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에 의해 검열당하는 예술인들이 어떻게 권력에 복수할까? 검열을 예술작품으로 승화해 기억시키는 것이다. 〈권리장전(權利長戰) 2016_검열각하〉(이하 ‘검열각하’)는 그렇게 기획된 연극이다. 5개월 동안 검열에 대한 연극 21편을 상연한다.

6월9일, ‘검열각하’의 첫 작품 〈검열언어의 정치학: 두 개의 국민〉이 서울 대학로 연우소극장에서 처음 막을 올렸다. 김재엽 연출가는 검열의 가해자들에게 주목했다. 그들이 어떤 논리로 검열을 정당화하고 검열에 대한 비난을 피해가는지 살폈다. 배경은 2015년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의 국정감사장.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어떤 논리로 검열 행위를 변호하고 새누리당 의원들이 어떤 식으로 검열관들을 두둔했는지 무대 위에서 고스란히 재현했다.

김재엽 연출가는 박근혜 정부 문화예술 검열의 최대 피해자인 박근형 연출가에게 가해진 검열을 복기한다. 박 연출가는 박근혜 정부 들어 세 번이나 검열을 당했다. 맨 처음은 2013년 국립극단과 함께 공연한 〈개구리〉였다. 이 공연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을 암시하는 인물이 국정원 댓글 공작을 두둔하는 듯한 대사를 했다. “우리 딸애 작년에 기말시험 본 거 있잖아요. 그걸 가지고 커닝했다, 점수 조작했다 아주 염병을 떨어요. 그걸 가지고 무슨 시험을 다시 보자, 퇴학시키자. 아유 이놈들 부모 없이 혼자 산다고, 옛날 같으면 그냥 탱크로 확!”

ⓒ드림 플레이테제21 제공<권리장전 2016_검열각하> 킥오프 행사 모임에 참가한 연극인들.

보수 언론을 중심으로 〈개구리〉에 대한 비난 기사가 쏟아졌다. 어떻게 민간극단도 아닌 국립극단에서 이런 공연을 올릴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긍정적으로 묘사하고 박정희 전 대통령은 부정적으로 묘사해서 편파적이라고도 지적했다. 당시 국립극단 손진책 예술감독은 “이런 연극을 현재 상황에서 국립극단이 만들 수 있다는 건 그만큼 한국 사회가 건강하다는 방증”이라며 반박했다.

그러나 권력은 박근형 연출가를 용서하지 않았다. 2015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창작산실 우수예술지원사업 선정에서 그가 연출하는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를 탈락시켜달라고 심사위원들에게 요청했다. 심사위원들이 이를 거부하자 간부들이 박 연출가를 찾아가 포기를 종용했다. 결국 박 연출가는 작품을 철회했다.

가장 최근의 검열은 2015년 10월 국립국악원에서 발생했다. 박근형 연출가가 함께 참여하는 공연 〈소월산천〉이 국립국악원 ‘금요공감’ 프로그램으로 공연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용호성 국립국악원 기획운영단장이 이 작품을 제외시켰다. 표면적인 이유는 공연 장소 풍류사랑방의 극장 시설이 연극 공연에 적합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흥미로운 점은 〈개구리〉에서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를 거쳐 〈소월산천〉에 이르는 동안 검열의 논리가 조금씩 바뀐다는 것이다. 〈개구리〉에서는 ‘국립극단이 이런 논쟁적인 작품을 하는 것은 문제 아니냐’며 논란을 일으키는 식이었다.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는 ‘군인이 불쌍하다는 식의 공연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과잉 해석을 바탕으로 제외된다. 〈소월산천〉에서는 내용과 상관없이 단지 박근형 연출의 작품이기 때문에 배제된다.

ⓒ김명집 제공김재엽 연출가의 <검열언어의 정치학: 두 개의 국민>은 박근형 연출가가 <개구리> 공연 이후 받은 검열을 되짚는다.

