다. 심지어 독일의 환경 수도라 불리는 프라이부르크와 유명 관광지로 소문난 튀빙겐에서도 기준치를 초과하는 이산화질소가 검출되었다.

“정부 정책, 자동차 산업의 이익만 보호”

최근 한국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초)미세먼지와 관련해서는 유럽연합 기준의 느슨함이 독일 시민들의 비판을 받는다. 세계보건기구(WHO)의 권고안(PM 2.5(초미세먼지) 연평균 10㎍/㎥, 1일 25㎍/㎥, PM 10(미세먼지) 연평균 20㎍/㎥, 1일 50㎍/㎥)과 큰 차이를 보이는 유럽연합 기준(PM 2.5 연평균 25㎍/㎥, PM 10 연평균 40㎍/㎥, 1일 50㎍/㎥) 탓에 베를린, 슈투트가르트, 라이프치히 등 일부 도시의 측정소에서만 유럽연합 기준을 초과했다. 만약 독일이 WHO 기준을 따를 경우, 독일 전체 측정소의 96%가 기준을 만족하지 못하는 미세먼지 오염 지대라는 결과가 나온다.

WHO가 2014년 내놓은 자료에 따르면, 미세먼지로 인해 유럽연합 전체에서 연간 35만명이 조기 사망하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 중 오염 챔피언인 독일에서만 그 수가 4만7000명에 달한다고 한다. 이에 따른 경제적 피해 또한 천문학적이다. 대기오염으로 인해 2010년 한 해 유럽이 보건 분야에 지출한 비용은 병가로 인한 기업체의 손실 150억 유로, 공해에 따른 의료 진료 40억 유로 등 최대 9400억 유로다. 우리 돈으로 따지면 1300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이는 우리나라 1년 국내총생산과 맞먹는 규모다.

독일의 대기오염을 두고 독일 녹색당 국회의원들은 “자동차 업계가 값싸고 형편없는 정화장치를 장착하는 것을 독일 정치인들이 허용한 탓”이라고 지적한다. 독일 환경단체는 자동차 업계와 정부, 특히 독일 환경부가 결탁한 결과라고 힐난한다. 수십 년간, 실제 주행이 아닌 검사소에서 측정된 자동차의 이산화질소와 이산화탄소 배출만을 토대로 자동차 허가를 내주었기 때문이다. 독일 그린피스 교통 담당 활동가인 다니엘 모저 씨는 “정부 정책이 국민건강이 아니라 자동차 산업의 이익만을 보호했다”라고 비판한다.

그렇다면 이산화질소를 비롯한 공기 오염에 대응하는 독일 정부의 정책은 무엇일까? 우선 오래된 디젤엔진 장착 승용차를 단계적으로, 특히 도시 지역에서 사라지게 할 계획이다. 반대로 도심에서의 대중교통, 자전거, 보행 이용이 늘어나도록 유도할 방침이다. 연방환경청이 지적하는 대책 중 하나는 경유에 지원된 세제 혜택을 없애서 경유와 휘발유의 가격을 같은 수준으로 만드는 것도 포함되어 있다. 녹색당과 시민단체는 그보다 미세먼지 기준 강화가 선행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독일 정부가 앞장서서 유럽연합의 미세먼지 기준을 WHO 권고 수준으로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참고로 한국의 미세먼지(PM 10), 초미세먼지(PM 2.5) 관리 기준은 WHO 권고 기준에 비해 두 배 이상 높은 수준이다.

기자명 베를린·염광희 (싱크탱크 코덱 연구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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