박근혜 정부에서 연거푸 검열을 당하기 전까지 박근형 연출가는 대학로에서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던 중견 연출가였다. 그러나 검열의 칼날이 집중되자 연극계의 ‘기피 인물’이 되었다. 그와 함께 작업을 하면 정부 지원이 중단되기 때문이었다.

그나마 서울시가 운영하는 공연장에서 관객을 만날 수 있었다.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는 지난 3월 서울문화재단이 운영하는 남산예술센터에서 공연되었고 〈소월산천〉 역시 서울시가 운영하는 플랫폼창동61에서 6월4일과 5일 무대에 올랐다.

〈검열언어의 정치학…〉은 박근형 연출가에게 검열이 가해지는 과정에서 어떻게 검열의 2차 가해가 일어나는지를 살핀다. 문화예술위원회처럼 지원기관이 검열기관이 될 때, 보수 정치인과 수구 언론이 이를 두둔하는 과정에서 2차 가해가 발생하는 것을 보여준다.

김재엽 연출가는 검열의 언어를 분석해 검열을 재구성했다. 부당한 권력에 대한 비판을 국가에 대한 비난이라 하고, 작품이 보편성을 갖춰야 한다는 논리로 자신들의 편향성을 구현하고, 예술은 정치적이지 않아야 한다며 정치성을 드러내고, 이런 공연을 만드는 사람과 보는 사람을 바람직하지 않은 국민으로 매도한다는 것이다.

〈검열언어의 정치학…〉에 이어 공연되는 작품은 김수정 연출가의 〈그러므로 포르노〉(6월16~19일)이다. 이번에 공연되는 작품 중 유일한 재공연인 이 작품은 처음부터 ‘우리는 검열당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선포해 어떤 식으로 수정될지 관심을 모은다.

세월호 참사 떠올리게 한다며 지원 사업 ‘탈락’

‘검열각하’는 대학로의 소장파 연극인인 김수희·윤한솔·이양구 연출가가 맨 처음 기획했다(이후 부새롬 연출가가 가세했다). 지난해 서울시의 문화공간 지원사업에 공모해 연우소극장을 1년 동안 운영할 수 있는 권리를 얻은 이들은 검열을 화두로 1년간 연극제를 열기로 결정했다. ‘검열각하’의 예술감독을 맡은 김수희 연출가는 “후배들이 질책했다. 선배들은 뭐 하고 있느냐, 이렇게 개기는 시늉만 하다가 시간이 지나면 신청서 들고 지원금을 받기 위해 어슬렁거릴 것 아니냐는 것이었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말했다.

연극제를 열기로 한 것은 그동안 검열당한 공연은 있었지만 검열에 관한 공연은 없었기 때문이다. ‘검열각하’ 기획진은 “우리만 검열이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생각으로 함께할 연극인을 수소문했다. 순식간에 20개 극단이 모여들었다(임인자 전 변방연극제 예술감독은 개별 참여). 그렇게 해서 21편을 올리기로 결정했다. 기획이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지난해 12월에 행사를 확정지었고, 1~2월에 각자 팀을 구성해 3월부터 5월까지 준비기간을 가진 다음 6월부터 공연이 올라가기 시작했다.

ⓒ검열각하 제공<그러므로 포르노>는 포르노를 통해 우리 사회를 풍자한다.

이들 중에는 검열 피해 당사자도 있다. 윤한솔 연출가는 〈안산순례길〉 공연을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다원예술 창작지원사업’에 지원했다가 탈락했는데, 이 과정에서 외압 논란이 있었다. 단원고등학교를 방문하는 장면 등이 있어서 세월호 참사를 연상케 한다는 이유로 탈락시켰다는 논란이 제기되었다. 김재엽 연출가 역시 〈알리바이 연대기〉를 국립극단의 소극장에서 공연하느라 여러 가지 우려를 접하기도 했다.

지난해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공연예술센터가 주관하는 ‘팝업씨어터’에 참여했던 김정·윤혜숙·송정안 연출가도 검열 피해의 당사자다. 김정 연출가의 〈이 아이〉 공연에 ‘노스페이스’ 점퍼를 입고 수학여행을 간 아이가 나오는데 이것도 세월호 참사를 떠올리게 한다며 공연예술센터 측은 작품 공연을 방해했다. 그리고 다른 두 팀에게도 ‘대본을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이에 윤혜숙 연출가와 송정안 연출가는 검열을 거부했고, 결국 작품은 공연되지 못했다. 이 세 연출가는 자신들이 몸소 겪은 경험을 바탕으로 검열에 대한 작품을 풀어낼 예정이다. 윤혜숙 연출가와 송정안 연출가는 이번 공연을 위해 아예 극단을 새로 차렸다.

‘검열각하’의 주축은 3040 연극인이다. 선배 연극인들의 반응은 갈렸다. 응원하고 동참하는 연극인도 있었지만, 피하거나 심지어 반대하는 연극인도 있었다. 김수희 연출가는 “선배 연극인들에게 부탁했더니 ‘그런 걸 왜 해? 다 지나간 일인데. 이미 한물간 이야기 아니야?’라며 ‘너희는 무모하게 뜨겁다’라고 질책했다. 모두가 공감하는 문제의식이라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우리가 소수였다”라고 말했다.

다음 문제는 돈이었다. 기본적인 제작비 부담 때문에 연극 장르는 다른 분야보다 지원금 의존도가 크다. ‘검열각하’에 참여하는 것은 그런 지원금을 포기해야 한다는 의미다. 자신의 연극 인생을 담보 잡히는 일이 될 수도 있다. 김수희 연출가는 “예술이 버티게 하는 힘이 되어야 할 지원금이 예술을 길들이는 채찍으로 쓰이고 있다. 더 이상 지원금에 의존하지 않겠다고 스스로 선언했다. 그러고 나서 스스로 지원금에 얼마나 길들여져 있는지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권력으로부터의 독립은 지원금으로부터의 독립을 의미하기도 한다. 지금 우리의 화두는 자력갱생이다”라고 말했다.

음반·도서 등 ‘검열’ 작품 모여라

‘검열각하’의 총예산은 4300만원이다. 작품별 예산은 200만원이다. 물론 터무니없이 부족하다. 모자라는 돈은 연출가가 책임지고 마련해야 한다. 김 연출가는 “혜화동 동인 활동을 하면서 국가보안법, 재능교육 비정규직 문제, 해방공간 연극 회고전 등을 했는데 의외로 관객들이 지탱해주었다. 그때의 경험을 통해 연극이 공공예술이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자유로워지자, 야생으로 돌아가자’ 하는 심정으로 임하고 있다. 연극적 재무장을 할 수 있는 계기로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검열각하’ 제작비는 텀블벅 등을 통해 모금도 진행한다(www.tumblbug.com/projectforright). 개별 후원도 가능하다(우리은행 1005-702-539358 김수희).

‘검열각하’는 우리 사회의 문제로 떠오른 검열에 대해 깊이 탐구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참여하는 연출가들은 ‘표현의 자유’와 ‘지켜야 할 선’의 경계에 대해서도 생각하고, ‘내가 무엇을 두려워하고 있는가’ 하는 자기검열도 고민하게 될 것이다.

〈권리장전(權利長戰) 2016_검열각하〉의 장전은 원래의 ‘장전(章典)’이 아니라 긴 싸움이라는 뜻의 ‘장전(長戰)’이다. 5개월의 연극제 기간에 거리극도 진행하고 일반 시민과 함께 포럼도 열고, 검열당했거나 검열에 대해서 다룬 음반 도서 작품을 모아 전시회도 할 생각이다. 일종의 ‘검열 박람회’가 우리를 찾아온다.

기자명 고재열 기자 다른기사 보기 scoop@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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